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진혁 기자] 코스닥업체 A사의 주식업무 담당자는 요즘 걱정이 많다. 대주주 지분율이 주주총회 보통결의 의결정족수인 25%에 미치지 못하는데 다음달로 예정된 주총에 소액주주들의 참석은 거의 없을 것이 뻔해 주총 안건이 통과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12일 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에 따르면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A사처럼 주총 안건이 고민인 상장사들 중에 대행사에 의결권 수거업무를 맡기려고 검토하는 곳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상장사라고 의결권 수거 이슈의 무풍지대인 것도 아니다. 대주주 지분율이 40%에 달하는 상장사 B사 역시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를 고용해야 할지 고민인 상황이다. B사는 대주주 지분만으로도 보통결의 안건 의결정족수에 문제가 없지만 한국 증시의 독특한 제도인 ‘3% 룰’에 발목을 잡혔다. 감사 선임 안건은 대주주 지분율이 아무리 높아도 의결권을 3%밖에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찬성 없이는 안건 통과가 불가능하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서 경영권이 안정된 상장사임에도 불구하고 주총에서 감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키는게 어려워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결국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A사도,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B사도 섀도보팅(예탁결제원 의결권 대리행사) 폐지와 3%룰이 맞물리면서 주주총회 안건 통과가 발등의 불이 된 상황이다.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율이나 전자투표 참여율이 2% 안팎에 불과한 한국에서 지난해 섀도보팅이 폐지된 이후 주총 안건 통과는 소액주주들을 방문해서 의결권을 많이 모으는 방법밖에 없다. 이번 정기주총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보통결의 요건에 미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장사는 270여개, 감사 선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장사가 200개에 이른다는 분석이 있다. 감사선임이 어려운 상장사가 2020년에는 220여개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상장사들의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의결권 위임 대행 시장이 커지고 있다. 포털에 ‘의결권’이라는 단어만 입력해도 의결권 위임장 수거 대행업체를 10개 정도는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전체 소액주주 숫자 및 분포, 모아야 할 의결권 주식수에 따라 달라지는 대행 수수료는 상장사 1건당 수천만원에서 1억원을 넘어간다. 지난해 이후 관련 업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노하우가 많은 업체를 구별할 능력이 있는 상장사들은 많지 않다. 심지어 의결정족수에 아슬아슬한 상장사들은 주주가 동의하지 않은 가짜 위임장을 활용해서라도 주총 안건을 통과시켜야 할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가짜 위임장이 감독 당국에 적발되면 검찰 고발 등 형사 문제로 비화된다.

이에 따라 넘쳐나는 의결권 위임 대행 업체 중에 제대로 된 노하우를 갖춘 곳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5년부터 주총 시즌마다 의결권 수거 업무를 해온 로코모티브의 이태성 대표는 “주총시즌에만 부랴부랴 비전문 인원을 동원해 의결권을 수거하는 업체인지 상시 조직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인지, 주주를 만나 자필 서명을 받은 진짜 위임장만 수거하는 장치를 갖춘 업체인지 등을 확인하고 위임장 대행을 맡겨야 뒷탈이 없다”고 조언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3%룰이라는 고유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한국 증시에서 의결권 위임 업체들이 일시적으로 난립할 수 있겠지만 결국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상장사들의 의결권 정족수를 완화하거나 대주주 의결권 3%룰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법 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의결권 위임 대행 시장이 확대되면서 동시에 제대로 대행 업무를 수행하는 업체와 그렇지 못한 업체로 양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