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제안에 국내외 자문사들이 반대에 나섰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이사회를 추천하고 고배당을 요구하자, 경영난 우려에 현대차의 안건에 손을 들어주는 형세다. 지난해 엘리엇이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저지했던 상황과 교차하는 모습이다.

다만 ISS가 엘리엇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들에 대해 일부 수용하라는 의견을 내놨다.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이 제안한 후보들의 이해 상충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경쟁사에 근무하는 인사를 이사회로 등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국적과 분야 구분없이 이사회 후보군을 선별해 이를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2018년과 다른 현대차의 2019년 주총 전 분위기

12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두 의결권 자문사는 현대차의 현금배당을 비롯한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 보수 한도 승인 등 현대차 이사회가 정기 주총에 상정한 안건에 대부분 동의했다.

ISS는 “만약 회사가 엘리엇의 특별 배당을 지급하면 자본금 요구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빠듯해질 것”이라면서 “이러한 고려 사항에 따라 경영진의 제안에 대한 표결을 권고한다”고 강조했다. 주주 권한 강화를 목적으로 내세운 엘리엇의 배당 요구는 현대차그룹의 경영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욕심이라는 평가다. 과거 지배구조개편안에서 엘리엇의 편을 들었던 ISS가 엘리엇의 배당안건에 반대한 셈이다.

앞서 엘리엇은 현대차에 기말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2만1976원(총 4조5000억원)의 배당을 제안했다. 우선주 배당을 포함하면 5조8000억원에 달한다. 현대모비스에는 보통주 1주당 2만6399원을 포함해 총 2조5000억원의 배당을 제안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날 대신지배연구소는 엘리엇의 배당확대 요구 등의 주주제안에 반대의견을 밝혔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엘리엇의 현금배당 제안이 과도하다”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자동차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규모 배당을 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성 확보를 위해 투자를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도 사측의 편에 서서 반대 입장을 내놨다. 현대차 노조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엘리엇이 현대차 경영상태 문제 제기에서 ‘노조 리스크’까지 거론했다”며 “이는 현대차 노동자들이 생산한 부가 가치와 공헌도를 전혀 고려치 않는 노동배제적인 태도로,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이 노조는 “엘리엇이 현대차에 주당 2만1967원, 총 4조5000억원을 요구하며 사외이사 3명 선임 요구 등으로 현대차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며 “헤지펀드 특유의 ‘먹튀’ 속성으로 비정상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엘리엇이 제안한 현대차-현대모비스 논란 문제점

엇갈린 사외이사 권고…현대차 “경쟁사 인사 사외이사 선임 어려워”

자문사들이 현대차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이사회 선임 안건을 두고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사회 선임 안건에 앞서 권고안을 발표한 글래스 루이스가 현대차 이사회 안에 손을 들어줬다. 반면 ISS는 현대차와 엘리엇 양측의 제안을 일부 수용하는 권고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ISS의 의견에 현대자동차는 우려를 표방했다. 경쟁사에 근무하는 인사를 이사회에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이사회도 엘리엇이 제안한 사외이사 후보가 선임된다면 심각한 이해상충 문제 등이 우려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ISS가 찬성 의견을 제시한 현대차 로버스 랜달 맥귄 후보와 현대모비스 로버트 알렌 크루즈 후보는 양사의 경쟁 업체에서 현재 근무중이라 문제가 있다”면서 “ISS는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일부 엘리엇 제안 후보들에 찬성했는데, 이해상충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간과한 것 같아 유감”이라고 밝혔다.

로버트 랜달 맥귄은 수소연료전지를 개발, 생산 및 판매하는 회사인 발라드파워스시템 회장으로, 이 회사는 수소전기차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현대차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다. 현대차의 글로벌 수소경제 주도 전략이 경쟁사인 발라드파워시스템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또한 로버트 알렌 크루즈는 중국 전기차 업체인 카르마의 CTO이다. 올해 모비스는 카르마와 거래 관계를 확대할 예정으로, 후보자가 거래 당사자인 두 회사 임원 지위를 겸임할 경우 상호 이해상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발생한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다른 두 후보 역시 회사의 미래전략을 수행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존 리우 후보의 경우 ICT 분야 경력이 통신사업 부분에 집중되어 있어 자동차 관련 ICT 사업분야에 대한 적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봤다. 2002~2007년 중국시장에서 근무한 통신사의 경영실적이 양호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또한 모비스 루돌프 마이스터 후보는 변속기 제조사인 ZF사에서 근무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주로 A/S 부품유통사업에 치우쳐, 모비스가 추진하고 있는 미래 자동차 핵심 신기술 집중 전략과는 부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엘리엇 후보들이 사외이사가 될 경우 엘리엇의 입맛대로 배당 확대와 무리한 경영 자료 요구를 해 올 것이 자명해 안정적 기업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외이사 후보군 80여명 운용...“전문성 다양성 모두 확보할 것”

한편 현대자동차 그룹이 사외이사 중심 이사회 보강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국적과 상관없이 전 세계 각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한 이사회 후보들의 후보군 80여명의 풀을 만들어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

먼저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주총과 연계해 1차로 사외이사 후보를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수혈함으로써 재무구조와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에 나설 계획이다. 이어 앞으로 정보통신기술(ICT), 자율주행, AI 등 미래 기술과 전략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를 사외이사진으로 계속 보강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각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를 구성해 현대차와 모비스가 최근 발표한 중장기 투자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시장과 주주들로부터 존중받는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합류시켜 다양한 주주의 이해관계를 경영에 반영하고,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