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은 지난 21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일반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기존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상향조정하였다. 이는 1989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일반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올린 지 30년 만의 일로, 최근 하급심에서 현실을 반영해 일반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만 65세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 시작하자 대법원이 ‘교통정리’차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를 우리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법조계는 대체로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대법원이 다수의견에서도 밝혔듯 노동가동연한을 60세로 올린 1989년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은 급속하게 향상·발전하였고, 법제도 역시 정비·개선되어 법정 정년은 만 60세 또는 만 60세 이상, 실질 은퇴연령은 남성과 여성 모두 70세를 각 넘겼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도 연금수급개시연령을 연장해 65세로 개정하는 등 각종 사회보장 법령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고령자 내지 노인을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도 가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가동연한’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손해배상의 ‘구조’와 ‘범위’의 개념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법체계는 손해배상을 이른바 ‘손해 3분설’에 따라 손해배상의 범위를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정신적 손해’로 나눈다. 우선 ‘적극적 손해’는 손해발생으로 인해 기존의 이익이 멸실 또는 감소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가령 재물 손괴에 따른 수리비, 생명·신체 손상에 따른 치료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소극적 손해’란 손해발생이 없었다면 얻을 수 있었을 경제적 이익으로, 가령 영업장이 화재발생으로 인해 영업을 하지 못함에 따라 발생한 영업 손실, 사람이 다쳐 입원해 있는 동안 발생한 수입의 감소를 의미한다. ‘정신적 손해’란 손해발생으로 인해 당사자가 얻은 정신적 충격을 금전적으로 위로하는, 세칭 위자료를 뜻하는데 우리 법원은 생명·신체상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한하여 이를 인정하고 있다.

‘가동연한’이라는 개념은 이 중 ‘소극적 손해’에 관한 것이다. 손해발생이 없었다면 정상적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을 누군가가 손해발생으로 인해 상해를 입거나 사망하여 한시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수입이 끊기게 된다면 가해자 입장에서는 이를 배상하는 것이 합당한데, ‘가동연한’은 피해자가 만약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해당 직업을 가지고 소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냐에 관한 문제이다. 가동‘개시’ 연령은 원칙적으로 성년이 되는 시점부터다. 따라서 미성년자가 사고를 당해 죽거나 장애를 입어 정상적인 신체활동에 장애가 있다면, 법원은 해당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는 만 19세를 가동개시 연령으로 삼는다. 다만, 아직 군을 마치지 않은 남성의 경우에는 군복무를 마친 후부터 수입이 있는 것으로 추정해 해당 기간만큼을 제외할 뿐이다. 이에 비해 가동‘종료’연령은 사고 당시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직업에 따라 다른데, 예를 들어 법원은 프로야구 선수는 만 40세, 의사와 한의사는 만 65세, 법무사와 변호사는 만 70세로 본다. 법원이 이렇게 보는 기준은 직업적 업무의 내용, 직종별 근로조건, 직종별 정년제한 등에 따른 것인데, 문제는 이와 같은 특수한 직군에 속하지 않은 근로자나 가정주부, 미취업자 등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자들의 가동‘종료’연령은 언제까지로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경우 법원은 일반 도시일용노동자, 즉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기준으로 하는데,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적용받는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5년 상향조정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가동연한’, 정확하게는 가동‘종료’연령을 높였다는 것은 피해자의 사망·상해 사고 발생 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피해액이 그 만큼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가동연한’개념을 포함한 손해배상 범위 산정방법은 일반적인 손해배상 사건 이외에도 의료사고 등 특수불법행위 사건, 자동차보험, 그 밖의 배상책임보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가령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별표1> 대인배상, 무보험자동차에 의한 상해 지급 기준에 따르면, ‘소극적 손해’ 산정 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취업가능연한’을 60세로 하여 산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손해배상 범위 산정과 관련해 특별한 산식을 마련해 두고 있지 않는 대부분의 배상책임보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지난해 11월 29일에 열린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가동연한’ 상향조정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가동연한’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올릴 경우 자동차 사고 피해자에 대하여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보험금의 증가로 자동차 보험의 보험료가 최소 1.2% 이상 인상될 것이라는 손해보험협회 측의 추정치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피해자는 손해배상 범위 산정 시 ‘과실상계’, ‘책임제한’ 등 손해배상의 범위를 제한하는 법리를 적용받아 실제 발생한 손해액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의 배상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 우리나라는 영미법 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아 손해배상액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위자료마저 사망 기준 1억 원에 그치는 등 손해배상액 자체도 손해를 보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과연 ‘가동연한’마저 현실에도 맞지 않게 만 60세를 고수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가동연한’의 상향조정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금전적으로나마 해소하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