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부동산이 집계한 월간 매매시장과 전세시장 동향. 전세시장의 침체 전망이 유지되고 있다. 출처=KB부동산.

[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아파트 매매시장이 대출 규제 등을 원인으로 거래 절벽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전세시장에서도 매수자 우위 형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매물이 적체되면서 자금 순환에 어려움을 느끼는 집주인들이 급처분을 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강동과 송파권에서 하나둘 급매가 나오고 있지만 매매가 하락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월 3주 서울 전세가격 변동률은 –0.22%로 지난 2월 2주 –0.17%에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7주 연속 하락한 수치이고, 최근 10년 내 최장기간 연속 하락한 결과다.

신규 입주와 등록 임대주택의 물량이 누적되면서 전세공급량이 증가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감정원은 집값 하락 우려가 계속되면서 매매수요를 전세로 전환하거나 계절적 수요로 전세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 게 사실이라면서도, 입주율이 하락하면서 전반적으로 세입자 우위시장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강남권 11개구는 –0.26%로 서울 전세가격의 하락세를 견인했는데, 이 가운데 강남구 –0.78%, 강동구 –0.34%가 신규 입주 영향으로 전세 물건이 누적되면서 하락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보인다. 송파구는 미성크로바 1350가구, 진주아파트 1507가구 등 재건축 이주수요가 일부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만 공급량이 수요를 넘어서는 시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가율 하락으로 인해 송파구 등 강남 4구의 ‘역전세난’도 대두되고 있다. 역전세난이란 세입자를 받을 당시의 전세가보다 나갈 때의 전세가가 더 낮아지면서 보증금을 충당할 새로운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더구나 해당 지역은 헬리오시티를 필두로 지속해서 대량 공급이 이어질 전망이다. 신축이라 향후 부가가치도 기대할 수 있고, 실거주에도 편리한 설계구조를 지닌 아파트에 수요자들을 빼앗긴 기존 아파트 보유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이유다.

세입자 입장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보증금을 반환받아 이주하려는 주택의 보증금을 내야 하지만, 기존에 거주한 주택에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집주인의 반환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KB부동산이 발표한 월간 전세시장 동향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월에 집계한 전세전망치는 83.3으로 기록됐다.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전세가격이 하락할 거란 예상이 우위를, 반대는 상승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해당 통계치의 정점을 찍은 2018년 9월의 수치는 102.2로 매도자 우위의 시장이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 더 많았다.

전세매물 수급량은 97.9로 100에 근접했다. 공급량과 수요량이 거의 비슷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1월 전세거래량은 11.3으로 기준점 100의 약 10분의 1 수준을 보였다. 지난해 9월의 26.6의 절반에도 못 미친 수치다. 수요와 공급은 비슷하지만 실제 거래로는 이어지지 않는 시장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2018년 9월 수급량 수치는 125.4로 오히려 완연한 공급 부족을 보였지만, 지난해 12월 말 9510가구 규모의 헬리오시티가 입주를 시작하고 전세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수급량은 100 아래인 98.7로 떨어졌다.

▲ 전체 9510가구 가운데 전세매물로만 3360건이 나와있는 송파 헬리오시티. 출처=네이버부동산.

실제로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헬리오시티 9510가구 가운데 전세매물로 나온 물량은 총 3337건으로 심한 적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 가구수 가운데 3분의 1이 전세 물량으로 나왔지만 거래되지 않으면서 매물 현황판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다.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역시 전체 4424가구 가운데 전세매물이 436건으로 약 10분의 1이 전세 매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시장의 수요자 우위를 보여주는 지표는 또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이 지난 2월 19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월 전국 입주경기실사지수(HOSI) 전망치는 71.3%로 1월보다 7.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개월 만에 70선을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주산연은 입주물량 증가가 예견돼 있고 정부의 규제 강화기조가 계속되면 입주 여건이 대폭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입주경기실사지수는 공급자인 주택사업자가 입주를 앞두고 있거나 입주하고 있는 단지의 여건을 판단하는 지표로 기능한다. 지표가 기준점인 100을 넘으면 입주 경기가 긍정적이란 전망이, 100보다 적으면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70선 회복은 주택 공급자 측면에서 지난 1월에 비해 다소 개선된 수치다.

다만 서울지역의 경우 지난 1월 수치인 81.1에서 다소 하락하면서 입주여건이 악화됐다. 지난해 말부터 9510가구 규모의 송파구 헬리오시티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서울 지역의 HOSI는 78.5로 집계됐다. 서울지역이 70을 넘은 것은 2017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주택매매가 이상 과열 현상의 배후로 지목된 공급량 부족은 크게 줄었음을 알 수 있다.

2월 전국 입주예정물량은 전국 4만5000가구로 이 가운데 60%인 2만6000가구가 수도권에 쏠려있다. 주산연은 서울 성동구와 강남구, 인천 서구와 남동구 등지는 대규모 민간분양단지는 입주 예비자를 위한 입주지원 대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서울과 강남4구의 연간 전세가 하락율 추이. 출처=직방.

