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漁成田(어성전), 162.2×130.3㎝ mixed media on canvas, 2017

“이팝나무가 문등(門燈)을 뒤로하고 앞을 막았다. 온 가지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을 수 없을 만큼 하얀 밥풀을 가득 달고. ‘이것 더 먹고 가라!’ 이거였니, 감각들이 온몸에서 썰물처럼 빠질 때 네 마지막으로 느끼고 본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동체(胴體) 부듯 욕정이 치밀었다. 나무 앞에서 멈칫하는 사이 너는 환한 어둑발 속으로 뛰어 들었다.”<황동규 시집 ‘꽃의 고요’ 중 ‘참을 수 없을 만큼’, 문학과 지성사 刊>

가랑비 지나갔나. 발돋움의 연정인가. 아직은 깊은 잠에 빠진 계곡의 잠잠한 물살 위 물안개처럼 꽃향기 번지네. 엉겁결에 홀려버린 순진무구 실버들. 연둣빛 새잎을 무작정 휘날리는 흐릿한 여명 속 그리움의 달빛을 가르며 외기러기 날아가는데….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를 가슴에 품고 천천히 나직이 숲길 걷는다. 마음의 본령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 나뭇가지 가늘게 흔들리면 잠시 서서 바라보고 들꽃향기 진동하면 그곳 숲길을 향한다. 정신과 육체의 완전한 자유 그 내밀한 평온의 세계를 화폭에 풀어놓는다.”

▲ 사계;유, 117×81㎝, 2017

◇보이지 않는 것까지 느껴야

화백은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漁城田)계곡 인근에 작업실이 있다. 1980년대 중반 그곳으로 들어가 오늘까지 자연 속에서 명상적 일상을 지속하고 있다.

“사람들이 겨울엔 무지 춥다고들 생각한다. 밤에는 차지만 영상기온을 유지할 만큼 온화하다. 인근에 집 두어 채 있을 뿐 인적 없이 조용하다. 딱따구리와 소쩍새가 가끔 적요의 시간을 일깨울 뿐”이라고 전했다.

전시장에서 인터뷰 한 화백은 “고등학생시절 친구화실을 드나들다가 어느 날 ‘내 길이 여기 있구나!’싶었다. 그런 강렬한 이끌림에 미대를 진학하게 되었는데 어언 50년 화업이 되었다”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 전시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인섭 화백(李仁燮) <사진:권동철>

이인섭 작가(Artist LEE IN SEOB)는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 회화과 졸업했다. 예총문화예술상, 제8회 대한민국미술인의 날 미술문화공로상을 수상했다. 현재 (사)서울미술협회이사장이다. 1989년 무역센터현대미술관, 91년 샘화랑을 비롯하여 예술의전당, 조선일보미술관(2013~2017년)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동안 ‘묵시의 땅’, ‘생성의 정원’, ‘사계:유’시리즈를 발표하며 중견화가로서의 탄탄한 화업으로 주목받았다. 이번 3월6일부터 19일까지 전시 중인 서울종로구 돈화문로, 돈화문갤러리 개관기념(9F) ‘이인섭 초대전’에도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또한 느끼는 그것이, 대자연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벅찬 교감과 감흥은 돌덩이, 나무, 풀, 흙, 산과 강물, 바다, 바람과 공기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화가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 내가 자연 속에 파묻혀 살며 늘 체감하는 귀중한 모티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