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후(功夫)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쿵후!, 우리 말로는 공부(工夫)다.

최근에 본 미국드라마 ‘MARCO POLO(마르코폴로)’의 대사 중 하나이다.

지난 2014년에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미국드라마로 13세기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를 모티브로 삼았다.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에게 생포된 채로 몽골군이 송나라를 정복하여 ‘원’왕조를 세우는 이야기와 내부 권력투쟁의 과정을 그린 환타지성 드라마다.

총 20개의 에피소드에 약1,700만달러간 들어간 대작으로 제법 볼거리를 제공한다. 미국드라마에 중국계 미국인이 대거 투입되었다고 한다.

쿠빌라이칸에게 잡혀온 ‘폴로의 무예스승이자 멘토인 ‘백안(白眼:One Hundred Eyes)’이 폴로에게 쿵후를 가르치는 과정의 나온 말이다.

“한 손은 거짓을, 다른 한 손은 진실(죽음)을 말한다.
언젠가 서방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쿵후가 무엇이라 설명할 것이냐?
싸움이라고? 아니면 소림승처럼 학과 범의 영혼을 부르는 것이라 하겠느냐?”

“쿵후란 힘든 단련으로 얻은 극상의 기술이다.?
위대한 시인은 쿵후에 이르는 법,
화가, 서예가 그들도 쿵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요리사도 계단을 청소하는 자도 훌륭한 하인도 쿵후에 이를 수 있다.”

“연습,준비,끝없는 반복…
정신이 혼미하고 뼈가 욱신대고?
땀 흘릴 기력조차 없으며 숨쉴 힘조차 남지 않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쿵후에 이르는 길이다”

판타지성 드라마라 이해하지만 한마디한마디가 명언 수준이며 약간은 소름이...

필자가 청년들을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의 싸움터는 ‘글로벌’이기에 크게 와닿는다. 한국을 기반으로 하던, 동남아를 기반으로 하던, 중국.일본,미국을 기반으로 하던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과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겨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부쩍 필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한국의 대학교육, 특히 취업교육에 우리의 고객인 ‘글로벌 마켓’과 경쟁자인 ‘글로벌 수퍼파워들’에 대한 공부가 빠져 있다. 그들의 교육과 생각, 경쟁기업의 운영방식과 미래, 그리고 우리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게임방식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니 가르칠 리도 없다.

 

[‘한 손에는 거짓(LIES)을, 한 손에는 진실(TRUTH)을…]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속에서 힘을 기른다)에서 대국굴기(大國?起:강대국으로 일어선다)’로 가는 섬뜩함이 있다. 칼을 숨기고 몸을 낮추다가 때가 오면 모두 죽이겠다는 뜻. 지난 100여년전의 중국의 인문학자인 이종오가 간파한 중국역사의 ‘후안흑심’에 붙인 후흑학(厚黑學)의 관점(갖은 점잔을 다 떨지만 속은 뻔뻔하기 그지 없는 중국의 역사)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사이다. 지난 50여년의 발전한 우리 역사를 몸 낮추며 배워가다가 한 수 위에 서는 순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시인,화가,서예가,요리사 그리고 청소부도 쿵후에… ]

얼마나 기가 막힌 설정인가?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을 묻어버리는 ‘쿵후,공부’ 이런 머리속의 자리매김이 있으니 13억 인구가 전부 제자리에서 일사불란하게 글로벌경쟁에서 힘을 받는 것. 물론 앞으로 이 체제가 긴 역사에서 미국이나 유럽 강국에 비해 최종 승자가 될 지는 모르지만…

 

[‘훈련, 연습, 반복을 숨쉴 힘조차 없고 땀 흘릴 기력이 없을 정도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죽기살기로 하면 뭔들 못하겠는가? 어떤 분야인들 ‘최고 고수’의 반열에 오르지 않겠는가? 이런 자세와 노력을 스스럼없이 국민들에게 요구하고 가르치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회전반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라면…

반면에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뭐라고 하는가?

‘헬조선, 금수저에게 죽창을’의 구호들이 이제는 말도 안되는 아르바이트급의 일자리와 공공부문의 일자리로 청년들의 성장 아킬레스를 끊은 것도 모자라 가만히 있어도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상황이 만들어 진다.

또한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가? 배우는가? 집에서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면서 쉽고 편한 것만 배우게 만들고 시스템화한다. 이번 학기도 ‘강의시간 내내 칭찬만 해주고 야단치지 말아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어떻게 늘 지각하고, 강의시간내내 엎드려 잠자고, 핸폰에 눈박고 있고, 잡담이나 하는 제자를 보는 것도 모자라 좋은 말만 해주라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드라마에서 뭐라고 하는가?]

“직장에는 왜 들어왔는가? 뭐하려고 취직했는가?

“열심히 하려고 들어 갔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면서 괴로워하다가 내부적인 스캔들에서 어떤 금수저를 돕다가 승리의 주인공이나 지독한 부패로 쇠고랑을 찬다. 조금 lucky한 경우가 있다면 재벌의 아들딸과 연애나 하는 것…

“대학은 왜 왔는가?”

“나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가라니까 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 아니면 고시나 공무원에 합격해서 권력자가 되어야 하겠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열심히 산 사람을 보니 전부 진상이고 꼰대더라. 일단은 한 발 빼고 좀 즐겨야겠다. 적당한 때 부모님 세상 떠나시면 집과 재산이 저절로 내한테 올 것인데 뭐하려고 미리 고민하고 고생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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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입장에서는 ‘공부’, 직장인 입장에서는 ‘업무처리’, 사업가의 입장에서 ‘기업가정신’, 국민에 봉사하는 공무원의 ‘봉사정신’의 태도와 자세에 대입해 본다.

우리 청년들의 부모님,교수님세대가 가고, 지금의 지도자들의 방식으로 따라가는 길은 ‘무기력’함의 길에 들어가는 길이니…

학생들에게 분연히 털고 일어날 것을 바란다. 더 힘들고 땀흘릴 곳을 찾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