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유료방송 시장이 IPTV 중심으로 선명하게 구축되고 있다. SK텔레콤 산하 SK브로드밴드가 최근 티브로드 인수를 공식 선언했으며 LG유플러스는 2018년 말 넷플릭스와의 협력에 이어 CJ헬로 인수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KT도 딜라이브 인수를 위해 TF를 구성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KT는 8일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현재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TF를 구성해 딜라이브 인수를 위한 최종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합종연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5G 상용화를 비롯해 플랫폼과 플랫폼의 연결로 끌어낼 수 있는 데이터 확보, 나아가 변화된 콘텐츠 전략의 가능성을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대는 모두 완성됐다

업계에서는 IPTV 중심의 유료방송 시장 재편을 기정사실로 여긴 바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낮은 직접수신율로 인해 사실상 플랫폼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케이블 MSO들도 경영난에 직면해 생명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방통융합의 기조가 뚜렷해지며 통신과 미디어의 결합인 IPTV가 득세할 수 있는 실질적 환경이 마련됐으며, IPTV를 운영하는 통신사들이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에 속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난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SK텔레콤의 경우 한 때 CJ헬로 인수를 타진했으나 시장 독과점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미디어의 경우 일정정도 공공성이 담보되어야 하지만 통신사들이 자금의 위력만 믿고 무리하게 미디어 시장에 난입하면 기본적인 공공성 논란이 흔들리는 비판도 나왔으며, 이는 통신업계의 경쟁력이 미디어 시장에 과도하게 전이된다는 논리로도 이어졌다. 특히 케이블 MSO는 지역 미디어 공공성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과, IPTV가 케이블 MSO를 인수할 경우 케이블 MSO가 운용하는 직접사용채널의 정치적 기능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여러 난관들이 있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막았던 시장 독과점 문제도 이제는 별다른 변수가 아니며, 무엇보다 미디어 플랫폼의 합종연횡이 ‘필수’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등장은 물론 디즈니의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 준비, AT&T의 타임워너 인수 등 미디어 업계의 합종연횡이 빨라지며 국내에서도 “이제 우리도 미디어 플랫폼 연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는 뜻이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둘러싼 논의가 IPTV에 유리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대목도 의미있다는 평가다. 당장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각각 티브로드와 CJ헬로 인수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주무 규제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과도한 시장 경쟁을 배제하는 선에서 혁신 요소가 크게 고려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IPTV의 케이블 MSO 패스트트랙 처리 설까지 나올 정도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물론 유료방송 합산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KT가 유일하다. 전체 점유율 33.3%를 넘기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KT는 KT스카이라이프와 함께 점유율 30.9%를 기록하고 있으며, 여기에 딜라이브를 인수하면 데드라인인 33.3%를 넘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산 점유율이 23.8%, LG유플러스의 CJ헬로 합산 점유율은 24.4%에 불과하다.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데다 만약 존속되어도 KT만 해당되기 때문에 시장의 합종연횡 바람은 큰 틀에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 황창규 KT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KT

5G 상용화라는 시기도 미디어 플랫폼의 합종연횡에 힘을 실어준다. 5G라는 네트워크 비전은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송출해 실감형 미디어의 구현을 현실로 만들어 주며, 이 과정에서 통신사들은 5G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는 한편 이를 활용하는 콘텐츠 플랫폼 전략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통신사들이 더 이상 네트워크 제공만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에서, IPTV를 운용하며 끌어오던 미디어 콘텐츠 산업은 익숙한 영역이다. 여기에 5G 플랫폼의 등장을 시의적절히 연결하면서 소위 네트워크 슬라이싱 등을 통한 망 중립성 약화 로드맵을 넣으면 강력한 탈 통신 전략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플랫폼과 플랫폼의 결합...다음은?

IPTV의 인수합병과 전체 제휴 전략을 보면 SK텔레콤과 나머지 IPTV에는 전략적 차이가 보인다.

SK텔레콤은 티브로드 인수를 통해 플랫폼을 키우고 가입자를 확대하는 방식을 전개한다. 또 5G의 가능성과 ICT 플랫폼 전략을 가속화시키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지상파와의 연합이다. SK텔레콤은 지상파 OTT 푹과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를 연합시켜 다소 이색전인 전략에 나서고 있다.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는 자체 제작 콘텐츠 비율이 매우 저조한, 사실상의 온리 플랫폼으로 정의된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비즈니스의 방식은 OTT 사용자 경험 자체에 찍혔다는 뜻이다. 여기에 OTT 푹과의 만남은 플랫폼과 플랫폼의 연결로 볼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플랫폼과 콘텐츠의 결합으로 여겨진다. OTT 푹의 뒤에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상파 방송사가 버티고 섰기 때문이다.

▲ SKT가 푹과 연합한다. 출처=SKT

반면 KT와 LG유플러스는 아직 플랫폼과 플랫폼의 합종연횡에만 집중하고 있다. 물론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의 협력으로 관련 콘텐츠 수급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다소 SK텔레콤의 접근방식과 비슷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아직은 플랫폼과 플랫폼의 연결에 집중해 당장의 몸집을 불리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SK텔레콤과 그 외 IPTV의 전략 모두 궁극적으로는 콘텐츠 수급 시장까지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과 플랫폼의 연결이 선행되는 상황에서 콘텐츠 시장 및 수급과 관련된 전략에는 SK텔레콤의 속도가 가장 빠르며, 다음이 LG유플러스, 다음이 KT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IPTV 3사는 당장의 플랫폼 몸집 불리기에 집중하며 고객 데이터 확보를 통한 광고 수익 매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의 기회를 모색하면서 5G와의 시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혹은 이용해 자사 플랫폼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후 SK텔레콤을 선두로 콘텐츠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며 강력한 ‘락 인’ 전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해당 전략은 통신사들이 전개하고 있는 보안과 엔터테인먼트, 그 외 다양한 탈 통신 전략과도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

최근 업계에서 IPTV 3사가 추후 강력한 콘텐츠 제작사와의 협력이나 인수합병에 준하는 로드맵을 전개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유독 CPS 계약에서 지상파와 날을 세우는 LG유플러스 모바일 TV에 지상파 콘텐츠 수급이 중단되는 지점을 두고 ‘이미 콘텐츠 시장에서의 신경전이 시작됐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