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의 메릴 린치, 피어스, 페너앤스미스(당시 회사 이름) 사무실 전경.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마더 메릴’(Mother Merrill)이 사라진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Corp., BOA)는 일부 사업부에서 메릴린치라는 명칭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Charlotte)에 본사를 두고 있는 BOA가 그 유명한 월 스트리트 회사 메릴린치(Merrill Lynch)를 인수한 것은 10년도 더 전이었다.

BOA는 25일(현지시간), 투자은행 사업 조직에서 메릴린치라는 이름을 뺄 것이며, 대신 ‘BofA 증권’(BofA Securities)을 신설하고, 자산관리사업부를 그냥 ‘메릴’로 변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메릴린치는, 2008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당시 급매물로 나온 것을 BOA가 인수하면서 그동안 BOA의 핵심 사업 역할을 했다.

메릴린치라는 상표 변경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메릴린치는 월가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회사다. 위기 때 매각된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매각 후에도 그 이름만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또 BOA의 시대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도 반영한다. BOA는 금융위기 후 여러 문제에 휘말려서 새로 인수한 사업체의 이름을 바꾸는 데 힘을 쏟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사업부들이 보다 긴밀히 협력하도록 조직을 갖춰 안정적이고 기록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브라이언 모이니한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회사 조직을 통합하는 작업을 10년 전부터 해 왔다"고 말했다.

▲ 지난 수년 동안 사내 조직 갈등의 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모이니한 CEO가 브랜드화에 더 집중하면서, BOA는 지난해 말 로고와 광고 슬로건을 개편했다.   출처= BOA

메릴린치는 1914년 찰스 메릴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의 친구 에드먼드 린치가 곧 그와 합류했다. 이후 수 년 동안 전국적인 지사를 가진 중개회사로 성장하면서, 회사의 로고에 사용된 황소에서 따온 ‘한꺼번에 움직이는 소떼’(thundering herd)란 별명을 얻으며 일반 대중들의 투자를 이끌었다. 이 회사는 또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은행을 설립하고, 직원과 고객에 대한 모성애적 기업 문화를 표방하면서 '마더 메릴'로 불렸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당시 스탠리 오닐 CEO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자산 축적과 같은 위험부담이 큰 상품에 비중을 두는 실적 위주의 전략을 추구했는데, 그런 민첩성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며 결국 회사의 매각으로 이어졌다.

BOA는 소매금융, 기업대출 등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업을 통해 급성장한 남부의 토종 은행이었다. 그러나 메릴린치를 인수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투자은행 및 자산관리회사로서 월가의 거인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메릴린치와의 합병으로 여러 갈등에 휘말리게 된다. 합병 후에도 문화 충돌이 계속 이어졌고, 일부 메릴린치 출신들은 자신들이 뱅크오브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에 따라 BOA 경영진은 메릴린치라는 이름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2년에도 언론들은 BOA가 메릴린치 명칭을 바꿀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업고객을 상대하는 투자은행, 자산거래 사업부들은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ank of America Merrill Lynch) 즉 BAML로 불렸다. 이제 기업 고객들을 상대하는 사업부들은 그냥 BOA로 불릴 것이며, 투자은행과 자산거래 사업부는 ‘BofA 증권’(BofA Securities)이라고 불릴 것이다.

소매 고객을 다루는 메릴 엣지(Merrill Edge) 사업부에서부터 ‘한꺼번에 움직이는 소떼’라는 별명이 붙었던 메릴린치자산운용(Merrill Lynch Wealth Management)에 이르기까지 자산 관련 사업부는 새로운 이름 ‘메릴’로 불릴 것이다. 회사는 황소 로고는 그대로 남겨둘 것이라고 말했다. 초부자 고객들을 다루는 자산 인수 사업부 유에스 트러스트(US Trust)는 뱅크오브아메리카 프라이빗 뱅크(Bank of America Private Bank)로 불리게 됐다.

모이니한 CEO는 "자산운용 브랜드에 메릴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명백하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에 관한 한, 메릴이 1위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여러 사업부의 이름을 통합하고 있지만, 그동안 한 때 메릴린치였던 문화도 뱅크오브아메리카라는 우산 아래서 이미 변모했다. 모이니한 CEO는, 한때 메릴린치에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지만 결국 몰락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고위험 전략보다는, 은행 전반에 걸쳐 안전성을 추구하는 ‘책임 있는 성장 전략’을 실행해 왔다.

게다가, 현재 투자 은행 및 자산 거래 사업부의 고위 간부들 중 다수는 메릴린치 출신들이 아니다. 이들 사업부를 총괄하고 있는 톰 몬태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BOA가 메릴린치를 인수했을 때 메릴린치에서 짧게 일했지만 대부분은 골드만삭스 그룹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모이니한은 그동안 여러 사업부들이 (출신 구분 없이) 조화롭게 일하도록 애를 썼지만 쉽지는 않았다. 자산운용 사업부에 소속돼 있던 전국의 독립 투자자문역들은 그동안 소비자금융 사업부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그동안 이들의 불만 거리였던 고객 예금 업무와 기타 소비자 상품들까지 취급하지 않아도 되게 했다.

자산운용 사업부는 BOA의 고객 기반을 다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3분기에 은행의 모기지 포트폴리오의 36%는 자산운용 사업이었다.

2010년에 CEO에 오른 모이니한은 지난 수년 동안 사내 조직 갈등의 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제는 브랜드화에 더 집중하고 있다. BOA는 지난해 말 로고와 광고 슬로건을 개편했다. BOA는 2018년에 281억 5000만 달러(31조 5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달성했다. 법인세 인하와 금리 상승이 도움이 됐지만, 지난 수 년 동안 꾸준히 경비 절감과 우량 기본 계좌 (primary checking accounts) 같은 핵심 상품에 집중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