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삥’인가세금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불만이 있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뭔데 내 돈을 왜 가져가.’ 빙빙 돌려서 이야기할 필요 없다. 결국 국가에 ‘삥’ 뜯기는 것이 싫은 것이다. 연일 언론에서는 나오는 초과세수 기사를 보면 더욱 분통이 터진다. 한 회계사는 “20년 동안 세금 업무를 하면서 납세가 무엇인가 고민해봤다”며 “결론은 세금은 삥이다”고 말했다. 다른 세무사는 “돈을 쓰는 것(예산 집행)과 납세는 동전의 앞뒤”라며 “세금을 쓰는 문제와는 별개로 세금을 내는 건 모두가 싫어한다”고 말했다. 납세자는 탈세란 검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이코노믹리뷰=박기범 기자] 세율은 낮아져도 세수는 늘어난다.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전산의 발달로 과거 방식의 탈세는 한 줄짜리 역사 교과서 내용이 됐다. 이젠 카드로 결제하면 결제 내역이 국세청 전산으로 자동 입력된다.

세원(稅源)이 다 드러난 결과, 기업과 고소득자·자산가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한다. 조세 감면 정책을 활용해 세금을 줄인다. 다른 하나는 해외로 자금을 빼돌려 세원을 숨긴다.

지난 2월 12일 기획재정부는 작년 세입세출 마감 결과를 발표했다. 작년에는 293.6조원을 걷었는데 이는 전년(2017년)의 265.4조원보다 28.2조원 늘어난 결과다.

전년보다 법인세는 7.9조원 더 걷혀 63조원을 걷었다. 소득세는 9.4조원 더 걷혀 84.5조원을 걷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재정적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해 11월 기재부가 발표한 재정 동향과 정책 방향에 따르면 기재부는 작년에 447.2조원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걷은 세금보다 150조원가량 더 쓰는 셈이다. 심지어 지금 정부 정책 방향은 재정건전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총수입 총지출 전망. 출처=기획재정부

 

지난해 11월 김동연 전 기재부 장관은 “금융위기 이후에는 미래의 더 큰 위기에 대비해 나라곳간을 채우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재정 동향에 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국채를 발행하는 건 한계가 있다. 결국, 남는 건 세금이다.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차이

부가가치세는 대표적인 다단계 거래세다. 단계를 여러 번 거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최종소비자에게 세금을 걷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큰 이유였다. 80·90년대 슈퍼마켓의 판매량은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려웠다. 얼마를 팔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카드로 과자를 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현금만 받는 미용실의 사업자 등록이 대부분 간이과세자인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80년대 사진 뭐 있을까요.)

편의점이 생긴 이후 부가가치세 세수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유는 슈퍼마켓과 다르게 대기업이 전산을 통해 매출을 집계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카드 사용 역시 부가세 세수 확대에 큰 역할을 했다. 거래가 노출되는 이상 부가세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 그 결과 IMF였던 1998년과 2015년을 제외하고 부가세 세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 부가가치세 징수 실적. 출처=한국세제사

 

금융정보분석원(FIU) 출범도 납세자 정보 노출에 큰 역할을 했다. 2000만원 이상 계좌의 변동이 있을 때 자동으로 통보된다. 디지털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가는 마치 판옵티콘처럼 국민을 감시한다. 납세자의 탈세는 요원해졌다.

이는 납세자 정보파악은 법인세 최고 한계세율 인하로 연결되곤 한다. 전두환 정부 때 46.0~47.5% 사이였던 법인세 최고 한계세율은 점차 낮아졌다. 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라 과세자료가 양성화돼 기업의 급격한 세 부담을 고려한 방안이었다. 그 결과 김대중 정부가 끝날 무렵 31.8%까지 하락했다. 소득세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부 당시 84%(방위세 포함)였던 소득세 최고 한계세율은 이명박 정부 당시 35%까지 낮아졌다.

한양대학교 이영 교수는 “소득세의 세율구간 수가 축소되고 최고 세율이 인하된 것은 크게 보아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을 추구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국제적인 세율 인하 경쟁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 법인세율 소득세율 추이. 출처=한국세제사.

 

조세특례, 국가의 토끼몰이

정부는 정책 목표인 국토의 균형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수도권과밀억제권역에서 3년 이상 계속해 공장시설 도는 본사를 둔 법인 중 배제업종에 속하지 않는 중소기업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밖으로 이전하는 경우, 초기 7년간 100% 3년간 50%의 법인세를 감면한다.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한 조세 특례 덕에 충북 음성과 강원도 원주 지역이 발전할 수 있었다. 본사·공장의 이동은 고용 창출 혹은 지역 주민 증가로 직원의 이사를 동반한다. 그 결과는 지역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곤 한다. 고소득자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이동한다. 이 같이 조세특례제한법은 정부의 정책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방안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 것일 뿐 정책 집행 효과는 발휘되기 때문이다. 사후관리도 철저하다.

한 회계사는 “본사나 공장이 전체로 움직이고 서울에 사무소만 설치할 수 있다”며 “덕분에 충북 음성 쪽은 공장 이전, 강원도 원주는 소규모 금융회사들이 많이 이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위 조세 특례를 세무조사 받으면 반드시 세무조사가 들어온다”며 “그때 회장의 하이패스까지 뜯어볼 정도로 철저하게 조사하기에 꼼수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도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조세감면규제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Catch Me If you Can

지난 2016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는 모색 폰세카라는 파나마 법률회사에서 유출된 데이터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현 씨가 연루된 바 있다. 2013년에는 전두환 대통령 아들 전재국 씨 역시 해외에 재산 은닉 혐의로 검찰에 출석한 바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전산화가 발달돼 우리나라에 재산을 묶어두면 세원으로 전부 포착되기 싫기 때문이다. 납세자 입장에선 대한민국 아래서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 명백한 탈세행위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정부의 근절 의지는 확고하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조세도피처를 활용한 재산 은닉에 대해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 은닉해 세금을 면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해치는 대표적인 반사회행위다”며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기재부는 올해 역외거래 관련해 사실상 제척기간(조세부과가능기간)을 없애는 조문을 신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