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MT는 기축통화 보유국(미국)은 단순히 돈을 더 찍어냄으로써 재정 적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출처= National Review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은 지난 30년 동안 세간의 비판을 받아온 이론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론자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나 블랙록(BlackRock Inc.)의 래리 핑크 같은 사람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이론을 개발한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학계의 중심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생각이 메인스트림을 파고 들기 시작했다. 월가의 거물들이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다. 물론 대부분은 일축하는 의견이지만 간혹 지지하는 발언도 있다.

지난 수 년 동안 무시되어온 MMT가 어떻게 그리고 지금 시점에 갑자기 미국 경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 블룸버그 통신이 그 이유를 정리 보도했다.

이미 적자의 시대

이 이론은 기축통화 보유국(미국)은 단순히 돈을 더 찍어냄으로써 재정 적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돈을 세금으로 조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정부가 통화 유통량을 늘리면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고 믿지만 현대화폐이론가들은 증세를 해 시중의 돈을 흡수하면 물가 상승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이 채무 불이행을 강요당할 위험은 없다.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달러를 더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10년 동안 부채를 쌓아왔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오늘날 새삼 새로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적자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은 금융 위기 이후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이는 정공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팽창하고 있는 경제를 더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 1960년대 이후 전례 없던 규모로, 현재에도 그런 재정 부양책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MMT 옹호론자들이, MMT가 언젠가는 채택될지도 모르는 정책 패키지가 아니라 정부가 어떤 도구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틀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실제로 그런 도구들 이 이미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지 마켓(Easy Markets)도 한 몫

정서는 어느 한 순간에 바뀔 수 있지만, 미국의 투자자들은 현재 적자에 익숙해져 있다. 미국의 예산 적자는 이미 GDP의 4%를 넘어섰다. 적어도 2021년까지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는 30년간 3%도 안 되는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다(30년 국채 이자가 3% 미만이다). 적자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시장은 동참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MMT는 쓰레기 이론"이라며 "재정 적자는 금리 인상을 더욱 부추길 뿐"이라고 말했다.

학계도 MMT 비판론이 우세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재정적자를 늘리면 결국 연준이 물가상승 방지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며 “MMT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상충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역시 워싱턴포스트 기고에 ‘미신 경제학’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며 “진보 진영이 MMT를 끌어안는 것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지난달 26일 “국가채무를 발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옳지 못하다”고 우회적으로 MMT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목표(법인세 인하, 군비 지출 확대)를 추구하면서 예산 결과(적자 여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것은 MMT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뉴욕주 초선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의 MMT 주장도 SNS를 타고 MMT가 급속히 확산된 이유 중 하나다.  출처= The Hill

인플레이션 기미 없어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1970년대 이후 정책입안자들은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실업률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그들의 기준 모델은 이제 더 이상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이론에 따르면 40년 만에 실업률이 최저치까지 떨어졌으면 물가를 자극해야 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학자들은 25년 전에는 명백해 보였던 이론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문제였던 시대 이후 한 세대가 지나면서, 공공의 적 제 1호라고 생각했던 것(인플레이션)과의 전투도 시들해졌다. 이제 정부는, 다른 어느 선진국보다 심각하게 나타나는 미국의 불평등 심화와 보편적 의료 안전망 결여 같은 새로운 21세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진 프레임워크로 나아가고 있다.

트럼프는 MMT 옹호론자?

정치적으로 MMT 주의자들은 좌편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은 그 이론이 어떤 종류의 정부에서도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때로 도널드 트럼프의 재정 정책 방식에 대해 은근히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실제 경제 목표(법인세 인하, 군비 지출 확대)를 추구하면서 예산 결과(적자 여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래리 커들로 트럼프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지난 10일 "좋은 성장 정책은 반드시 재정적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비록 대부분의 MMT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경제적 목표에 동의하지 않고 재정 지출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지라도, 트럼프가 취하는 조치들은 MMT가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카시오 코르테즈 바람

미국 정가에 MMT의 문을 연 사람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 민주)이었다. 그는 MMT 이론을 대중적으로 확신시킨 이 이론의 대표론자가 된, 경제학자이자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스테파니 켈튼을 상원 예산위원회(Senate Budget Committee)에 기용했고, 지난 2016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그를 경제 자문역으로 삼았었다. 샌더스는 미국이 재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인프라나 교육 측면에서도 실제적인 경제 적자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MMT성 발언을 내놓았지만 MMT를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샌더스 캠페인에서 함께 일했던, 뉴욕주의 초선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이 “MMT가 우리 대화의 큰 부분"이 되어야 한다며 “의회가 MMT가 주장하는 ‘돈의 위력’을 채택할 것”을 명시적으로 촉구하면서 MMT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오카시오 코르테즈 의원은 경제나 정치적 아이디어들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통로인 소셜미디어에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