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모빌리티의 초입인 카풀 상용화를 둘러싸고 ICT 업계와 택시업계의 갈등이 결국 택시업계의 완승으로 끝났다. 새로운 기술의 융합과 시너지라는 공익적 패러다임도 소위 ‘떼 법’에는 도리가 없다는 전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다만 카카오 모빌리티는 차악을 선택했고, 이번 합의를 계기로 택시업계와 ICT 업계가 고무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택시업계 “잘 할게, 카풀은 이 정도만 해”

택시 카풀 사회적 대타협 기구는 7일 합의문을 발표해 카풀의 제한적 허용과 택시업계에 대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선언했다. 카풀은 출퇴근 시간으로 명시된 오전 7시에서 9시, 오후 6시에서 8시까지만 운행되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 공휴일에는 운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플랫폼 택시의 상반기 출시를 비롯해 초고령 운전자 개인택시의 다양한 감차 방안을 추진하고 기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월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합의문에 명시된 6개 항목 중 명확한 조항은 카풀의 제한적 허용과 상반기에 출시되는 플랫폼 택시다.

카풀의 제한적 허용은 택시업계의 주장이 상당부분 반영된 상태에서 최소한의 여지만 남겼다는 평가다. 택시업계는 ICT 플랫폼 사업자의 카풀에 원천 반대했으나, 이번 합의문을 통해 유상카풀을 제한적 운행이라는 조건으로 ‘너그러이’ 용인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상반기에 플랫폼 택시를 출시한다는 것은 택시업계 입장에서 일종의 혜택이다. 기사 월급제가 도입되는 대목도 동일하다.

그 외 조항들에 택시업계의 자정의지가 담겼으나 말 그대로 ‘뜬 구름 잡기’ 일색이다. 1항 “플랫폼 기술을 자가용이 아닌 택시와 결합하여 국민들에게 편리한 택시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택시산업과 공유경제의 상생 발전을 도모한다”와 6항 “택시 업계는 승차거부를 근절하고 친절한 서비스 정신을 준수하여 국민들의 교통편익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말 그대로 ‘노력하겠다’는 의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추후 입법 과정에서 자세한 조항들이 등장할 여지는 있으나 현 상황에서 카풀 전쟁의 승자는 택시업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유총 결론과는 달랐던 택시업계

카풀 플랫폼 풀러스가 유연 근무제를 중심으로 운행시간 확장에 돌입한 후 택시업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이어 카카오 모빌리티가 카풀 플랫폼 럭시를 인수하며 서비스 상용화에 시동을 걸자 논란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택시업계는 지난해 초 카풀 논란과 관련된 모든 토론회장에 난입하는 파국을 자초하는 한편 지방선거 정국에서는 야당과 손잡고 소위 대정부 투쟁에 준하는 격렬한 반발을 이어갔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대규모 집회까지 연이어 열어 공세의 수위를 올렸다. 택시업계 지도부는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한편,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개##”라는 원색적인 저주를 서슴치 않으며 실력행사에 나섰다. 최근까지 벌어진 3번의 택시기사 분신으로 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택시업계의 반발이 커지자 카카오 모빌리티는 카풀 서비스 잠정 중단을 선언하고 정부 여당이 주도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택시업계를 간신히 ‘모셔올 수’ 있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택시기사의 불친절함과 고질적인 승차거부 등으로 카풀 서비스를 원했으나 택시업계는 ‘묻지마 투쟁’으로만 일관했고, 결국 일정정도 성공한 셈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비슷한 시기 국민적 정서에 반하는 행동으로 지탄을 받아 결국 대의를 따르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택시업계는 보란 듯이 성공했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카풀을 원했던 것은 결국 택시업계의 질낮은 서비스며, 질낮은 서비스의 원인은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사납금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복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장은 사회적 대타협 기구 초반부터 “택시기사에 대한 처우개선은 논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남겨 파장을 일으켰다. 택시업계 노동조합과 택시회사의 끈끈한 유착관계가 사실상 웹하드 카르텔에 비견되는 견고함을 자랑하는 가운데, 기초적인 문제해결 논의도 막아버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개인택시 기사들의 면허시세 하락도 겹치며 논란은 더욱 증폭됐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타협 기구는 자가용에 카풀을 배제하자는 초안을 공개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 정주환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업계 ‘부글부글’...서영우 풀러스 대표 “실효성 없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서 합의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조만간 카카오 모빌리티는 카풀 서비스 상용화에 시동을 걸 전망이다. 그러나 합의문을 둘러싼 논란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승차공유이용자 모임의 김길래 대표는 “오늘 카풀 택시의 합의로 그동안 카풀갈등이 종식됨을 환영한다”면서도 “이용자들의 출퇴근 시간이 다른 현실에서 시간제한에 부분은 이용자들에게 또 다른 규제가 생긴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카풀 1위 플랫폼인 풀러스의 서영우 대표는 다소 격한 반응을 보였다. 서 대표는 “이번 합의문은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면서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합의”라고 주장했다.

