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필동(筆洞)’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필동은 중구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써 동과 남은 장충동과 붙어있고 서쪽으론 예장동 북쪽으로는 충무로와 접해있다. 이름처럼 조선시대 부동(部洞)으로 부르다 와전되어 ‘붓골’로 바뀌었고, 이 ‘붓골’을 한자로 표기해 필동이 되었다.

필동의 면적은 1.14㎢에 인구는 약 4900명인데, 이 중 외국인 수가 약 900명이다. 20% 정도에 달하는 숫자이니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나름의 이유를 추측해보면 첫 번째로 인근에 명동이 있다. 이곳은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지역이며 때문에 상권 내에 외국인 근무자가 많다. 필자가 명동에서 약 7년간 사무실을 얻어 운영해 왔는데 실제로 외국인 근로자가 많았다. 이들은 마사지 업종이나 화장품 매장 근무자 또는 해당 지역에 장사로 자리 잡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주거인에 대해 상세히 말하는 이유는 뒤에 더 상세히 설명하겠다.

그리고 필동에는 동국대학교와 리라초등학교, 숭의여자대학교가 있다. 거리가 가깝지는 않지만 명동 내에 계성여고와 한성화교들이 다니는 학교도 있다. 그만큼 작은 지역이지만 학교가 많고 외국인 방문객이 많으니 조금만 걸어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필동에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는데 바로 남산골 한옥마을이다. 서울 명동근처에서 주거지역 중 이렇게 많은 명소와 학교 그리고 언론사(매일경제)까지 있으니 그 가치가 높다.

특히 필동의 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동은 명동역과 충무로역을 지나는 퇴계로 길과 남산1호 터널로 진입하는 길을 제외하면 막혀 있는 길이 많다. 뒤에 남산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가자기하며 고즈넉한 집들이 많다. 빌라도 많다. 인근의 학생과 직장인들, 자취생들, 실거주자들에게 유용한 주거지다.

특히 이곳은 작은 규모의 빌딩이 많다. 과거 이곳은 인쇄업의 발달로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근무했으며 언론인과 영화인 등이 활발히 활동했다.

이 작은 필동이라는 지역에 문화와 예술, 언론 그리고 역사와 관광 교육 등 거의 모든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

지금은 인쇄업이 쇠퇴했고 언론사도 신문 구독의 축소 그리고 영화관도 대형화되어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동이 지닌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주거지역의 고즈넉함은 유지한 채 크게 개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필동은 좋은 땅 좋은 모습의 터를 간직한 곳이다. 마치 그 이름처럼 붓을 상징하듯 학교도 많고 문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펜’과 관련한 산업과 그 연계산업도 많이 밀집되어 있다.

그렇다면 필동은 도시풍수적으로 어떤 지역일까?

먼저 필동은 건강한 땅이다. 비록 미세먼지가 심해져 전국적으로 환경문제가 심하지만 그래도 필동은 도시에서는 드물게 나무가 많고 아주 높지 않으면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고지대다. 그리고 남산의 기운 탓인지 용이 굽이치는 산세의 형상 바로 아래에 있다. 이는 인간이 터를 잡고 살기에 좋고 그래서 과거 문화의 중심지였다.

필자는 필동에 가면 사람 많은 평창동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평창동이 지대가 높아 다르지만 골목에서 느껴지는 주거지의 느낌이 참으로 유사했다. 특히 평창동보다 나은 점으로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도심이면서도 고즈넉한 마치 한가로운 수도권 외곽 동네에 온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둘째 작은 골목이지만 깨끗하다.

셋째 소규모 인쇄업 종사자들의 아기자기한 활력을 느낄 수 있다.

다섯째 배움을 위해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

여섯째 한국을 방문해 신기하게 두리번거리는 외국인들,

일곱 번째로 필동은 아기자기한 맛집들이 제법 있다.

이런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복합적인 기운을 간직하면서도 고즈넉한 필동의 터에서 살아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