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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월街 내부자들] ④ 헤지펀드의 제왕, 스티븐 코언의 야망과 성공제6화 블랙 에지, 스티븐 코언의 세기의 내부자거래 스캔들
   

SAC를 설립한 스티븐 코언은 뉴욕의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고 중산층 출신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로부터 투자에 대해 배웠다. 그는 11살 때부터 <월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주식의 시세표를 읽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실제 투자를 했다고 한다. 그는 여덟 형제자매 중 셋째였다. 할머니는 특히 스티븐 코언을 사랑했는데, 아마 그가 형제들 중에서 가장 똑똑했던 것 같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에 입학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와튼에 입학했을 때 아주 기뻐했다. 그는 대학 1학년 시절부터 펜실베이니아 외곽에 있는 메릴린치 지점에서 주가를 알려 주는 티커테이프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그 숫자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예측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와튼 시절, 대학 수업은 자기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수업을 빠지면서 메릴린치 지점에 죽치고 앉아 있곤 했다. 그는 대학 시절에 주식시장에 대한 기술을 거의 완벽하게 습득했다.

1978년,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증권회사인 그런탈(Gruntal & Co.)에서 일을 시작했다. 뉴욕증권거래소 바로 옆에 위치한 그런탈은 1880년에 설립된 후 월가에서 격동의 세월 100년을 견뎌 온 회사였다. 그런탈은 월가에서 존경받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코언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코언의 관심은 오직 돈에 있었다. 코언이 그런탈에 입사했을 때, 그런탈은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파는 비즈니스보다는 ‘자기자본 거래’(Proprietary Trading, 증권회사가 자기 돈을 가지고 자기 계정으로 직접 투자해서 이익을 도모하는 거래를 말한다)를 막 시작하려 했던 때였다.

코언은 그런탈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마치 파도같이 움직이는 주가는 그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했다. 베팅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보상을 받는 이 새로운 세계에 코언은 흠뻑 빠져들었다. 그런탈의 트레이딩 플로어는 시끄러운 소리들로 가득했고, 수십 명의 젊은 트레이더들은 전화의 상대편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트레이딩 플로어는 에너지로 넘쳐 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숲속에 폭풍이 몰아쳐 거목들이 흔들리며 나뭇잎들이 흩날리듯 수많은 돈들이 트레이딩 플로어를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바로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탈에서 코언은 상당한 성공을 이루었다. 그런탈에서 그는 이름 없는 ‘스타 트레이더’였다. 그는 트레이딩에 몰입했고 매일 탈진한 상태로 귀가했다. 이러한 상황은 첫 번째 부인인 패트리샤와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의 전 트레이더 중 하나는 코언의 일중독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패트리샤가 아들을 출산하기 위해 병원에서 산고의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는 병원 전화통에 매달려 주문을 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주가의 향방을 맞추는 데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위험을 기꺼이 떠안았고, 자신의 포지션을 헤지(Hedge)하지 않았다. 리스크가 컸지만 이익 또한 컸다. 그러나 그런탈은 리스크를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했고, 코언에게 허용된 운영 규모는 5000만달러였다. 그는 실망했고, 그는 자신이 트레이더로서 성장했던 그런탈을 떠나기로 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1992년, 코언은 자신의 이름을 딴 ‘SAC 캐피탈 어드바이저스’를 설립했다. SAC는 2300만달러의 자본금과 9명의 직원으로 출발했다. 코언은 자신의 돈 1000만달러를 투자했고, 나머지는 그의 트레이더, 친구, 투자자들의 돈이었다. 코언은 첫해 5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1996년까지 그는 SAC의 자산을 4배로 키웠다.

1990년대 중후반, 기술주 버블을 타고 SAC의 규모와 명성은 급속히 커졌다. 1990년에서 2000년 사이에 SAC의 수익률은 매년 70%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SAC가 거래하는 주식의 거래량도 대단했다. 하루에 2000만 주를 거래했다. 거래량이 많을 때는 뉴욕증권거래소 전체 거래량의 3%에 달했으며, 나스닥시장에서도 전체 거래량의 1%에 육박했다.

코언은 월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트레이더라는 명성을 얻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최고의 수익률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2003년에 <비즈니스 위크>는 코언을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트레이더(The Most Powerful Trader on Wall Street You’ve Never Heard Of)”라고 칭송하면서 그에게 왕관을 씌워 주었다.

SAC는 고객으로부터 헤지펀드 업계 최고의 수수료를 받았다. 보통 헤지펀드는 자산의 2%를 운용 수수료로 떼고 성공 보수로 이익의 20%를 가져는 반면, SAC는 운용 수수료와 성공 보수로 각각 3%와 50%를 가져갔다. SAC는 이처럼 엄청난 수수료와 비용을 공제한 뒤에도 연평균 30%의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주었다. 이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이나 다른 헤지펀드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것이며, 이러한 높은 수익률을 18년 동안 계속해서 유지했다는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다(2008년 금융위기 때에만 예외였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SAC는 직원이 1200명이나 됐고, 운용 자산은 170조달러에 달했다.

코언의 개인 재산은 100억달러가 넘는다. 그는 코네티컷주의 그리니치에 대저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집은 30개의 방, 스케이팅을 위한 아이스링크, 농구장, 그리고 2개 홀의 골프코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이스트 햄튼(East Hampton)에도 대저택을 가지고 있다. 이 집 또한 수천만달러에 이른다.

그는 뉴욕에도 펜트하우스를 가지고 있는데, 최근 이 아파트는 1억1500만달러를 호가하고 있다. 그는 프로야구팀인 LA 다저스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뉴욕 메츠(Mets)의 작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코언은 예술품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거대한 조각품을 포함해서 300점 이상의 미술품을 가지고 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의 가격은 총 10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SAC는 약 100명 정도의 펀드매니저가 있는데, 이들에게는 2~3명의 애널리스트들이 붙어 있다. 이들은 대단한 경력들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하버드나 스탠퍼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 팀을 이루어 트레이딩을 하면서 각 팀별로 치열한 경쟁을 한다. 그들은 돈을 벌지 못하면 해고된다. 펀드 매니저의 평균 수명은 4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은 공격적으로 트레이딩을 했고, 정말 치열하게 일했다.

SAC는 월가 회사들과의 네트워크, 새끼 펀드들과의 긴밀한 관계, 산업 전문가들과의 광범위한 정보망을 통해 주식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SAC와 코언은 월가에서 승승장구했다. SAC로 밀려들어 오는 정보 중에는 법의 경계를 넘는 불법적인 정보들이 다수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연방 정부는 어떠한 혐의도 증명하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었다.

SAC의 수많은 트레이딩이 뉴욕증권거래소나 나스닥의 시장 감시 시스템에 종종 경고음을 울렸고, 코언과 SAC를 둘러싼 내부정보 이용에 대한 루머들이 끊임없이 나돌았지만 SEC나 연방 검찰은 내부자거래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듯이, SAC와 코언의 불법거래에 대한 징후들이 구체적으로 여러 곳에서 터져 나왔다. 언론과 SAC가 코언을 가리켜 월가 최고의 트레이더라고 칭찬을 늘어놓고 있을 때, 연방 정부는 그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 가고 있었다.

김정수 법무법인 율촌 고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3.05  15: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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