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가정간편식이 짧은 시간 안에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이유로 패키징을 꼽을 수 있다. 가정간편식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편리성과 보관성이다. 이것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패키징 기술이다. 시간 절약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빠른 시간 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패키징 기술도 함께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이물질로부터 보호하는 정도를 넘어서 맛과 품질, 안정성까지 담아야 잘 팔리기 때문이다.

 

패키징도 과학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패키징기술센터에 따르면 2010년 16조원 규모인 국내 포장시장은 2015년 24조원으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시장 규모가 5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패키징기술센터에 따르면 2010년 16조원 규모인 국내 포장시장은 2015년 24조원으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시장 규모가 5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CJ제일제당은 지난 1996년부터 20년 넘게 국내 상품밥 시장을 견인해 왔다. 햇반은 기술 혁신으로 상품밥 시장이 포문을 열었고 가정간편식 시장의 형성의 도화선이 된 혁신적인 제품이다. 햇반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누적 매출 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누적 판매량은 25억개로 지난해에만 2억개가 넘게 팔렸다. 국민 1명당 4개씩 먹은 셈이다.

햇반은 ‘수개월을 실온에 보관해도 썩지 않는 밥’으로 유명해 방부제 덩어리라는 ‘햇반 괴담’에 시달리기도 했다. 햇반이 전자레인지에서 2분으로 갓 지은 밥맛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차별화된 기술력 덕분이다.

통상 식품의 변질은 내부 미생물과 외부 산소 유입 때문이다. 햇반은 전 제조 과정에 ‘무균화 공정’을 도입했다. 햇반만의 특수포장재를 사용해 이 두 가지 변질 요인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다. 부패 요인을 모두 차단해 식품이 변질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햇반의 원형 용기는 3중구조의 산소 차단층으로 구성돼 공기 유입과 부패를 막아줘 오랜 시간 상온에 보관해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플라스틱 중 가장 안전한 폴리프로페닐(PP)을 사용해 환경호르몬 전이도 없어 안정성까지 챙겼다. 단순히 비닐처럼 보이는 햇반 뚜껑도 접착층, 산소차단층, 강도보강층, 인쇄층의 4겹 특수 필름으로 제작해 공기 유입을 또 한 번 막았다.

CJ제일제당은 이밖에도 별도의 조리 도구가 필요 없는 ‘전자레인지용 간편식’ 패키지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누구나 냉동제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렸을 때 어느 부분은 뜨겁고 어느 부분은 차가워 먹기 불편한 경험이 있다. CJ제일제당은 제품에 열을 빠르게 고루 전달해 조리시간을 단축하고 맛 향상을 꾀할 수 있는 패키징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개봉하지 않고 전자레인지 조리가 가능한 ‘특수 증기배출 파우치’를 개발했고 이 기술을 ‘고메 함박스테이크 정식’에 적용했다.

패키징 기술에 공을 들이는 것은 CJ제일제당만이 아니다. 현재 식품업계는 패키징 경쟁이 한창이다.

CJ제일제당은 경쟁사인 동원F&B, 오뚜기와 포장 기술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햇반 컵반’에 독창적으로 적용한 기술을 무단 복제했다는 이유에서다.

CJ제일제당이 지난 2015년 4월 첫 출시한 햇반 컵반은 원통형 종이 용기 위에 햇반을 결합해 별도의 뚜껑이 필요 없는 제품이다. 이 포장 기술은 독창성과 실용성을 인정받아 실용신안을 취득했다.

▲햇반이 전자레인지에서 2분으로 갓 지은 밥맛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차별화된 기술력 덕분이다. 출처= CJ제일제당

같은 해 5월 동원F&B는 ‘양반 컵밥’을, 오뚜기는 9월 ‘오뚜기 컵밥’을 출시했다. 햇반 컵반과 유사한 형태의 제품이었다. CJ제일제당은 기술 무단 복제를 문제 삼았지만 법원은 즉석 국·탕 용기나 즉석밥 용기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형태라면서 CJ제일제당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대상 청정원은 2015년 12월 전자레인지에서 조리가 완료되면 휘파람 소리가 나는 프리미엄 간편식 ‘휘슬링 쿡’을 선보였다. 제품 용기 필름에 쿠킹밸브를 부착해 열에 의한 원재료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제조공법이다.

바쁜 직장인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끄는 편의점 도시락도 용기 디자인에 변화를 주고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도시락 뚜껑을 친환경 소재인 폴리프로필렌(PP)과 에코젠(ECOZEN)으로 대체했다.

GS25는 3년여 전부터 2개의 프로젝트 팀을 꾸려 투명 PP 도시락 뚜껑과 에코젠 도시락 뚜껑 개발해 왔다. 편의점 간편식이 주로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방식인 만큼 환경호르몬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지우기 위한 전략이다.

