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파이크 리(왼쪽)과 마허샬라 알리. 두 사람이야말로 이번 시상식의 진정한 승자다.     출처= 워싱턴포스트(WP)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헐리우드 비즈니스에서, 이번 오스카 시상식은 완전히 새로운 판도가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아카데미상 시상 부문에서 처음 상을 타기 위해 스트리밍 업체가 참여했고, 디즈니는 첫 최우수 작품상을 노렸으며, 단골 손님이었던 20세기 폭스 스튜디오는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고 새 시대를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4일 밤, 이 시상식은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줬다. 넷플릭스(Netflix)는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도 역사적인 첫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날 밤의 대미는, 전통적인 스튜디오 유니버설 픽쳐스(Universal Pictures)의 전통적인 영화 <그린 북>(Green Book)이 작품상을 수상하며 장식했다. 200분 동안 주최자 없이 빠르게 진행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하나의 산업으로서 헐리우드가 과거에 미련을 가지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포용하는 혼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일요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얻은 주목할 만한 여섯 가지 비즈니스 교훈을 정리했다.

파티시펀트 미디어

최근 몇 주 동안 영화계 사람들이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두 개의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소위 앞서 간다는 사람들은 영화 <로마>(Roma)를 지지했고,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은 <그린 북>을 응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느 정도 비즈니스 차원의 비밀이 있다. 이 두 영화는 모두 같은 회사에서 나온 것이다. 주로 사회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한 작품을 만드는 제프리 스콜의 파티시펀트 미디어(Participant Media)가 두 영화의 자금을 조달하고 제작했다.

파티시펀트 미디어는 사회적으로 의식이 있는 영화를 만드는 회사로, 2016년 수상작이었던 <스포트라이트>나, 올해의 다큐멘터리 후보작이었던 <RBG>가 그들이 만든 영화였다. 이것은 정치적인 성향을 숨기지 않던 할리우드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획일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증거다. 좋은 원작은 그것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돈과 명예를 얻는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전통적 스튜디오의 귀환

이번 시상식은, 지난 수 년 동안 독립 회사들이 최고 상을 휩쓴 이후 전통적인 스튜디오들이 대거 귀환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15년 동안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유일한 전통적 스튜디오는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 뿐이었다. 워너 브라더스는 올해 <스타 이스 본>(A Stat is born)으로 시상식에 복귀했다.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의 협업 작품인 쉘로우(Shallow)가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 리드 싱글로 발매되면서 이 영화는 지난 여름 이후 영화제에서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전세계 박스 오피스에서 4억 24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워너 브라더스는 2000년대 중반 <아르고>(Argo),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디파티드>(The Departed)로 최고 작품상을 거머쥐었던 영광을 재현할 태세다.

그리고 일요일 밤의 대미를 이 전통 스튜디오 중 하나인 유니버설 픽처스가 장식한 것이다. 메이저 스튜디오로는 워너를 제외하고는 17년 만에 첫 작품상 수상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린 북>이 워너의 대작에 대항할 만한 작품으로 간주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유니버셜 내에서도 회사가 미는 작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유니버설은 아폴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을 다룬 영화 <퍼스트 맨>(First Man)을 유력 후보로 내세웠지만 이 영화는 개봉 초기부터 팬들로부터 외면당했다.

▲ 2020년 오스카상은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대결이 될 것이다.    출처= Superhero News

크리에이터 스파이크 리(Spike Lee)의 의미

<블랙클랜스맨>(BlacKkKlansman)의 작가이자 감독인 스파이크 리는 그의 복장, 매너, 입담에서 단연 돋보였다.  

이 영화가 수상한 각색상 또한 비즈니스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업계의 많은 규칙을 무시하고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증거이기 때문이다. 스파이크 리보다 스튜디오나 큰 손들과 더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크리에이터는 많지 않다. 스파이크 리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강자들을 위해 많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최근 몇 년간은 활동이 뜸했다(오히려 <레드 훅 섬머>(Red Hook Summer) 같은 저예산 영화를 만든 게 고작이었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스파이크 리가 스튜디오와 협력해 만든 영화 중 <인사이드 맨>(Inside Man)이나 <말콤 X>(Malcolm X) 같은 영화들은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클록커즈>(Clockers)나 <세인트 안나에서의 기적>(Miracle at St. Anna) 같은 영화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스파이크 리가 유니버설 픽처스의 특별 사업단인 포커스 피처스(Focus Features)를 위해 <블랙클랜스맨>을 만들었다는 것은 시스템 밖에서 자금을 조달한 영화보다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유명 영화사에서 만들어진 영화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결국 그런 차이가 현명한 판단이었음이 이번에 입증됐다. 이 영화로 그의 첫 번째 오스카상을 받았다.

