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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천자인 황제보다 말단관리 도필리가 더 무서워
   

어사대부 조관 하옥 자살, 위기후 두영 살해, 제왕의 신하 주보언 살해, 전장군 이광 자살, 승상 이채 하옥 자살, 대사농 안이 살해, 어사대부 장탕 자살, 승상 장청적 하옥 자살, 승상 조주 하옥 자살, 어사대부 왕경 자살, 승상 공손하 하옥 사망, 승상 유굴리 하옥 사망, 어사대부 상구성 자살, 모두 한나라 무제 때에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다. 이 말고도 더 있지만 황제의 친인척들이라 생략한다. 이 13명 모두 직위나 실력이나 권세가 대단했던 자들이다. 어사대부는 문무백관들을 감찰하는 자리이며, 승상은 국무총리, 전장군은 군사령관 정도에 해당한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가 망하고 어지러운 전국시대를 정리하며 유방의 한(漢)나라가 탄생했다. 한나라 초기에도 여전히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유철(劉撤)이 7대 황제로 등극 한무제(漢武帝)에 이르러서야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며 한왕조의 부흥을 이끌었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한무제를 위대한 인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무제는 천하를 이끌 통일된 사상을 위해 유가를 숭상했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유교도였던 적도 없었다. 유가는 왕도로 인정을 베풀고 예법을 중시하며 덕치를 주장했다. 이는 군주제도를 적극 옹호하면서도 인간미를 갖춘 측면이 있어 백성들이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소위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백성들이 책도 보지 못하도록 불사르고 선비들을 파묻었다고 전해진다. 산 사람들을 실제로 그렇게 파묻었을까 하는 갱유(坑儒)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가혹한 형벌과 독재로 인해 손가락질 받는다. 한무제 역시 유가를 숭상해 선비들을 등용하면서 군주제를 뒤흔들 수 있는 다른 사상의 출현을 철저히 막았다. 죄인에 대한 처벌은 진시황 못지않게 가혹했다. 사실, 책을 불 싸지른 것이나 유가만 등용했던 것은 같은 목적이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지독한 언론 탄압과 여론 통제다.

 

살리려면 천(千)가지 이유로 석방, 죽이려면 만(萬)가지 판례로 죽여

이유야 어찌됐던 이런 한무제에 의해 한나라의 기틀이 다져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말 한 마디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을 가진 자들이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것은 황제의 강한 정치력 때문이 아니라 도필리(刀筆吏) 때문이었던 탓이 크다. 도필리는 문서 작성을 맡은 하급 관리들을 지칭한다. 사법부의 말단 공무원, 요즘으로 치자면 법원 서기 정도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당시엔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라 죽간이라고 해서 대나무를 얇게 쪼개 엮어서 썼다. 그러다 보니 잘못 쓰거나 하면 칼로 대나무를 깎아 내고 다시 썼는데, 도필리는 칼과 붓을 가지고 있으면서, 쓰고 싶은 대로 쓰고 고치고 싶으면 얼마든지 고쳐 썼다. 그래서 칼(刀), 붓(筆)과 하급 관리를 지칭하는 리(吏)가 된 것이다. 때문에 광대한 제국의 사법이 일개 도필리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기 일쑤였다. 사람을 살리고 싶으면 천(千)가지 이유를 대서 죄명을 벗겨 주었고, 죽이고 싶으면 만(萬)가지 판례를 참고해 죽였다.

제 아무리 황제에 직언을 서슴지 않는 승상이나, 백관을 감찰하는 어사대부, 백만대군을 호령하는 전장군과 같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라도 일단 모함이나 오해로 죄인으로 몰리면 도필리 손바닥 안의 개구리 신세가 됐다. 그래서 하옥되어 모욕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하옥되어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해도 석연찮은 도필리의 몇 글자에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한고조인 유방을 따라 천하를 누비던 개국 공신이면서 승상의 지위에까지 오른 강후(絳侯) 주발(周勃)이 하옥되었다가 풀려나면서 했던 말이 있다. “나는 100만 장병을 두고 고위 관직에 있지만 옥리의 위세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한무제의 시대가 기원전 141년부터 기원전 87년까지이니, 대략 지금으로부터 무려 2천 하고도 160년 전의 일이다. 그간 시대가 변천하고 모든 정치 사회 시스템이 발전되어 왔지만 요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하늘의 아들이었던 황제보다 더 무서웠던 도필리들의 장난질이다. 요즘 도필리는 과거 죽간을 칼로 깎아서 붓으로 기록했던 것에서 형태는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도 여러 기관의 부담스럽게 높은 문턱이나 각 조직에서 흔히 있는 의아스러운 권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밖 문고리 권력의 주인공인 로나 그래프가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미국 하원 법사위가 러시아 스캔들 조사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그런 배경 하에서 ‘스모킹 건’으로 떠오른 대상이 그래프다. 30년간 개인비서로 일하며 트럼프는 물론 측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프는 트럼프그룹의 수석 부회장이지만, 1987년 입사 후 비서일을 하면서 문고리를 쥐었다. 미국의 한 시사지에 따르면 전 트럼프캠프 선대본부장마저도 그래프를 거쳐서 트럼프를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굳이 이렇게 문고리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실세들뿐만 아니라 도필리 아닌 도필리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때문에 직장생활이 힘들어지고 사람이 싫어지는 이유가 만들어진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별 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생긴다. 그리고 그런 하찮아 보이는 일들로 인해 조직 간의 골이 깊어지고 위 아래가 벌어진다.

