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한진중공업을 ‘완전자본잠식’으로 이끈 수빅조선소 문제가 채권단의 출자전환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수빅조선소로부터 누적된 미처리결손금을 해소할 단초가 없는 상황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때 이른 무상감자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진중공업에 따르면 지난 14일 필리핀은행 등 채권단은 한진중공업이 보증을 선 수빅조선소의 4억1000달러 규모 채무를 전액 출자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수빅조선소 회생절차 신청으로 자본총계 마이너스(-) 7422억에 이르며 완전자본잠식에 접어든 한진중공업의 재무상황이 해결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진중공업은 “대출금이 자본으로 전환되면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이자부담도 크게 줄어 경영정상화도 앞당길 수 있다”면서 “한진중공업이 ‘클린 컴퍼니’로 재도약 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급한 불 끈 셈이다. 다만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수빅조선소 부실이 여전히 잉걸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의 자본잠식 불씨는 지난해부터 지펴지고 있었다. 자본총계는 지난해 3분기 5017억원(별도기준)으로 자본금보다 286억원 적었다.

그간 누적된 미처리결손금 때문이다. 미처리결손금이란 간단히 말해 해당 분기에 처리하지 못한 순손실 금액이 쌓인 것이다. 지난해 3분기 무려 7911억원에 이른다. 자본금은 물론 주식발행초과금보다도 많은 규모다.

즉, 수빅조선소의 ‘만성 적자’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내버려 두었더니 결손금이 누적돼 결국 자본을 갉아먹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순손실 상태가 지속된 탓이다. 한진중공업의 지난해 3분기 순손실은 730억원이었다. 2017년은 2974억원, 2016년 3134억원이었다. 이자, 세금 등을 제하고 나니 적자인 셈이다.

▲ 한진중공업의 미처리결손금과 순손실 추이(별도기준). 출처=DART

수빅조선소 손해분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HHIC-PHIL)의 지분 99% 소유하고 있다. 지분법에 따라 수빅조선소의 거의 모든 손해를 적용하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한진중공업의 종속기업 및 관계기업에 대한 지분법 손익은 마이너스(-)459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은 마이너스(-)2506억원이었다.

수빅조선소 순손실과 대체로 유사한 수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마이너스(-)662억원이었고, 2017년은 마이너스(-) 2462억원이었다.

이자 등 금융비용 지불도 있다. 지난해 3분기 금융비용은 819억원이었다. 여기에 수빅조선소 등 종속기업주식처분손실 154억원 등도 발생하면서 기타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64% 늘어난 498억원을 기록했다. 물론 출자전환 진행에 따라 이자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미처리결손금 충당이 어려운 사업 규모

한진중공업이 경영정상화를 이뤄내려면 수빅조선소에서 비롯된 미처리결손금을 덜어내야 한다. 하지만 가시밭길이 펼쳐진 상황이다.

영업이익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결손금을 덜어낼 만한 규모는 못 되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730억원, 2017년은 867억원이었다.

▲ 한진중공업 영업이익 추이(별도). 출처=DART

수빅조선소를 제외하면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은 탓이다. 부산 영도조선소에서는 주로 군함 등 방산부문 선박을 건조한다.

발주처가 해군 등 국가기관이므로 해당 기업이 나서서 능동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발주가격도 상대적으로 적다. 다만 업황에 크게 영향받지 않아 안정적이라는 점은 긍정 요소다.

한진중공업은 2016년 이후 군함 등 특수선 27척을 수주, 총 1조2000억원 상당의 물량을 확보했지만 매출 비중은 전체 10% 내외에 불과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3253억원을 기록했다.

건설부문 매출은 대체로 견조하지만 역시 규모는 크지 못하다. 지난해 3분기 건설부문 매출액은 6000억원이었다. 2017년은 8182억원, 2016년은 8994억원이었다.

한진중공업은 아파트보다는 주로 국도 등 사회기반시설이나 공공기관 공사 등의 사업을 수주한다. 이에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지출 비용 증액 및 예타면제 추진 등으로 혜택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실적과 연결짓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수빅조선소 매각이 손쉬운 상황도 아니다. 회생신청 이전부터 매각설은 꾸준히 불거져 나왔다. 중국 조선업체부터 필리핀 해군까지 매입설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뤄진 것은 없었다. 중형 부문 조선업 업황 개선이 더딜 것으로 전망되는 중에 ‘만성 적자’를 기록해온 만큼 처리가 힘든 셈이다.

▲ 한진중공업이 필리핀에 있는 수빅조선소 우기철 야외작업을 위해 개발한 이동식 쉘터(Shelter). 필리핀 사업의 열정을 보여주는 기술이다. 사진=한진중공업

때 이른 ‘무상감자’說... 왜 나오나

무상감자 이야기가 벌써부터 터져나오는 이유다. 출자전환을 통해 자본금을 확충해도 미처리결손금 누적이 이어지면 결국 자본은 지속 감소되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주식가격은 근 3년간 대체로 액면가 아래에 있었다. 완전자본잠식으로 거래정지에 돌입하기 직전 가격은 주당 1190원에 불과했다. 액면가는 주당 5000원이다. 상대적으로 주주들의 손해가 적어 부담도 덜하다. 

실제로 한진중공업과 일부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던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6년 완전자본잠식 탈피를 위한 결손금 처리 목적으로 10:1 비율 무상감자를 단행했다. 물론 한진중공업의 시가총액은 대우보다는 훨씬 낮은 1300억원 내외에 불과하다.

경영진 책임이 있다는 점도 무상감자 설과 이어진다. 수빅조선소는 조양호 회장이 창의성, 대담함 등을 골자로 하는 ‘빅 씽크(Big Think)’를 주창하며 주도한 사업이다.

획기적인 발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리한 선택’이었다. “열악한 기후 조건 때문에, 미약한 기반 산업 때문에, 부족한 기술 인력 때문에 모두들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빅조선소를 소개하는 이 문장이 무색해진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당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국정감사에 참여해 “대우조선해양 대주주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 경우 대우조선해양처럼 대주주 지분이 주로 감자되는 차등감자가 실행될 수도 있다.

한편, 조양호 한진 회장은 현재 한진중공업 실질 최대주주로 있다. 한진중공업 주식 지분은 0.5%에 불과하나, 한진중공업의 최대주주로 지분 30.98%를 보유하고 있는 한진중공업홀딩스의 지분 46.5%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