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삥’인가세금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불만이 있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뭔데 내 돈을 왜 가져가.’ 빙빙 돌려서 이야기할 필요 없다. 결국 국가에 ‘삥’ 뜯기는 것이 싫은 것이다. 연일 언론에서는 나오는 초과세수 기사를 보면 더욱 분통이 터진다. 한 회계사는 “20년 동안 세금 업무를 하면서 납세가 무엇인가 고민해봤다”며 “결론은 세금은 삥이다”고 말했다. 다른 세무사는 “돈을 쓰는 것(예산 집행)과 납세는 동전의 앞뒤”라며 “세금을 쓰는 문제와는 별개로 세금을 내는 건 모두가 싫어한다”고 말했다. 납세자는 탈세란 검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이코노믹리뷰=박기범 기자] 1966년 국세청이 개청된 이래로 세무조사는 ‘권력의 칼’로서 활용됐다. 징수 과정에서 납세자의 권리가 법률에 명문화되며 크게 신장됐다. 과거처럼 우격다짐으로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다. 납세자권리헌장은 세무조사관이 낭독을 한 이후 세무조사를 진행한다.

▲ 납세자권리헌장. 출처=국세청 홈페이지

 

하지만 과거와 세무조사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현재 세무조사도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발족하고 디지털 포렌식 기법이 세무조사까지 도입돼 납세자는 더욱 빠져나가기 어렵게 됐다. 즉, 전산화가 진행되며 소득 및 비용과 관련한 증빙 문제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세무조사는 탈세를 막음으로써 올바르게 세금을 낸 납세자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조세평등주의가 실현되는 셈이다.

당시 국세청의 업무 추진을 바탕으로 ‘세금 중 징수’ 업무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정리해봤다.

 

특명, 700억을 걷어라!

1966년 개청 당시에는 지금 세수의 0.02%(385조)도 안 되는 ‘세수 700억 달성’은 국세청 개청 당시 지상과제였다. 국세청은 700억원을 걷기 위해 전년(1965년)의 418억원보다 300억원가량 더 징수해야만 했다. 당시 국세청장에게 대통령은 힘을 실었다. 개청 이전 중구난방식 세무사찰을 국세청으로 일원화한 것이 효과를 봤다. 그 결과 ▲1966년 704억원 ▲1967년 1038억원 ▲1968년 2180억원의 세수를 확보했다.

마냥 우격다짐으로만 세무조사를 한 것은 아니다. 1967년 유한양행 세무조사가 대표적이다. 이영환 계명대학교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당시 유한양행은 거래상대방과의 보름간의 대조 조사에서 계약서 사본을 철저하게 관리한 사례다”며 “당시 박정희 정부가 지시한 정치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추징세액이 영(0)으로 나타나 오히려 국세청에서 모범납세자 동판을 만들어 줬다”고 했다.(유한양행사진)

 

전두환 정부, ‘권력의 칼’ 세무조사

전두환 정부 당시 국세청장은 모두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출신이었다. 당시에는 굵직한 세무조사 사건이 많았다.

대표적인 회사가 명성그룹이었다. 여행과 콘도 사업을 주로 했던 명성그룹은 1983년 당시 계열사가 21개까지 불어났다. 통일교 지원설과 뒷배에 대통령의 장인이 있다는 소문까지 나자 전두환 정권은 국세청을 동원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김철호 회장은 탈세, 업무상 횡령혐의로 징역 ‘17년’ 2개월, 벌금 79억3000만원의 형을 받았다. 김 회장이 구속되자 명성그룹은 해체됐고, 알짜 계열사들은 한화그룹에 편입됐다.

평등 과세, 납세자 보호↑·세무조사↑

김대중 정부부터 세무조사에 조세 정의, 조세 평등의 가치가 높아졌다. 특히 조세 평등이라는 가치를 높인 제도는 납세자보호담당관 제도다. 각 세무서에서 세무경력 15년 이상의 실무경험을 보유한 자를 납세자보호담당관으로 선발해 징수 민원에 세무서 ‘에이스’를 배치했다.

그 결과 1999년 9월 1일부터 2000년 8월 31일까지 만 1년 동안 3만3808건의 민원을 접수하고, 3만1592건의 민원을 처리해 5512억원의 세금을 감액했다. 2003년에는 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의 직급을 사무관으로 상향 조정해 제도를 강화했다.

당시 국세청 전산실 과장이었던 김대원 씨는 “국세청 조직의 가장 큰 변화는 국세의 부과와 징수를 고전적으로 수행하면서 국가권력기관으로 인식돼 오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납세자 권리를 중시하는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난 것이다”라며 보호담당관 제도의 의미를 부여했다.

참여 정부부터는 세무조사가 평등과세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됐다. 조사과 조직 및 인력을 대폭 강화했다. 전산이 발전(2003년 국세정보관리시스템(TIMS) 도입)함에 따라 근거과세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그 배경이다.

2002년 조세범칙 조사로 부과된 세액이 1365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2004년 1조원에 이를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벌과금 역시 마찬가지다. 2002년 3억5000만원에 불과했던 벌과금은 2007년 223억원까지 증가했다.

정연식 계명대학교 교수는 “조사 조직 및 인력을 대폭 강화한 가장 근본적인 취지는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우리나라의 세무조사 비율을 제고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탈세를 바로잡는 것”에 있다고 밝혔다.

▲ 조세범칙사건 징수액 출처= 한국세제사

 

 

첨단의 시대, 세수 280조 시대

첨단탈세방지담당관실이 생기고 금융정보분석원(FIU)의 도움을 받아 현미경 징세가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외환전산망의 완비로 인해 국내에서 외국환은행을 통해 이뤄지는 모든 거래는 한국은행이 전산망을 통해 일괄로 취합하고, 거래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국세청이 자료를 자동으로 전송받는다. 국가 간 정보교환이 이뤄지면서 세무조사 대상 선정은 한결 용이해졌다.

일선 세무서장은 “첨단탈세방지담당관실을 설치해 국과수에 버금가는 전산장비를 구축하고, 신종 첨단탈세를 비롯해 전산 자료의 조작, 파기, 문서위변조 등 고의적이고 지능적인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세대 국세통합시스템(TIS), 디지털포렌식 기법도 도입했고, 세파라치를 도입해 제보를 통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제도도 생겼다.

이철인 서울대학교 교수는 “사업자 성실도 분석 등 조사기법이나 절차에 있어서 전자세정 인프라를 이용한 많은 분석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세무조사 제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했다.

지난 2월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 국세수입으로 293조6000억원이 걷혔다. 이는 2013년 185조원에 비해 100조 이상 증가한 수치다. 1966년 704억원이었던 국세수입은 52년 사이에 4000배 이상 증가했다.

이제 남은 건 조직 규율과 역외 탈세뿐이다. 전 대구지방 국세청장이었던 안원구 현재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의 말 속에 내부 단속의 실마리가 있다.

그는 “가장 폐쇄적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는 국세청을 일반 국민들이 당연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등이 강구돼야 한다”며 “진정한 개혁은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판옵티콘처럼 국민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국세청. 이젠 국민도 국세청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시대가 열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