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구에 위치한 소공동(小公洞)의 도시풍수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소공동은 북악산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이곳은  경복궁에서 광화문을 지나 시청역에 위치하고 있다. 경복궁을 등지고 보면 왼편에 위치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덕수궁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의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慶貞公主)의 집이 있어 작은공주골이라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남별궁(南別宮)이로고도 불렸다. 경정공주의 부마(駙馬)는 개국공신(開國功臣) 조준(趙浚)의 아들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대림(大臨)이다. 그런 '터'여 서 일까? 현재 이곳은 공주와 어울릴법한 조선호텔이 위치해 있다. 조선호텔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13년 3월 독일의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데'에게 설계가 맡겨진 후 1914년 10월 10일개관되었고 서양식 건축물과 시설로 이루어졌고 경복궁의 중심의 기운의 영향을 받아 정치, 경제, 사교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시설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환구단'이다. '원구단'이라는 이름으로도 쓰이지만 여기서는 '환구단'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지금은 조선호텔이 생기면서 화강암 기단으로 만들어져 세워진 3층 팔각적 황궁우와 석고만 남아있다.

이곳은 하늘에 제를 드리는 곳이며 983년(고려, 성종 2) 정월에 왕이 환구단에 풍년기원제(豊年祈願祭)를 드렸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으로 보아, 이미 이전부터 이러한 의식이 행하였다고 추측된다.

이러한 제천의례는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었다. “1398년(태조 7) 4월, 가뭄이 심할 때 종묘(宗廟)•사직(社稷)•원단(圓壇)과 여러 용추(龍湫 : 폭포수 아래의 깊은 웅덩이)에 비를 빌었다.”는 실록의 기록은 이를 잘 말해준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오는 환단의 위치를 보면, 한강 서동(西洞) 또는 남교(南郊)로 되어 지금의 한남동 부근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후 이곳에서 1897년 고종이 제사를 올린 후 황제로 즉위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조선호텔'은 주변의 많은 호텔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과 전통을 아직까지 잘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지금도 조선호텔에 가면 이 환구단의 석고를 볼 수 있다.

왕이 제사를 올리며 왕의 터와 가까이 있는 제사를 지내는 터이니 이곳의 기운이 얼마나 강한지는 되물을 필요가 없다.

다행히 일제강점기 시절 문화재의 약탈 속에서도 현 모습을 간직한 것이 한편으론 고마울 뿐이다. 도시풍수에서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기(氣)를 전달해 줄 수 있는 터로 난 이 팔각정을 추천하고 싶다.

이곳은 1967년 7월 15일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사적 제157호이다. 특히 소공동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 아닌가 한다. 

이 환구단을 끼고 옆에는 롯데그룹이 있고 앞으로는 프레지던트 호텔이 현재 위치하고 있다. 좋은 '터'를 알아보는 롯데가의 뒤에는 고명한 풍수가 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워낙 호텔과 사무실 밀집지역이라 일반인이 생각보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휴식에 도움되는 터이니 꼭 가보셔라.

경락(經絡)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몸에 거미줄처럼 엉켜져 기가 순행하는 통로를 일컫는 말이며 이는 경맥(經脈)과 낙맥(絡脈)으로 나뉘어진다. 침은 주로 경맥에 놓고 낙맥은 경맥을 연결시키는 통로다. 풍수에서는 간룡과 지룡이 이에 해당하는데 소공동의 환구단 터는 일종에 경맥과도 같은 자리다.

문화재 터라 환구단이 앞으로 인위적으로 없어지진 않을것이다. 더불어 그 기운을 뒤에서 받고 있는 프레지던트의 터역시 매우 훌륭한 터이다. 이 터가 매물로 나온다면 당장 사야 할 터이다. 이곳에선 경복궁과 북악산을 바로 마주하며 그 기운을 바로 받을 수 있는 터이기 때문이다.

풍수에는 도안(道眼)이라는 말이 있다. 풍수사가 산천지형을 보는 실력을 의미하는 말인데 이론과 법칙에만 의존하지 않고 대세를 통해 생기가 응집된 '혈'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환구단이 바로 이 '혈'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