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VC의 스타트업 투자 규모(1~11월)는 3조원을 넘었다.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시장을 주도한 것은 바이오·의료(7572억원)와 ICT(6896억원) 등이다. 미래 먹거리 업종으로 꼽히는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그간 VC업계의 성장을 보면 미국 ‘실리콘밸리’가 국내에도 금방 뿌리를 내릴 것 같다. 2015년 처음 2조원을 넘어선 이후 모태펀드 등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VC 출범을 위한 자본금 요건이 기존 5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축소된 점도 시장 확대에 일조했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의 경영자의 수준도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 대상 기업은 물론 건당 투자규모도 확대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VC들의 앞날은 창창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만만치 않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상장 VC들의 주가다. 지난해 상장한 린드먼아시아, SV인베스트먼트, 나우IB캐피탈, 아주IB투자 등의 주가는 줄곧 하락하고 있다. 기업공개(IPO) 당시 분위기를 고려해도 ‘일시적’ 고평가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없다.

‘좋은 기업’을 선택해 투자수익을 높인다면 VC도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투자대상 기업이 성장할 때까지 무엇으로 먹고 살까?

VC가 사업을 유지하는 방식은 펀딩이다. LP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고 받는 관리수수료가 주 수익원이다. 사세를 늘리기 위해서는 끝없이 새로운 펀드를 결성해야 한다. 투자처를 찾는 것은 기본이다.

업계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VC업계 자체가 활성화된 반면, LP는 더욱 설득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물론 각 VC의 능력으로 해쳐나가야 하지만 결국 승부는 자본력으로 결정된다. 투자처를 찾고 LP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과정이 단기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버틸 체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VC업계의 양극화가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VC는 또 하나의 악재에 직면했다. 비상장기업 투자 전문회사(BDC) 운용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규제에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만 BDC 운용이 가능하다. VC는 중소기업창업지원법상 창업투자회사,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기술금융회사로 불가능하다. 사실상 제도권 금융사에 더 많은 기회를 준 것이다.

우리나라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해 각종 제도를 손질했다. 이후 증권사들은 성장과 합병 등을 통해 사세를 키웠고, 정부 정책에 부응했다.

그러나 덩치가 커져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기 어렵다. 근본적으로는 왜 IB가 필요한지 의문마저 든다. 빠른 업계 구조조정을 위한 조치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BDC제도 도입은 당국의 제도권 금융사에 대한 노력 보상인가.

이러한 관점이 터무니없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증권사들이 단기간에 사세를 크게 확장하면서 여유자금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VC 대표는 “모 금융그룹은 전체적으로 돈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도 “VC업계 자체가 커지면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 되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와 운용사는 태생적으로 호흡이 짧다. ‘거래’ 자체가 주 목적인 탓이다. 여전히 IB다운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특성상 VC 투자에 맞지 않다.

물론 리서치, 가치평가 능력 등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VC들이 시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쌓은 노하우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증권사와 운용사를 BDC운용에서 제외하자는 것은 아니다. 벤처 시장 활성화를 위해 금융업권별 역할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단순 활성화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투자자와 벤처기업, 성공한 사업가들이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당국의 참여 허락과 제한을 두는 이분법적 방식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