PP는 GS리테일과 GS칼텍스, 신효산업이 힘을 합쳤고 에코젠은 GS리테일과 SK케미칼, 네이처엔휴먼지피가 협업했다. 두 팀 모두 소재 개발에 성공해 간편식 제품에 친환경 뚜껑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도 GS25는 국내 최초로 ‘초고압처리(HHP, High Pressure Processing)’ 기술을 가정간편식에 적용했다. 초고압처리는 조리된 식품에 열을 가하거나 보존제를 추가하지 않고 1000~6500bar의 높은 압력을 이용해 미생물을 비활성화해 조리 시점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온에서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제품 포장을 벗기고 냄비나 그릇에 옮길 필요 없이 바로 조리가 가능한 ‘용기일체형’ 패키징도 등장했다. 이마트는 최근 조리 용기가 별도로 필요 없는 ‘채소밥상’ 간편식 시리즈를 선보였다. 버섯 된장찌개, 버섯 모듬전골, 버섯 부대찌개 3종으로 제품의 용기 자체가 냄비 역할을 해 바로 불에 올려 끓여 먹을 수 있다. 이 용기는 영국, 캐나다, 미국, 이탈리아에서 식품 안전 인증을 받은 특수 용기다. 불에 직접 올려도 타거나 환경 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는다. 1.1㎜ 두께의 알루미늄 재질로써 가스레인지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 오븐에서도 조리가 가능하다.

식품업계는 앞으로 주력하게 될 미래 패키징으로 ‘서셉터(Susceptor)’를 꼽았다. 서셉터란 전자레인지 조리 시 전자파의 일부를 흡수해 발열하는 기능성 포장재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냉동제품 패키지에 적용되고 있는 신소재다.

전자레인지의 전자파가 서셉터 표면에 닿을 경우 60%는 반사되고 30%는 투과되고 나머지 10%는 흡수되는 방식이다. 포장제 자체가 뜨거워짐에 따라 제품 표면이 바삭해지고 구워진 듯한 브라우닝(Browning)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다른 미래 패키징 기술로는 ‘스팀 덤플링(Steam Dumpling)’도 있다. 스팀 덤플링은 미국시장 전용 전자레인지 만두 트레이다. 가운데 부분에 소스를 부으면 각 구획으로 정량 분배되는 구조로 조리 시 편의와 외관 품질 확보가 핵심 기술이다.

 

작지만 비싼 ‘소포장’의 경제학

식품업계에서는 첨단기술의 패키징과 더불어 ‘소포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용량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대형마트에서 컵이나 파우치 형태의 소포장 상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용량이 작다고 가격이 더 싼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포장 제품은 대용량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다. 그러나 편의성으로 1~2인 가구뿐만 아니라 4인 이상 가구의 구매 심리도 자극하고 있다.

롯데프레시(구 롯데슈퍼)는 편의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채소, 과일, 수·축산, 조리식품 등을 소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첨단기술의 패키징과 더불어 ‘소포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롯데프레시는대용량 상품을 주로 판매하다 최근 컵이나 파우치 형태의 소포장 상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출처= 롯데프레시

대표 상품으로는 바나나 한 송이보다는 한 번에 먹을 양인 2개를 묶음 상품, 양배추와 파프리카 등 다양한 채소를 세척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컵에 담은 ‘간편 채소’, 150·360g씩 개별 포장된 쌀 등이 있다.

채소뿐만 아니라 수·축산 상품도 소포장된 상품이 인기다. 한 번 끓여 먹을 양의 한우국거리와 갈치 한 마리를 토막내 포장한 한 끼 갈치 등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상품군도 내놨다.

그러나 소포장 제품은 대체로 일반 제품과 비교해 가격이 비싸다. ‘한끼 깐 마늘(70g)’은 990원으로 깐마늘(200g·1490원)보다 가격이 190%가량 비싸다. 껍질을 제거하고 진공포장한 ‘한끼 양파(1개입·900원)도 양파 1망(6개입)과 비교하면 239%나 높다.

그럼에도 소포장 신선 상품군은 롯데프레시의 매출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슈퍼마켓이 마이너스 성장인 것과 달리 높은 신장율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별도의 손질 없이 바로 요리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남은 음식의 처리와 보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 준다는 점 때문에 1~2인 가구뿐만 아니라 4인 이상 가구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형마트들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소포장 채소를 개선한 간편채소 제품, 소용량 컵 포장 과일 등을 판매하고 GS슈퍼마켓은 ‘1~2인 가족 소용량 추천 상품’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는 매일 하나씩 신선한 바나나를 먹고 싶어 하는 고객 요구에 맞게 ‘하루하루 바나나’를 선보였다. 플라스틱 포장에 진한 연두색부터 노란색까지 후숙 기간이 다른 바나나 6개를 넣고 잘 익은 바나나부터 먹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마트는 상하기 쉬운 바나나를 한 다발씩 사기 부담스러운 1~2인 가구를 겨냥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마트는 매일 하나씩 신선한 바나나를 먹고 싶어 하는 고객 요구에 맞게 ‘하루하루 바나나’를 선보였다. 이마트는 상하기 쉬운 바나나를 한 다발씩 사기 부담스러운 1~2인 가구를 겨냥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출처= 이마트

롯데프레시 관계자는 “포장 단위만 줄이는 것은 원가율이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부분에 고민하다 보니 ‘딱 한 번에 쓸 만큼’, ‘손질의 불편함’ 등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포장 제품은 남은 음식의 처리와 보관 시간 그리고 비용을 절약해주기 때문에 사회·경제·환경 측면에서 모두 이점이 있다”면서 “대용량 제품보다 소용량 제품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