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지난 27일 한국신용평가는 ‘채권자 관점에서 본 주주행동주의’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행동주의 캠페인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 자산매각 등을 통해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면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 경쟁력과 운영 효율성 강화, 균형 잡힌 재무정책을 유지하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근시안적 주주행동주의로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사례가 많다.

세계적인 미술품과 골동품 경매회사인 소더비는 지난 2014년 행동주의 헷지펀드인 서드포인트로부터 영업적, 기업문화적 혁신을 요구받았다. 부진한 영업실적이 이사회 멤버들의 낮은 지분(0.87%)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지적이었다. 서드포인트는 대표 던 롭을 포함한 3명을 소더비 이사로 추전했다. 이후 이사회는 12명에서 15명으로 늘었고 최고경영자도 교체됐다.

무디스는 서드포인트의 이사 선임이 소더비 신용도에 부정적이라고 발표했다. 행동주의 투자자가 이사회의 20%를 차지하고 있어 향후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5년 9월 3000억원 이상의 현금배당, 한도대출 확대 등을 지목하며 재차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했다.

▲ 출처:한국신용평가

서드포인트는 2017년 항공우주, 건설정보화 등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허니웰에 기업 분할과 소프트웨어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요구했다. 무디스는 사업분할에 따른 외형과 영업현금흐름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했다. 당시 허니웰 경영진이 적극적인 M&A를 통해 외형을 회복하고 주주환원에 힘쓸 것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무디스는 지난 2013년 애플에 Aa1 등급을 신규로 부여했다. Aaa를 부여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애플의 주주친화정책을 들었다. 앞서 애플은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으로부터 주주환원 등을 요구받았다. 2013~2015년 매년 450억달러(약 45조원) 규모의 배당과 자사주 매입 재원은 차입을 통해 조달될 계획이었다. 애플의 현금성자산 중 상당부분은 역외에 예치돼 있어 차입금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지난 5년간 애플의 주주환원 규모는 약 300조원에 달한다. 차입을 통해 주주환원 자금을 마련하면서 애플의 차입금 의존도는 2014년 9월말 15.2%에서 2018년 9월말 31.3%로 증가했다.

“경영진 역할 더 중요해졌다”

장기 기업의 발전 측면에서 보면 주주 행동주의를 ‘탐욕’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주요 기업들이 결과적으로 성장을 이룬 탓이다. 그러나 오롯이 그들의 공으로 돌리기도 쉽지 않다. 기업의 경영은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슈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기업 경영진을 견제하는 세력이 다양화되고 있다. 장기 가치 창출에 초점을 두는 캠페인도 확산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를 기업약탈로 단정하기보다 재평가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소영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주주 행동주의에 대해서 나쁜 인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긍정적 요인도 존재하는 가운데 주주와 채권자의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경영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 출처:국민연금공단

박 연구원은 사모펀드 KCGI와 국민연금의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관련 사회적 논란과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또 기업가치 제고 방안이 실현돼도 대부분 중장기 계획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정확한 시행방안과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워 한진그룹 계열사 신용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렵다고 설명했다.

주주행동주의가 단기 수익률 극대화를 주된 목표로 할지,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발전을 촉구할지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전자는 재투자 재원 고갈, 재무안정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후자는 기업 펀더멘탈 강화로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박 연구원은 “경영참여 형태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시 입장 조율, 표 대결, 법적 공방 등으로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며 “운영 효율성이 저하되거나 급변하는 시장 환경 대응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철저한 이해상충 관리와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대그린푸드와 남양유업, 대림산업 등도 주주행동주의와 대립 중이다. 많은 이견이 존재하는 만큼 주주와 채권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 타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기업과 경영진의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