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코노믹리뷰

[이코노믹리뷰=강수지 기자] "출산 후 딸이면 보험료 일부 환급됩니다."

태아보험을 준비하는 임신부라면 한 번쯤 듣게 되는 말이다. 이는 태아보험을 가입할 때 뱃속에 있는 아이가 남자 아이라는 가정 아래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는 보통 여자 아이에 비해 보험료가 살짝 비싸다. 따라서 딸을 낳게 되면 그 동안 낸 보험료 중 일부를 환급받게 된다.

사고 위험률 높은 '남자 아이'

남자 아이의 보험료가 여자 아이보다 비싼 이유는 뭘까?

이는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에 비해 보험금을 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즉 남자 아이의 사고 발생률, 위험률이 높은 것이다.

어린이보험에 들어있는 보장은 각 보험회사마다 다르다. 또 각 보장마다 성별과 연령에 따라 위험률도 다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장에서 남자 아이의 위험률이 높게 책정돼 있다는 게 보험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이 같은 통계에 따라 남자 아이의 보험료가 여자 아이의 보험료보다 비싼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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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에 따른 차등 보험료는 성차별"

이처럼 아이들의 보험료가 성별에 따라 달라지자 일부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으며 노는 남자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나무에 오르는 등 위험하게 노는 여자 아이도 있는데, 성별에 따른 위험률 적용은 성차별이 아닐까요?"

"성별은 정해서 태어날 수 없는, 개인이 통제하지 못 하는 부분인데 이를 놓고 아이들의 보험료를 구분 짓는 것은 편견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뱃속에 있을 땐 남자 아이로 가정해 보험료를 더 받고, 딸이 태어나면 보험료를 일부 환급해주는 것은 엄연한 성차별 아닌가요?"

"대한민국 헌법에도 성별에 의해 경제적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나와있는데, 헌법이 보험보다 위에 있지 않은가요?"

실제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보험업 특성상 성별 따라 다른 위험률 적용"

이에 보험업계의 의견은 확고하다. 법이 보험보다 위에 있는 것은 맞으나 업권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통계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성차별과는 별개라는 설명이다.

보험업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대수의법칙 등을 근거로 해 성별에 따른 아이들의 차등 보험료는 당연하다는 의견이다. 남녀 성별에 따른 편견이 아닌, 위험률 통계에 의한 결과기 때문이다.

대수의 법칙은 관찰 대상의 수가 늘어날수록 개개의 단위가 갖고 있는 고유의 요인이 중화되고, 그 집단에 내재된 본질적인 경향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어린이보험의 보장 내용은 각 보험회사마다 다른데다가 각 보장마다 성별과 연령에 따라 위험률도 다르다"면서 "일반적으로 남자 아이의 위험률이 높게 책정된 보장이 많아 남자 아이의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말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성별에 따라 다른 보험료는 보험개발원 등을 통해 검증된 통계 수치에 근거해 적용한 위험률 등을 바탕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타당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회사 관계자는 "보험은 업계의 특성상 위험률을 따져 보험료가 정해지기 때문에 성별, 연령, 직업군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 같은 차이를 두지 않을 경우 보험업 자체가 흔들릴 것이고, 많은 상품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린이보험의 한 관계자도 "성별에 따라 다른 위험률이 적용된 보험료를 성차별로 바라볼 수는 없다"며 "대수의 법칙 등에 따라 보험료가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보험에서 성별에 대한 차이가 사라진다면 모든 보험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험업계는 성별에 따라 다른 위험률에 대해 성차별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당연하고 또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성별 따라 다른 보험료 '성차별'로 인식하는 해외

그러나 최근 해외에서는 성별에 따라 다른 위험률 적용이 성차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올해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하와이, 메사추세츠, 미시간,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가주 등 8개주에서 자동차보험료 산정 때 성별 적용을 금지하도록 했다. '성별 등 운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는 이유다.

미국의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과거 2011년 유럽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통계상 위험하다는 이유로 보험료가 더 높은 것은 부당하다는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당시 유럽사법재판소는 "성별을 보험 계약과 관련한 위험 요소로 판단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통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사고를 많이 낸다는 것도 비합리적"이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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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차등 보험료 합법…문제의식 약해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까지 성별에 따른 보험료 차등에 대해 성차별이라는 문제인식이 약한 편이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만 언급될 뿐이다.

오시영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국내의 경우 보험료에 있어서 성별에 따라 다른 대수의 법칙과 위험률, 통계 등을 반영해 차별하는 것은 정당하다"며 "차별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차별"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어 "법적으로 정확히 말하면 차별이 아닌 차등"이라며 "보험료의 경우 위험률 등의 조건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이 합법이라는 판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태진 변호사는 "보험사 입장에서 대수의 법칙 등에 따른 데다가,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은 것이기에 문제가 없을 수 있다"면서도 "법원이 외국 사례들을 인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어 "아직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상태"라며 "법원 역시 법리적인 판단 이외 정책적인 고려 등에 따라 성차별에 대한 주장을 배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