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삥’인가세금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불만이 있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뭔데 내 돈을 왜 가져가.’ 빙빙 돌려서 이야기할 필요 없다. 결국 국가에 ‘삥’ 뜯기는 것이 싫은 것이다. 연일 언론에서는 나오는 초과세수 기사를 보면 더욱 분통이 터진다. 한 회계사는 “20년 동안 세금 업무를 하면서 납세가 무엇인가 고민해봤다”며 “결론은 세금은 삥이다”고 말했다. 다른 세무사는 “돈을 쓰는 것(예산 집행)과 납세는 동전의 앞뒤”라며 “세금을 쓰는 문제와는 별개로 세금을 내는 건 모두가 싫어한다”고 말했다. 납세자는 탈세란 검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이코노믹리뷰=박기범 기자] 징세의 수장인 국세청장. 그는 세금 징수와 관련해 조세 평등의 원칙과 조세 법률주의 원칙이 이 땅에 올바로 자리 잡는 데 선두에 서는 자다. 하지만 과거 국세청장들의 이력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현직 국세청장을 제외하고 21명 전직 국세청장 중 9명은 사법 처리됐다. 42.9%다. 기술적으로 징수 시스템이 아무리 고도화된들 의미가 없다. 반복되는 국세청장의 사법 처리는 국민들에게 국세청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관장이란 오명이 국세청장에게 붙은 건 무리가 아니다. 국세청장 출신이 법무법인 김앤장, 태평양, 화우 등에서 고문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국세청장 이력을 발판으로 삼아 장관·지사·국회의원으로 영전한 케이스는 10명이다. 47.6%다. 지사부터 감옥까지. 국세청장이 밟아온 길이다.

▲ 역대 국세청장. 사진 출처= 국세청 홈페이지 등

군 출신 국세청장, 대통령과 한 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착수했다.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수를 늘려야 했다. 이에 따라 1966년 3월 3일 박정희 정부는 국세청을 발족했다.

초대 국세청장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였던 당시 민정비서관 이낙선 씨가 임명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공표한 700억원 달성을 지상과제로 세수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이낙선 전 국세청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틀에 한 번씩 독대해 징수 현황을 보고했다.

당시 재무부 행정 사무관이었던 서영택 씨는 “1966년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는 해”였다며 “재정을 자립하고 경제개발을 위한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국세청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초대 국세청장부터 3대 국세청장까지는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군 지휘 체계처럼 대통령 의중과 국세 정책은 한 몸 같이 움직였다. 3명의 청장 모두 재임 이후 장관·국회의원으로 영전했다.

하지만 국세청이 무작정 기업을 압박하지만은 않았다. 기업공개촉진법과 녹색신고법인 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자발적인 협력을 유도했다. 기업공개촉진법에 따라 기업 공개를 할 경우 추가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녹색 ‘신고’ 법인은 실지 조사를 서면 조사로 갈음했다.

▲ 1966년 국세청 조직도. 출처=한국세제사

 

안기부 출신 청장, 세무조사↑

당시 국세청장인 안무혁·성용욱 국세청장은 청장 이후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부장·차장으로 임명된 전두환의 측근이다. 안기부는 중앙정보부 후신이자 대통령 직속 정부 기관이다.

두 국세청장은 1996년 12.12 및 5.18 사건을 수사를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을 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당시에는 굵직한 세무조사 사건이 많았다. 대표적인 회사가 명성그룹이었다. 세무조사 이후 명성그룹은 해체됐고 당시 그룹 회장은 징역 17년형으로 복역하다 김영삼 정부 때 특별 사면됐다.

 

관료 출신 국세청장 시대 개막… 치욕의 ‘세풍’ 사건

노태우 정부부터는 군·정보 당국 출신이 아닌 행정관료 출신이 청장으로 취임했다. 청장이 관료 출신으로 바뀐 이후 국세청에 전산화, 세정개혁, 세무조사 합리화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국세청장 이후의 길은 군·정보 당국과 다르지 않았다. 장관과 감옥 사이(間)다. 장관으로 영전한 두 국세청장은 당시 현안으로 떠오른 문제를 해결했다.

▲7대 서영택 국세청장은 당시 불만이 많았던 ‘토지 공개념’과 관련한 추가 세제 및 공시지가 평가를 도입했다.

▲8·9대 추경석 국세청장은 세율 조정과 조세감면정책을 활용해 기업·고소득자의 납부세액을 점진적으로 늘게 유도했다. 이는 금융실명제로 기업·고소득자의 정보가 모두 공개돼 납부세액이 증가할 것을 고려한 것이다.

▲14대 이용섭 국세청장은 현금영수증, 세금포인트제 시행 등 전자 세정에 큰 족적을 남긴 후 행정자치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장이다.

▲20대 김덕중 국세청장은 현재 법무법인 화우에서 고문을 맡고 있다.

장관으로 영전하거나 법무법인으로 간 국세청장만 있는 건 아니었다.

▲10대 임채주 국세청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비자금 사건으로 꼽히는 ‘세풍 사건’으로 징역 1년 6월과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았다. 세풍사건은 당시 신한국당 이회장 후보의 동생 이회성 씨가 임채주 씨와 당시 국세청 차장인 이석희 씨 등을 통해 대우그룹 등 24개 기업으로부터 166억원의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사건이다.

▲13대 손영래 ▲15대 이주성 ▲16대 전군표 국세청장은 각각 세무조사 관련 뇌물·아파트·뇌물 수수로 구속기소됐다. ▲12대 안정남 국세청장 역시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의 차남인 김홍업 전 아태재단 부이사장의 청탁을 받고 한 피자업체의 특별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등 권력형 비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영전 후 23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17대 한상률 국세청장은 ‘그림 로비’ 사건 및 뇌물 수수 혐의로 ▲19대 이현동 국세청장은 ‘데이비드슨’을 진행한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하지만 두 청장 모두 현재는 무죄다.

그림 로비 사건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승진을 위해 당시 국세청장인 전군표 청장에게 로비한 사건이다. 데이비드슨 사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의혹을 뒷조사하는 비밀공작이다.

데이비드슨 사건에 대해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국세청에 오래 근무했지만 국세청이 공작을 하는 데 직접 동원된 것은 아마 이게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청 이래로 국세청은 첨단화의 길을 걸었지만 국세청장의 길은 여전히 지사부터 감옥까지다. 다만, 백용호 국세청장은 예외다. ▲18대 백용호 국세청장은 국세청장도 도덕적일 수 있다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백용호 전 국세청장은 취임식에서 “국민의 재산을 다루는 국세행정의 특성상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윤리성은 절대적 가치”라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한두 명의 부정한 행위에도 국민의 신뢰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특히 고위직의 잘못된 행동에는 더욱 국민이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처음부터 준비된 국세청장이었다. 그는 국세청장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특별한 잡음이 없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거쳐 현재는 이화여대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 국세청 조직도. 출처=국세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