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 인사이트(CB Insights)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에 미국의 네오 뱅크들은 전년에 4배, 2015년에 비해서는 10배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다.   출처= Credit Savvy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10년 전 금융 위기 이후, (대출 채무 불이행으로) 신용을 얻지 못해 불행해진 고객들이 작은 은행을 찾아 대형 은행(Megabank)으로부터 대거 탈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형 은행들은 더 크고 견고해졌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대안 은행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에 앞서 시도했다가 실패한 신흥 은행들의 실수에서 무엇이 실패의 원인인지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들 중 가장 앞서 나가는 곳이 차임(Chime)이다. 차임은 지난해 수수료 없는 온라인 당좌예금 계좌를 200만개나 개설했으며, 현재 웰스파고나 씨티은행보다 매달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차임의 성공은 지난해 10월에 처음으로 여러 가지 부가 기능이 있는, 수수료 없는 온라인 당좌예금 계좌를 개설하기 시작한 엠파워(Empower) 같은 일군의 신규 스타트업들의 사기를 더욱 진작시키고 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은 이른바 ‘네오뱅크’ 또는 ‘챌린저 뱅크’로 알려진, 기본적인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에게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 인사이트(CB Insights)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에 미국의 네오뱅크들은 작년에 4배, 2015년에 비해서는 10배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다.

모바일 결제기업 스퀘어(Square)나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같은 소비자 금융업계 외부의 거물들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 거의 백만명에 달하는 고객을 유치한 네오뱅크 애스피레이션(Aspiration)의 창업자 안드레이 처니는 “소비자 금융은 수익 면에서 미국 최대의 산업이지만, 동시에 가장 신규 진입자가 없고, 소비자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산업”이라면서 “그러나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 산업에 최근 가장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은행들이 고객들로부터 계속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이 오히려 신규 진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온라인 뱅킹에 더 익숙해진 금융 규제 당국들과, 전화로 돈을 지불하거나 송금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젊은 고객들의 새로운 행동 패턴도 이들 네오뱅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 짧은 기간 동안 급성장한 몬조(Monzo)나 레볼루트(Revolut) 같은 영국의 온라인 은행 스타트업들은 미국의 스타트업들들에게 네오뱅크가 성공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Neobank-FinTech

그러나 심플(Simple)이나 무븐(Moven) 같은 최초의 네오뱅크들이 발견한 바처럼, 그것이 수익성 있는 사업을 구축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대형) 은행들은 도전자들을 막기 위한 엄청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네오뱅크들이 사업 초기 시작하는 수표 발행이나 저축 같은 서비스들은 그다지 수익이 좋지 않은 일들이다. 차임 등 네오뱅크들이 결국 수표 발행이나 저축 업무에서 대출 등 보다 수익이 좋은 사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이유다.

그러나 은행권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분명하다. 컨설팅 회사인 CG42는 최근 보고서에서, 10대 대형 은행들이 내년에 1590억달러의 예금을 소규모 경쟁 은행들에게 빼앗길 것으로 전망했다.

CB 인사이트의 금융기술회사 전문 애널리스트 린지 데이비스는 “앞으로 카드와 은행 계좌 시장이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오뱅크들은 대형 은행들을 그렇게 인기 없게 만든 주범인 수수료를 없애고, 지점 위주로 운영되어 온 대형 은행들의 구태의연한 방식을 휴대 전화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모바일 기반 계좌로 바꾸려고 한다.

미시건주의 한 유틸리티 회사에서 배차 업무를 하고 있는 안드레아 존슨은, 자신이 그동안 거래해 오던 PNC 은행이 새로운 수수료 명목으로 당좌 대월 수수료를 부과해 통장에서 수수료를 빼가자 거래 운행을 차임으로 바꿨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각종 수수료를 만드느라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요.”