넷플릭스 주목받은 이유

이 스트리밍 업체의 성대한 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넷플릭스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스페인어 영화 <로마>는 무려 8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고 3개의 오스카상(감독 촬영, 외국어영화)을 수상했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감독상이다. 그것은 중대한 쿠데타다. 그 기술 지향 회사는 과거에 그 유명한 오스카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유력시됐던 가장 큰 상인 최우수 작품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엇이 그 영화를 그렇게 대단한 영화로 평가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확실히 외국어 영화로서 그 영화는 수상작으로서 손색이 없다(영어가 아닌 영화가 오스카의 최고 영예를 차지한 적은 없다). 그러나 전통적인 할리우드 업계의 비위를 건드린 회사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일부 영화계에서 넷플릭스가 극장에서 오랫동안 영화를 상영하기를 꺼려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넷플릭스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회사와 베테랑 전략가들은 이미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 시상식 중에도 그들은 올 가을에 극장가에 선보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019년 영화 <아일리시 맨>(The Irishman)을 홍보하며 내년 시즌의 수상 희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디즈니의 성적은

곧 스트리밍 라이벌이 될 넷플릭스와 같은 질문, 디즈니는 이날 밤 성적이 어땠을까?

<블랙 팬서>(Black Panther’s)의 정치적 메시지처럼 복잡하다. 지난 해 <블랙 팬서>가 작품상을 수상하지 못하면서 이 랜드마크 스튜디오는 여전히 작품상을 받은 적이 없다. 디즈니는 또 지난 10년 동안 두 번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런데 어떻게 지난 일요일 밤이 디즈니의 승리로 여겨질 수 있을까?

그러나 디즈니의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는 <블랙 팬서>로 미술, 의상, 음악 등 3개 분야에서 첫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그 중 미술과 의상은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의상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루스 카터는 이 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고, 미술상을 수상한 해나 비츨러 역시 이 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되었다.

마블이 미래의 영화로 다시 옛 영광을 재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라이언 코글러 감독의 <블랙 팬서>가 시상식에 진출한 디즈니의 유일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즈니는 아직 완성체가 아니다. 조만간 폭스의 인수를 완료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미 몇 차례 수상 경력이 있는 배급사 ‘폭스 서치라이트’(Fox Searchlight)도 디즈니의 품에 들어올 것이다. 폭스 서치라이트는 지난 6년 동안 세 차례의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번 시상식에서도 <더 페이버릿>(The Favourite)으로 올리비아 콜맨이 여우 주연상을 수상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대하시라, 2020년 오스카상은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대결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마블이 아니다.

오크카상 영화의 극장 흥행은

오스카 수상작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19년 수상작들은 그 영화들의 흥행이 얼마나 느리게 시작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할리우드 기자들은 흥행 평가에서 "<그린 북>이 추수감사절 주말에 1000개 이상의 극장에서 상영됐지만 개봉 첫 5일 동안 국내에서 740만 달러라는 ’실망적’인 성적을 내면서 매우 고전했다"고 썼다.

평가도 중간 점수 밖에는 받지 못했다. 사실, LA 타임즈(A Times)의 저스틴 창 같은 일부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2006년 수상작 <크래쉬>(Crash)와 비교하며 이 영화의 인종 메시지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그린 북>은 개봉 후 특별히 많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사실 이 영화는 3개월 이상 상영되었지만 주말에 6백만 달러 이상을 번 적이 없다.

그러나 상업적인 의도로 제작된 오스카상 경쟁작들은 극장가를 빠르게 점령했다. <스타 이스 본>과 <보헤미안 랩소디>는 처음부터 3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독점했다. 물론 <더 페이버릿> 같이 10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데 한 달이 걸린 영화도 있다. <그린 북>은 복합적인 접근방식을 구사했다. 처음에는 불과 25개의 스크린으로 시작하다가 두 번째 주말에 1000개가 넘었다. 그러나 오스카상 후보에 지명된 이후에도 두 달 동안 2000개의 스크린을 넘지 못했다.

그러면 지금은? <그린 북>은 현재 7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내고 있는데, 이는 3억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린 2009년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만큼은 아니지만, 2017년 수상작인 <문라이트>(Moonlight)보다는 나은 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