예전에 회사가 한참 힘들어지고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때였다. 직원들의 화합 분위기가 절실했기에 뭐라도 하자는 제안들이 쏟아졌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해병대 교육을 받기도 했고, 새벽에 나와서 전문 강사들의 금과옥조 같은 강의도 들었다. 그러다가 커뮤니케이션 팀에서는 회사 CI 같은 것에 의미 심장한 스토리를 입혀서 두꺼운 매뉴얼을 다시 만들었고, 이전에는 없었던 배지(Badge)를 만들어서 임직원들에게 나눠줬다.

 

‘현명하게 잘 하라’가 ‘하면 죽는다’가 되는 현실

그 배지를 만들기까지의 우여곡절 역시 책 한 권은 쓸만하지만 배지를 만든 이후가 더 생각난다. 기왕에 만든 거 많은 직원들이 착용하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제였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에너지 절감과 시대적인 트렌드 반영으로 노타이를 권장했고 양복에서도 어느 정도 해방됐던 무렵이었다. 관리직 대부분은 정장이 기본이었지만 현장 직원들이나 일반 팀원들은 반팔 남방 차림의 자유복이 주를 이뤘다. 어느 날 구조본 내에서 이런 저런 안건으로 회의를 하던 말미에 본부장이 한 마디 했다.

“모든 임직원들이 배지를 의무적으로 착용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봐.”

재무, 기획, 인사, 총무, 법무, 혁신팀 등 다양한 실력가들이 모인 구조본 핵심 팀장들도 별 생각들이 없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던 중에 배지 제작을 맡았던 커뮤니케이션 팀장인 내게로 시선이 자연스레 모아졌다. 스스로 착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울 거라는 생각에 오히려 부사장인 구조본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굳이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해야 하나요?”

“회사의 결속을 위해 만든 것이면 당연히 전원 착용하게 해야지.”

“양복이라면 몰라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는 직원들은 어디에 착용해야 합니까?“

“사원증 목걸이 줄이나 남방 깃이나 가슴 호주머니, 아니면 바지 호주머니라도,,,,,,,”

“배지가 장난감 액세서리가 아니라서, 격에 맞춰 착용하도록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무슨 수로?”

“회사가 잘 나가면 차지 말라고 해도 찹니다.”

“에이, 기왕에 만든 거니까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무슨 안을 찾자는 거지.”

결국 배지를 만든 주체인 내가 원칙론적인 주장을 펼친 덕에 의무 착용은 시행되지 못했다. 배지는 회사의 얼굴이기에 가방끈이나 목걸이 줄, 티셔츠나 바지 호주머니에 대충 달고 다녀도 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양복을 입었을 경우만 의무화 하는 선에서 끝이 났다. 그러지 않았으면 회사 입구에서 신체 어딘가에 배지가 없으면 벌점에 인사 고과 감점을 매기는 선도부가 지키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회사란 그런 곳이다.

그룹 회장단에서 뭔가 언짢은 일이 생겼다. 사장단이 모인 회의에서 ‘앞으로는 잘 생각해보고 현명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라’는 주문을 한다. 사장단은 각 사로 돌아가서 휘하 임원들을 모아 놓고 지시한다. ‘회장님 관심 사항이니 웬만하면 하지 말게 하라’고,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임원들은 다시 팀장들을 모은 뒤에 지시를 한다. ‘위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당분간 우리는 안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 팀장들은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는 사람 있으면 죽을 줄 알아.’ 팀원들은 생각한다. ‘이런 사소한 일도 우리 회사에서는 하면 죽는구나. 이상한 회사네.’

커뮤니케이션이 문제다. ‘현명하게 잘 진행하라’는 말이 몇 번의 전달 끝에 ‘하면 죽는다’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창시절, 군대를 거쳐 회사라는 조직에 몸 담아 오면서, 늘 사소한 것 하나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술 마시다 죽고, 밥 먹다가 죽고, 담배 피우다가 죽고, 야근 하다가 죽고, 휴가 가려다 죽고, 외근 나가다 죽고, 인사 안 해서 죽고, 지각 한번에도 죽는다. 사는 게 참 힘들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3.19  18: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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