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강수지 기자]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화 작업이 새해에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를 놓고 무려 약 10년 가까이의 세월이 흘렀으나 아무런 발전이 없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를 골자로 제도개선 권고를 내렸으며, 금융당국은 2015년 '전산프로그램을 통한 실손의료보험금 간편 청구 시스템 구축'을 중‧장기적인 과제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두 깜깜무소식이다.

이는 관계부처간의 의견 충돌 때문이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에 따른 개인정보유출을 비롯해 비급여 부분의 표준화 등이 가장 큰 반대 이유다.

따라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작업이 진행에 차질을 빚자 보험회사들은 직접 대안 마련에 나섰다.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이다.

보험회사의 한 관계자는 "일부 보험회사에서 실손의료보험 간편 청구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는데 사실 아직 의료계 등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금융당국의 압박에 의해 보험사들이 자체적으로 어플 등을 통해 관련 서비스를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일부 보험사, 실손보험 간편청구 노력

기존에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보험금 청구는 국민건강보험과 달리 병원이나 약국에서 직접 진료비 영수증 또는 세부 내역서 등을 발급 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작업을 전산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금융당국의 재촉은 심해지고 있다. 이에 보험회사들은 각자의 기술 혹은 관련 기술이 있는 업체와의 협력 등을 통해 비슷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 보험회사 자체적으로 간편청구 시스템을 내놓은 곳은 교보생명과 농협생명, KB손해보험 등이다.

KB손보, 무인기계 이용해 실손보험 간편 청구 서비스

KB손해보험은 무인기계를 이용한 실손 보험금 간편 청구 서비스를 오는 3월부터 선보인다. 이를 위해 KT, 엔에스스마트와 3자 간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이로 인해 KB손해보험의 고객들은 향후 KT의 중개망과 엔에스스마트가 병원에 제공하는 무인기계를 통해 별도의 서류 발급, 보험사 접수 등의 절차 없이 진료비 수납 즉시 실손의료보험금 청구를 할 수 있다.

고객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병원 내 무인기계를 통해 진료비를 수납하고 보험금 청구버튼을 누르면, 필요한 모든 병원데이터가 전자문서(EDI) 형태로 보험사에 자동 전송된다.

김경선 KB손해보험 부사장은 "KB손해보험의 디지털 혁신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보상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디지털과 보험 융합서비스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 정부 주관 '보험금 자동청구 서비스' 시범 운영

교보생명은 현재 정부가 주관하는 '사물인터넷(IoT) 활성화 기반조성 블록체인 시범사업'의 하나로 '보험금 자동청구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휴대폰을 통해 개인정보 동의 등의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병원 진료 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아도 보험사가 보험금을 자동으로 청구해 지급하는 서비스다.

즉 고객이 병원 진료 후 병원비를 수납하면 병원에서 휴대폰을 통해 고객 인증 등을 진행한 뒤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자동 발급해 보험사로 전송한다. 이후 보험사는 심사를 거쳐 보험금을 자동으로 고객에게 송금한다.

교보생명은 일부 병원을 통해 이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점차 병원을 늘려 안정화 단계를 거친 뒤 교보생명 전체 고객에게 서비스할 방침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병원에서 진료 받은 뒤 별도의 복잡한 청구 절차없이 간편한 스마트폰 인증만으로도 원스톱으로 보험금 지급이 가능해졌다"며 "보험금이 적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청구하지 않았던 고객들도 누락 없이 자동으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미지=농협생명 제공

NH농협생명, 생보업계 최초 어플 통한 간편 청구

NH농협생명의 경우는 생명보험업계 최초로 실손보험금 간편 청구 서비스를 선보였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서류 등을 발급하지 않아도 병원 앱을 통해 본인 인증만 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서비스의 특징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진료비 영수증과 진료 세부내역서 등이 전자데이터(EDI) 형태로 보험사에 전송된다는 점이다.

NH농협생명 고객은 간단한 본인인증 절차를 거친 뒤 'M-Care 뚝딱청구'라는 앱을 통해 진료내역을 선택하면 보험금 청구가 완료된다.

NH농협생명도 일부 병원을 시작으로 점차 늘려 약 300개의 병원까지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NH농협생명 관계자는 "시골 등에 있는 농업인 등이 병원에 나오기 어려운 점 등을 착안해 이 서비스를 시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상 무늬만 간편청구"

이밖에 주요 대형 보험사인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등은 아직 간편 청구 시스템을 내놓지 않았다.

일부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간편 청구를 놓고 검토 중인 상황이다.

손해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료계 등의 반발이 너무 심하다 보니 이렇게라도 간편 청구 시스템을 내놓게 됐다"며 "어플을 설치하거나 기계를 사용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을 수 있으나 고객 입장에서는 그래도 기존보다는 편리해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서는 편해졌으나 보험회사 직원 입장에서는 아직 불편한 것이 여전하다"며 "고객은 버튼 하나 누르는 것으로 청구 절차가 끝났을 수 있으나 보험회사 직원은 그 뒤에서 여전히 서류들을 살피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생명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일부 병원에서만 가능하도록 협약을 맺고 간편 청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진정한 실손보험 자동 청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