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장충동(奬忠洞)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 장충동의 이름을 살펴보면 奬忠洞으로 권장할 장, 충성할 충이다. 이 이름은 구한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과 애국열사들을 위한 제사를 올리던 장충단(奬忠壇)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초에는 한성부 남부 명철방(明哲坊) 지역이었고, 1914년에는 동서헌정(東西軒町), 서사헌정(西四軒町)으로 불렀다. 1943년 중구에 편입되었으며, 1946년 동서헌정은 장충동1가로, 서사헌정은 장충동2가로 바뀌었다.

장충동은 남산의 기운을 받아 이어진 마을이다. 그래서 지대가 높고 과거엔 남산의 기운이 넓게 퍼져 산세를 이뤘다. 남산 터는 조선풍수지리에 있어서 남쪽을 수호하는 기운이며 조선 건국 시 주택마저도 남산을 바라보게 할 정도로 중요한 방향이다.

이 장충동은 동남의 방향에 있으며 동쪽으로 신당동, 서쪽으로 필동, 남쪽은 한남동, 북쪽으로 묵정동, 광희동에 있다.

장충동에 위치한 것으로는 장충체육관이 있으며 이외에 장충동1가 즉 청계5가 사거리 근처에 성제묘가 있는데 이는 중국 관우를 위한 묘소이다.

장충체육관은 1955년 6월 23일 육군체육관으로 개관되었으며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체육관이었다. 이후 1959년 서울시가 인수하여 운영을 맡았다. 특히 장충체육관은 필자의 기억에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매회 열려 그 기억이 새롭다. 실제로 이곳은 ‘씨름’의 성지라고도 불렸다. 2012년 6월부는 리모델링이 시작되었으며 2014년 12월 31일에 완공했다.

특히 장충동에는 반얀트리클럽과 신라호텔 그리고 그랜드 엠버서더 호텔이 있으며 국립극장도 함께 있다. 남산의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도심에서 남쪽으로 한강을 두고 남산에 위치하고 있으니 명터라 할 수 있다.

장충동에는 태극당이라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1946년 창업해서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다. 장충동에는 이와 같은 명물 맛집들이 또 있는데 바로 ‘장충동족발집’들이다. 동대입구역 2번과 3번 출구 사이의 길에 있는데 이곳의 위치가 참 재미있다.

남산의 산세는 한강변을 향해 물 마시러 가는 동물의 모습인데 장충동 족발골목은 바로 이 발 위치에 있다.

실제로 한국 전통풍수에서는 동물의 모습이나 형상으로 지역의 운수를 점하는데, 지역개발을 위한 터를 잡을 때 풍수지리가인 지관이 이를 점지했을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장충동 족발골목은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한편으로 산이 평지와 만나는 지점이 사람들이 터로 삼기에 좋은 곳이므로, 도성에서 멀지 않은 장충동에 사람들이 가장 많았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도 이곳에 장충동 족발골목이 만들어진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추측된다.

장충동은 주거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현재 주거를 위한 개발이 두드러져 있지는 않다. 게다가 사람이 살기에는 지하철에서 주변에 높은 지대가 많아 불편하다.

그러나 앞에 동국대학교가 있고 남산을 위치로 한 녹지가 많아 봄에 꽃이 필 무렵이면 나들이에 적합하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당에서 과자를 맛보며 서울의 도시풍수를 즐기기에 좋다. 이곳은 바람이 잘 통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지역으로 이 정도의 지대에 있는 곳은 습하지 않아 건강한 땅이 될 수 있다. 또한 경복궁에서 보면 이 지역은 주역으로 손괘(巽卦)에 해당하는데 그 괘의 상징성 또한 바람이다. 그래서 이곳은 바람이 잘 드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명터에 위치하고 자리 잡은 곳들은 모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도시풍수적으로 건강한 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 봄에 방문해 건강한 바람을 맞아 보고 싶은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