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몇 달 전 회사 내부에 민감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저희 홍보임원이 철저히 대응·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여러 부서들이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아무 문제도 불거지지 않고 그냥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문제는 사내에서 홍보실이 오버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데요. 오버한 거죠?”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특정 위기가 최초 예상과 달리 조용하게 지나가면 사후 평들이 다양하게 나오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 태풍이 서울을 관통한다 해서 여러 비상대책과 인력 동원으로 며칠 난리를 쳤는데, 막상 태풍이 하루 전 충청도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케이스죠. 이후에 정부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정부가 제대로 예상도 못하고 괜히 시민들 불편만 주어 무능하다는 지적을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태풍은 충청도 근방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막상 당일 보니 더욱 강해진 태풍이 서울을 관통해 버린 겁니다. 막대한 피해가 발생해 시민들은 분노를 토로합니다.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비참한 인재를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것이죠.

몇 개월 전에도 이 같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무대책보다는 과잉 대책이 낫다.” 이 말은 위기관리 관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원칙입니다. 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들의 불편과 예산의 투입이 대책을 세우지 않아 발생한 재산과 인명의 피해를 압도할 수는 없습니다.

운이 좋아 매번 위기가 자사를 피해간다는 것은 내심 위안을 삼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대응을 준비하는 그 노력을 폄하하거나 사후에 비판하고 그 위기관리 리더십을 부정적으로 평가해서는 제대로 된 위기관리를 할 수 없습니다.

일단 위기관리를 위해 리더십을 보인 그 홍보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공감해보기 바랍니다. 홍보실이 불필요한 대비를 통해 소중한 예산이나 인력을 탕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전문성 없이 별반 발생 가능성이 없던 상황을 위기로 오인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일까요? 이번을 뼈아픈 교훈(?) 삼아 다음 위기 상황이 예상될 때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반대죠. 위기에 대비하려 임직원들이 준비 작업을 해보았다면 그것은 비용이라기보다는 투자라 보는 것이 좀 더 발전적인 시각입니다. 다음번에는 더 잘 그리고 더 신속하게 준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호들갑은 조직의 민감성 강화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가치입니다. 평소 일부러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라는 호들갑을 떠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외국 학생들이 어학연수하는 미국의 한 대학교 건물에서 어느 날 수업 중 갑자기 화재 벨이 울렸다고 합니다. 교수의 지시를 받은 많은 학생들이 신속히 운동장으로 뛰어 나가는 반면, 한국 유학생들은 느릿느릿 주변을 돌아보며 대피를 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연기나 냄새도 없고 불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보면 분명히 화재 벨이 오작동한 거죠. 외국 학생들이 순진한 거죠” 같은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나 개인의 특성이 자칫 영리해 보일지 몰라도, 위기관리 관점에서는 절대 경계해야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화재 벨이 울리면 당연히 대피해야 한다는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연습의 목적에서도 뛰어 나가는 것이 맞다 생각해야 합니다. 운동장에 뛰어 나가 있는 학생들을 멍청하다고 손가락질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준비를 강조한 홍보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한 것뿐입니다. 위기관리란 스스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