서 대표는 “정주환 카카오 모빌리티 대표가 처음 카풀 서비스 시작을 공개할 당시 밝혔지만, 카풀은 택시의 보완재로 작동하며 택시가 잡히지 않는 시간에 운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합의문은 정해진 시간 외 택시가 잡히지 않는 시간을 카풀이 채울 여지를 없도록 만들었다”면서 “출퇴근 시간에만 운행을 허용한다며 시간을 정한 것은 일종의 기형적인 합의”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마지막으로 “기사 월급제 등 기사 처우에 대해서는 찬성하며, 택시업계의 규제가 풀려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합의문 자체가 공감대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일단 합의문이 나왔으니 택시업계는 고소고발을 멈춰야 한다”고 부연했다. 택시업계의 거친 공세가 ICT 스타트업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 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신중한 입장이다. ICT 업계 일각에서 이번 합의문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카카오 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를 두고 진일보한 성과를 거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카카오 모빌리티 관계자는 “당장 서비스를 재개하는 것이 중요했다”면서 “추후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사회적 기구에 참여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 카카오 모빌리티가 ICT 업계의 대표자격으로 사회적 기구에 참여한 것부터 잘못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 모든 책임을 카카오 모빌리티에 전가하는 것은 문제라는 반론도 있다. 택시업계가 카풀 논쟁에 임하며 처음부터 묻지마 투쟁만 전개했고, 국민적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해도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 여당부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새로운 ICT 가능성을 타진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액션플랜을 보여줘야 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는 상대를 대상으로 크게 선방했다는 평가다.

▲ 이재웅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앞으로 어떻게 될까...모빌리티 ‘침울’

소프트뱅크가 우버의 대주주가 되고 동남아시아의 맹주 그랩은 최근 14억달러를 추가 유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까지 글로벌 모틸리티 플랫폼 경쟁에 뛰어들고 중국의 디디추싱은 외연 확장에 여념이 없으며, 리프트도 인상깊은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가 들썩이는 가운데, 당분간 국내 모빌리티 업계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전망이다. 카풀 서비스의 제한적 허용이 시작됐으나 기대했던 수준의 규제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고 택시업계의 강력한 로비력, 파괴력만 부각됐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모빌리티의 초입인 카풀 서비스가 사실상 끝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때 고객의 출발과 도착지를 알고리즘을 분석해 전세 심야버스를 운행했던 콜버스 사례가 회자된다. 당시 택시업계는 대중교통이 끊기는 시간에 운행되는 콜버스 서비스를 격렬히 비판했고, 결국 콜버스와 택시업계가 공동으로 사업을 하기로 뜻을 모았으나 결국 해당 비즈니스 모델은 폐기됐다. 비즈니스 모델의 이유로는 다양한 요인이 거론되고 있으나, 무엇보다 택시업계의 적극성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카풀 서비스도 택시업계의 플랫폼 택시 등과 연결되며 지지부진해질 가능성도 있다.

최악의 경우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이 진입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ICT 업계가 주도하는 모빌리티 플랫폼이 아직 역량을 충분히 쌓지 않은 상태에서 노하우가 풍부한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이 입성할 경우 택시업계와 국내 ICT 업계 모두 공멸할 가능성도 있다.

플레이어들은 일단 살 길을 찾는 일에 몰두할 전망이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앞으로 마이크로 모빌리티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며 활로를 찾을 전망이다. 제한적 카풀 운영을 끌어낸 상태에서 카카오 T 택시와 대리운전, 주차, 내비게이션 등에 카카오 T 바이크도 연결하는 큰 그림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카풀도 추가해 이동하는 모든 것에 대한 주도권을 쥘 여지가 있다.

카카오 모빌리티 입장에서는 카카오 T라는 대형 플랫폼이 존재하기 때문에 카풀만 어느정도 가동되면 다른 이동수단을 연결해 새로운 가능성 타진이 가능하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합의문에서 ‘재시동’을 최우선 조건으로 걸고 그 외 조건에는 IT 업계의 비판에도 한 발 물러선 배경으로 보인다.

쏘카와 풀러스 등 모빌리티 플랫폼들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택시업계는 카풀 서비스에 있어 카카오 모빌리티의 위력을 반감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2015년 우버택시를 몰아낸 승리의 연장선으로 쏘카와 풀러스 등에 화력을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고소고발이 들어간 상태다. 풀러스는 무상 운행 서비스인 풀러스 제도 시행 여부를 비롯해 모든 로드맵을 바꿔야 할 처지에도 몰렸다.

VCNC를 통해 타다를 운행하고 있는 쏘카는 카풀 플랫폼이 아님에도 고소고발전이 한창이다. 다만 쏘카의 VCNC 타다는 불법이 아니다. 쏘카는 “타다는 지난해 10월 시작 이후 서울시, 국토부에서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공표한 바 있다”면서 “서울시에 접수된 ‘타다 허가여부’에 대한 민원 문의에 서울시 공식 답변 내용 역시 타다가 합법적 서비스라고 재차 인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 제18조에 따르면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의 렌터카를 빌리는 경우에는 운전기사의 알선이 가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택시업계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나 논란을 자의적으로 키워 판을 바꿔보려는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균열이 없기 때문에 논란 증폭으로 균열을 만드는 전략이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이를 두고 “택시업계와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택시업계는 여세를 몰아 ICT 시너지도 일부 차용하려는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풀러스와 쏘카에 막대한 지분을 가진 SK와 협력해 ‘동상이몽’을 꿈꾸는 것도 예상가능한 시나리오다. 여기에 택시업계의 자정의지를 대외적으로 보이며 일부 긍정적 파급 창출에 나설 전망이다. 합의문에 택시업계의 문제점을 고치겠다는 의지도 반영된 가운데, 이를 중심으로 ICT 업계와 시너지를 일으키면 의외의 순기능도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