전세가격의 하락세는 연 단위로 계속되고 있다. 직방이 집계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은 2017년 3분기부터 아파트 전세보증금이 하락세로 전환했다. 지방은 2017년 1분기부터로, 이는 9.13 대책의 영향과는 별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송파구의 하락률은 2018년 동안 10~12%대를 유지했지만, 올해 1분기 들어 32.2%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강남구는 지난해 4분기 14.8%에서 27.3%로 두 배 가까이 뛰었고, 서초구 역시 같은 기간 20.7%에서 42.6%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같은 조사에서 전국 주택 가운데 2년 전보다 전세가격이 하락한 주택은 38.6%였다. 이 가운데 수도권은 29.7%, 지방은 51.3%가 2년 전보다 가격이 낮아졌다. 2016년까지 해당 수치는 전국 10% 미만, 수도권 5% 미만, 지방 20% 미만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 2년 전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되는 아파트 전세 계약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직방은 공급물량 증가, 기존 전세세입자의 분양시장 유입으로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는 등 수요·공급의 불일치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 하락에 따른 수익성 저하와 보증금 반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지만, 임차인 입장에서는 낮아지는 전세보증금으로 주거비 부담 경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반된 시장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거래량 자체는 늘어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서울시내 전세 거래량은 1만3012건이었다. 이는 9921건인 지난해 1월보다 약 3000건 많은 수치다. 전세거래량은 9.13 대책이 나온 9월 9835건을 기록했고, 10월부터 1만3744건, 11월 1만1997건, 12월 1만795건으로 등락을 반복했다. 추세로 보면 유의미한 수치가 아니다. 또한 일정 부분 전세 거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역전세난’이라는 최근의 보도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특히 헬리오시티의 입주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31일, 실질적으로 1월 송파구의 전세 거래량은 1766건으로, 9월부터 12월까지의 평균 거래량인 1021건을 약 700건 상회하고 있다.

전문가는 이것이 전세 대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물량이 쏟아지면서 거래 또한 활성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거래량 증가가 역전세난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라면서 “최근 일정 부분 금리도 올랐고, 전세 공급이 다량으로 풀리면서 ‘저렴한 전세’가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영진 랩장은 “집주인 입장에선 기존의 집을 매매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실입주가 안 되니 한동안 잔금 회수를 위해 월세로 선회했다”면서 “그러나 전세대출 자금을 해결하려는 집주인들의 니즈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주택비용을 부담하려는 세입자의 니즈가 만나면서 전세 매물이 풍부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매시장 영향은?

이 같은 상황에서 전세가격 하락이 매매시장 또한 하락시킬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수익성을 믿고 ‘갭’ 투기를 해온 입장에선 전세가격 하락이 아파트 매물 자체의 매력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매수자 관점에선 아직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매매와 전세 모두에서 거래가 활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송파 헬리오시티는 입주가 끝나는 3월 이후 잔금을 치러야 하지만, 서둘러 임차인을 구하지 않으면 자금 순환이 어려운 상황이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월세 가격은 매매 가격의 선행지표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면서 “전세가격이 하락하면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차라리 매물을 매매로 돌리면서 매매가 역시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교수는 “지금의 역전세난은 시장 규제의 영향이 더욱 크다”면서 “전세가와 매매가가 동반 하락하는 추세가 지속되면 매매가는 자연히 내려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은 임대 수익률에 따른 전환기가 되면 동반 상승·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권 교수는 “대출규제가 시행되면서 전세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면서 “깡통주택이 생겨나면 집주인들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주려고 하는데, 대출이 막히면 원활한 자금 흐름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전세 매물을 갖고 있는 1가구 다주택자들이 시장에 매물을 내놓아야 세입자의 전 재산인 보증금을 손실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집계한 송파 헬리오시티 전세매물의 실거래 건수는 세 건에 불과했다. 출처=서울부동산정보광장.

아직까지 시장에서 보증금 미반환 문제나 매매가 하락으로 직결되는 흐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헬리오시티 주변 공인중개사들은 약 3000개에 이르는 전세 매물은 동호수가 표기되지 않으면서 생기는 ‘중복매물’일 경우가 크다고 설명한다. 석촌동 C공인중개사는 “해당 매물 가운데 약 3분의 2가 소진됐다”면서 “잔금 처리가 어려운 주인들이 급매로 싸게 내놓으면서 거래가 많이 이뤄졌고, 12월 전용면적 84㎡ 기준 약 6억1000만~2000만원에 거래된 물건이 현재 6억5000만원까지 다시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집계한 송파 헬리오시티의 전세매물 실거래 건수는 아직 단 세 건만 조회 가능하다.

석촌동 R공인중개사는 “급매물들은 2월까지 꾸준히 계약 중이고, 입주율은 50% 미만이고 잔금 처리는 50%를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은 매물들은 가격이 싸진 않지만 본인 집으로 들어올 돈을 구하지 못해 특정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는 두 개의 매물이 약 9억8000만원대에 나왔지만 아직 시세 형성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는 올해 1월 들어 실거래가 기준 약 5000만~2억원 정도 하락했다. 출처=서울부동산정보광장.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고덕 래미안힐스테이트의 경우 전용면적 84㎡ 두 가구가 올해 1월 거래됐다. 해당 매물은 고층 기준으로 약 12억원에 이르는 가격이었지만 1월 거래된 가격은 9억8000만원으로 약 2억원 이상 하락했다.

거래를 중개한 고덕동 W공인중개사는 “채무관계는 아닌 것 같지만, 집주인이 계약한 다른 집의 잔금을 치르려고 급급매로 내놓은 것”이라면서 “이 이후로는 다시 9억9000만원에 나온 것 외엔 대부분 11억5000만~12억원의 호가를 유지 중”이라고 전했다.

고덕동 C공인중개사는 “해당 매물의 주인은 다른 곳에 매입한 물건도 가격이 떨어지면서 급매로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 시장에 대해 해당 중개사는 “이 지역에서 전세값 하락은 아직 없지만 고덕주공아파트 재건축 단지들이 입주를 시작하면 또 모르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