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7년 서울회생법원 개원식에 관계자들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수원고등법원의 개원으로 회생신청을 앞둔 수원 남부지역 기업들이 관할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서울회생법원의 인사이동까지 겹치면서 업계가 기업의 법정관리 자문에 애를 먹고 있다.

25일 구조조정업계와 파산법조계에 따르면 회생신청을 앞둔 경기 남부 지역(성남, 용인, 화성, 안산, 시흥, 안성 등) 기업들이 관할문제를 두고 혼란에 빠졌다. 주로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신청 후 M&A나 경영권 보장을 위한 회생계획안을 준비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혼란의 이유는 3월부터 개원하는 수원고등법원 때문이다.

현행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회사의 주된 사무소나 영업소가 있는 곳에 회생을 신청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고등법원이 있는 회생법원에도 회생을 신청할 수 있다.

종래 경기권의 고등법원은 서울고등법원이 유일해서 경기도 지역의 회사들은 자신의 관할인 수원지법 또는 의정부지법에 회생을 신청하거나 서울고법 안에 있는 서울회생법원에 선택적으로 회생을 신청해왔다. 이 때문에 경기도 지역에 속한 기업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을 신청했다. 서울회생법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전문인력이 포진해 있고 신속한 회생절차와 다양한 회생절차 M&A기법을 운영해 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3월부터 수원고법이 개원하게 되면서 이제 경기 남부 지역의 법인들은 수원고법 관할 안에 있는 수원지법에만 회생신청이 가능해졌다. 곧 회생절차에 돌입해야 할 기업들은 3월이 되기 전에 서둘러 서울에 회생신청을 하거나 수원지법의 회생환경에 맞게 회생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구조조정 업계와 파산법조계도 회생기업에 대한 자문의 방향을 두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스토킹 호스(Stalking-horse 회생절차 경쟁 입찰제)나 P플랜(사전회생계획안 절차) 등 하이브리드 회생절차와 출자전환시 보통주 대신 ‘상환전환 우선주’를 발행해 경영권을 유지하는 ERP(Equity Retention Plan, 지분보유조항) 회생계획안을 원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관할 문제가 업계의 자문 방향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구조조정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서울회생법원이 다양한 회생기법을 고안해 내고 빠른 절차로 기업의 채무조정 절차를 종결해 왔다”며 “현재 유동성이 악화된 기업들 가운데 기술력은 있지만 운영자금이 고갈된 회사들이 여전히 서울회생법원의 신속한 회생절차 M&A시스템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할의 변화로 서울회생법원은 사건의 부담을 덜었고 수원지방법원은 향후 회생사건이 늘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기업회생절차(법인회생) 접수 건수는 서울회생법원이 317건, 수원지법이 91건이다. 연간 서울회생법원의 법인회생 접수 사건 중 20~25%는 수원지법 관할의 기업으로 분석됐다.

구조조정 업계와 파산법조계는 수원고법이 개원하면 서울회생법원 회생사건은 약 200건대로 줄고, 수원지법 회생사건은 100~200건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법원관계자에 따르면 두 법원의 속내는 사뭇 복잡하다. 서울회생법원은 사건 부담을 줄었지만 다양한 회생기법으로 적용할 기회가 그만큼 줄었고, 수원법원의 경우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법원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반면 서울회생법원 보다 상대적으로 인적, 물적 구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늘어나는 사건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업계는 수원지법이 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전문성이 강화되면 한계기업들이 선택지가 넓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당분간 시행착오는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파산법조계 한 변호사는 “일반 소송사건은 모든 일이 끝나고 사후적으로 법리다툼을 벌이거나 증거싸움을 하는 것과 달리 회생사건은 법원의 결정과 변화무쌍한 경영이 동시다발적으로 급박하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수원지법에 회생사건이 몰리면 재판부의 업무 과중으로 결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며 “동시에 회생기업의 의사결정도 지체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파산법조계 관계자는 “관할 규정상 영업소 소재지가 있는 곳의 회생법원에 회생신청이 가능하다”며 “서울로 회생을 신청하려는 기업들이 서둘러 서울 소재에 페이퍼(Paper) 영업소를 만드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고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 서울회생법원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의 재판관할권 조항을 고치는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법원행정처에 제시했다. 수원고법이 생긴 뒤에도 수원지역 회생 및 파산사건을 서울회생법원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회생법원 인사이동, 전문법원이라는 말 무색 ...업계, 우려 반 기대 반

업계 불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회생법원의 법관들이 대거 인사이동이 되면서 회생신청을 앞둔 기업뿐만 아니라 이미 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기업들을 대리하는 로펌에도 비상이 걸렸다. 인사이동에 따라 회생절차의 판도에 변화에 있을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번 정기인사에서 서울회생법원에서는 심태규 부장 판사를 비롯해 권순엽, 권창환, 김정성, 전선주, 이현오, 장석준, 김유성, 노연주, 배진호, 원운재 판사가 다른 법원으로 전출됐다. 

이 가운데 심태규 부장 판사는 서울회생법원에 P플랜 회생절차와 스토킹 호스 절차를 도입하는데 앞장선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수원지방법원 전대규 부장판사를 비롯해 이무룡, 임샛별, 이재민, 박민준, 성기석, 탁상진, 최혜인, 박민선, 신혜원, 전범식, 박인범, 정인영 판사가 서울회생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생업무가 처음인 판사도 일부 포함됐다.  

이 가운데 전대규 부장판사는 수원지방법원의 회생과 파산실무를 정립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철강회사인 미주제강의 회생을 P플랜으로 44일이라는 최단기간에 종결해 구조조정 업계와 파산법조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전 부장판사의 인사이동으로 회생법원의 절차는 더 속도감을 낼 것으로 보이지만 대형로펌 등 파산법조계는 이번 인사이동에 따라 새 재판부가 구성되면서 법관들이 사건 내용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3월 결산법인들의 회계결과에 따라 대거 회생신청이 예상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업계는 새 재판부가 개별 사건의 기업현황과 쟁점사항을 파악하는 동안 회생기업의 민감한 의사결정이 지체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양새다. 

서울회생법원의 사건처리 건수가 한해 회생을 신청하는 기업 가운데 평균 40%를 차지하는 만큼 개원 이래 처음 단행된 이번 인사이동에 업계의 반응은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대법원 사법통계에 따르면 전국법원에서 서울회생법원이 차지하는 기업회생 신청 건수는 지난 2016년에 총 936건 중 404건(43%)을 비롯해 이듬 해 2017년에는 878건 중 324건(36%), 2018년에는 980건 중 389건(39%)을 기록했다.

이번 서울회생법원의 인사이동을 두고 전문법원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관의 전문성과 예산의 독립성이 서울회생법원의 개원 목적인 점을 감안하면 3년의 근속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파산법원 판사의 임기는 평균 14년인 것과 비교해도 전문법원의 면모를 갖추기에는 법관의 임기가 짧다는 것이 파산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서울지역에서 파산업무에 관여하는 한 판사는 “서울회생법원과 같은 전문법원은 가정법원처럼 전문 법관제를 도입하거나 장기 근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문법관제도는 일정 경력 이상의 법관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같은 법원에서 특정 전문 분야 사건만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경륜 있는 판사들에게 특정 분야 사건을 집중적으로 맡겨 전문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다.
 
한국회생법학회의 최우영 회장(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은 “회생법원에서 법관의 임기가 짧으면 개별 기업의 절차 진행도 문제가 생기고 법관의 전문성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싱가포르와 같이 아예 회생과 파산전문가로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