거래 은행을 차임으로 바꾼 후, 존슨은 PNC 은행의 지점을 이용하지 않고도 모든 은행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급여 수표를 이틀 일찍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네오뱅크의 특전에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

▲ 대안 은행의 새로운 물결 중 하나인 차임(Chime)은 지난해 수수료 없는 온라인 계좌 200만개를 개설했다.   출처= The Hustle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있는 차임에는 1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들은 고객들이 차임의 직불카드로 결제를 할 때마다 비자(Visa)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낸다. 차임은 벤처 캐피털 회사로부터 1억5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차임의 크리스 브리트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5년 후면, 고객들에게 당좌대월 수수료로 연간 300억달러를 부과하는 금융 서비스 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하는 소비자 금융회사들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차임이나 애스피레이션 같은 스타트업들이 유치하는 예금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JP모건 체이스나 웰스파고 같은 대형은행의 예금에 비하면 아직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미국의 네오뱅크들은 이미 소비자 금융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나 영국보다 많이 뒤처져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급성장한 몬조(Monzo)나 레볼루트(Revolut) 같은 영국의 온라인 은행 스타트업들은 미국의 스타트업들에게 네오뱅크가 성공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이 두 회사 모두 미국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의 은행 감독원은 최근, 최저 잔고 없이도 무이자 당좌예금 계좌를 제공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온라인 은행 스타트업 바로(Varo)에 처음으로 은행업 인가를 내줄 것임을 시사했다. 또 다른 규제 당국인 미국 통화감독국(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도, 금융 업무를 하려는 스타트업들에게 특수 핀테크(Fintech) 사업 인가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들 스타트업들이 이런 인가를 받게 되면, 바로 같은 스타트업들은 기존 은행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돈을 보유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따라서 대부분의 네오뱅크들은, 디지털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는 자금이나 전문 지식이 없는 지역의 중소 은행들을 통해 돈을 보관하고 거래를 운영한다.

▲ 차임의 크리스 브리트 CEO는 “앞으로 5년 후면, 고객들에게 당좌대월 수수료로 연간 300억 달러를 부과하는 금융 서비스 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Mobile Payments Today

전통적인 대형 은행들도 이들의 위협을 인식하고 있다. 웰스파고는 당좌대월 수수료와 서비스 수수료를 없앤, 앱 기반 은행 상품 그린하우스(Greenhouse)를 테스트하고 있다. JP모건 체이스도 젊은 고객들을 겨냥해 비슷한 앱인 핀(Finn)을 제공하고 있고, 최근 실리콘밸리에 새 핀테크 캠퍼스를 짓고 있다고 발표했다.

대형 은행들은 지방 지점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했고, 수수료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면서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대형 은행들은 현금인출기(ATM) 사용에서부터 당좌계좌 유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명목으로 부과해온 수수료를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인상해 왔다.

대형 은행들은 또 예금자에게 예금 이자를 지급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대출 이자를 받기에만 몰두해 왔다. 대형 은행들의 그런 구태가 온라인 회사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 엠파워(Empower)는 고객들에게 2%의 예금 이자를 지급한다. 웰스파고의 예금 이자는 0.01%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쟁자는 골드만삭스다. 골드만삭스는 마커스(Marcus)라는 온라인 대출 상품을 출시하면서 스타트업들의 도전을 정면으로 받았다. 골드만삭스는 고객들에게 2.05%의 예금을 제공하는 온라인 저축예금을 출시했다. 이 대형 은행의 경영진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온라인 은행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몇몇 다른 기존 대형 은행들에게서도 감지된다. 400만명의 고객을 투자 앱으로 끌어 모은 투자은행 에콘(Acorn)은 고객들에게 돈을 쓸 수 있는 직불카드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당초 온라인 대출기관이었던 소셜 파이낸스(SoFi)는 지난해 당좌 계좌 개설 업무를 추가했다. 심지어 아마존도 젊은 고객들을 위해 당좌예금 계좌를 개설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가맹점 대금지불처리 업무를 시작한 스퀘어는 은행 계좌 한도까지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스퀘어 캐시 앱(Square Cash app)과 관련 직불카드를 만들었고, 지난해부터 고객들이 그들의 수표를 계좌에 입금할 수 있도록 하기 시작했다.

트위터의 CEO이자 스퀘어의 CEO이기도 한 잭 도시는 “우리는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고객들과 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들에게까지 다가가고 있다. 그것은 당초 삼았던 목표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고 더 많이 기대고 싶은 사업”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