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집에 들어온 손님을 침대에 눕히고, 만약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잘라내 살해하는 무시무시한 악당입니다. 가련한 손님의 운명은 침대보다 키가 작아도 피할 수 없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작은 키의 손님의 사지를 잡아 찢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잣대는 버려야”
최근 T 스타트업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티켓을 구매한 후 상대방에게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해당 스타트업은 좋게 말하면 새로운 공유경제, 나쁘게 말하면 디지털 암표 플랫폼처럼 보였습니다. 티켓을 C2C 방식으로 판매중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괜찮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꽤 준수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상해봅시다. 만약 큰 마음을 먹고 공연 티켓을 구매했는데 피치못할 사정으로 사용할 수 없다면, 설상가상으로 지인에게 주거나 판매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부분 그냥 버리고 맙니다. 상당히 아까운 일이에요.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어 일종의 공유경제 패러다임을 적용한다면 꽤 매력적인 C2C 플랫폼이 되는 셈입니다.

사실 새로울 것은 아닙니다. 티켓이 아닌 전체 상품으로 기준을 잡으면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가 있고, 티켓만 봐도 외국계 기업인 스텁허브와 비아고고 등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플랫폼을 잘 살펴보면 온라인 암표 생태계를 양성화시켜 새로운 문화로 구축한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미국의 경우 대형 스포츠 리그 운영주체들은 대부분 2차 판매처로 티켓 C2C 플랫폼을 정식 판매창구로 지정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역시 암표. C2C 티켓 플랫폼은 모바일 암표상들의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근 3년 간 우리를 통해 티켓을 구매한 사람을 조사한 결과 약 88%가 30만원 이하의 티켓을 구매했다” 즉, 불법적이거나 정보 비대칭이 심한 플랫폼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적정 가격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불법적인 암표 구매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현실성 여부는 차치해도, 최소한 C2C 티켓 플랫폼의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티켓의 올바른 활용, 확실한 활용을 전제하면서 음지의 암표 수요를 끌어올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상한가 적용과 올바른 티켓 사용 문화까지 전개되면 이 보다 좋을 수 있을까요?

▲ 공연이 열리고 있다. 출처=갈무리

“모조리 때려잡겠다”
올해 1월 야당의 유력 정치인은 아이돌 콘서트의 암표 거래를 목도한 후 이를 강력히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문제는 획일화된 일률성입니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모바일 암표 시장을 잡겠다는 의지가 천명된 후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C2C 티켓 플랫폼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높으신 분’들에게는 T 스타트업도 모바일 암표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분류해야 합니다. 정보 비대칭을 활용해 심각한 피해를 야기시키는 암표상들에게 대한 규제 의지는 살려둔 상태에서, 이 비즈니스를 양지로 끌어 올리려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용기를 주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규제’를 남발할 경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딱 살인마의 침대만한 키를 가진 사람들만 거리를 활보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정상일까요?

비단 T 스타트업의 일만은 아닙니다. 헬스케어, 온디맨드를 비롯해 전체 스타트업 규제 전반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합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그림자를 잡겠다고 불만 질러대면 그림자는 더욱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어갈 뿐입니다. 차분히 그림자 자체를 생기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풍선효과, 이제 상식입니다.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출처=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두고 쓴소리를 냈습니다. 나아가 행정 편의주의 발상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도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이 땅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왜? 별로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데다, 뭔가 잘못되어도 “침대의 길이에 맞췄을 뿐”이라고 말하면 끝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어쩌면 더 깊고 우울한 동굴을 지나야 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