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 요약.(2월14일~25일까지) 출처=DB금융투자

[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 지난해부터 이어진 회사채 호황이 올해에도 지속되고 있다. 1조원대 청약 행진은 물론 경쟁률도 높다. 금리 상승세가 제한적인 가운데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견고해 발행 여건이 양호한 탓이다. 반면, 개인 채권 투자는 그 어느 때보다 시장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26일 DB금융투자에 따르면 2월 넷째주 회사채는 2조1000억원 순발행, 총 1조4000억원으로 연휴 이후 크게 증가했다.

회사채 발행 호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SK그룹은 올해 들어 이미 1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주요 대기업 그룹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현대건설 역시 최근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1조원에 가까운 청약을 끌어냈다. 모집액 2000억원 대비 5배에 육박하는 수요를 모았다. 발행금리 또한 민평보다 낮은 수준으로 형성돼 올해 첫 건설사 공모채 물꼬를 제대로 텄다. 롯데렌탈 역시 청약 1조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20일 수요예측을 실시한 롯데렌탈은 트랜치 3·5·7년물로 나눠 2000억원 규모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총 1조1100억원이 유입됐다. 롯데렌탈 회사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지난 2012년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된 이래 가장 뜨거웠다. 엔씨소프트 역시 지난달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1조원에 가까운 뭉칫돈이 몰렸다. 엔씨소프트는 3년물 1000억원, 5년물 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으로 수요예측에서 각각 4600억원과 49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불확실한 경기와 풍부한 시중 유동성, 저금리 기조 등 삼박자가 맞물리면서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설 이후 투자검토를 마친 기관투자자들이 회사채 자금집행 수요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금리변동성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투자자금이 향할 곳이 발행시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구혜영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낮은 국채금리 속에서 채권투자자들은 회사채 발행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면서 “지금처럼 국채 금리가 낮은 레벨과 좁은 박스권 안에서 등락하는 경우에는 케리수익 관점에서 형성되는 회사채 투자 메리트가 여전히 높게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케리수익이란 채권을 계속 가져가면서 얻는 정기적인 이자수익을 의미한다.

회사채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반면 개인투자자들이 회사채 시장에서 설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채 시장 내 신용등급 간 조달 양극화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발행된 국내 공모 일반 회사채 발행 중 AA급과 A급 물량 비중은 각각 55.9%, 16.8%로 AA급이 무려 3배 이상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AA급은 우량 회사채로 금리가 안정적인 만큼 개인들의 투자처가 아닌 기관들이 주로 투자를 한다.

박진영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인별 채권투자는 일반적으로 회사채의 경우 BBB등급 정도부터 투자를 하는 편”이라면서 “우량 회사채의 경우 금리가 많이 나오는 편이 아니라서 예금에 넣는것과 큰 금리차가 없어 개인 입장에서는 굳이 채권에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재 증권사에서 판매중인 A, 및 BBB 등급의 회사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K모 증권사에서 판매중인 비우량 등급 회사채 상품. 출처=해당 증권사 홈페이지 캡쳐

현재 모 증권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우량등급이 아닌 회사채는 한화건설(BBB+), 한진(BBB+), 한국자산신탁(A-), SK해운(BBB+), 한국캐피탈(A-), AJ네트웍스(BBB+), SK건설(A-), 대한항공(BBB+), 효성캐피탈(A-) 등이다. 이들의 세후 수익률은 모두 2.4%~2.8%대에 그쳤다.

금융감독원 금융상품통합비교공시에 따르면 케이뱅크은행의 세후이자율은 2.16%에 달한다. 카카오은행 역시 정기예금의 세후 이자율은 2.12%로 BBB등급의 회사채 수익률과 최소 0.3%포인트밖에 수익률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저축은행의 경우 세후 이자율은 2.3%로 최고 우대금리는 2.77%까지 오른다. 예금자보호가 되는 은행과 수익률 차이가 거의 없는 만큼 일각에서는 개인 채권투자 시장이 아예 없어졌다는 반응도 이어진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개인투자자자가 투자를 통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졌다”라면서 “그동안 고금리에 투자하던 시장자체가 아예 소멸된 수준이고 투자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운데다 쉽게 팔 수 있는 것은 수익이 나지 않고 반대로 수익이 나는 건 과거 트라우마가 존재해 쉽게 투자대상으로 물망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