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가 11일 분당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쟁의행위 돌입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네이버 노조는 20일 첫 쟁위활동을 여는 한편 3월 말 상급단체인 화섬노조와 연대한 대규모 쟁의행위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측과의 교섭 결과에 따라 전면 파업 가능성도 열어둬 눈길을 끈다.

네이버 노조는 지난해 4월 설립된 후 5월 2000명 이상의 직원 의견을 수렴해 만든 125개 조항의 단체교섭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했다. 이후 7월 5차 교섭이 있기까지 사측은 복리후생과 관련된 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8월 8차 교섭과 10월 11차 교섭에서야 사측은 별도 TF를 운영해 새롭게 논의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TF 논의안은 철회되고 양측의 협정근로자 논의도 끝내 표류했다.

이후 네이버 노사 안건은 중앙노동위원회로 넘어갔고 조정위원들은 안식휴가 15일, 남성 출산휴가 유급 10일, 인센티브 지급 기준 설명을 조정안으로 제시했다. 노조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사측은 거부하며 노조는 쟁의활동에 나서게 됐다. 노조는 1월 28일부터 31일까지 네이버, NBP, 컴파트너스 소속 노조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네이버 96.06%(투표율 97.98%), NBP 83.33%(투표율 97.96%), 컴파트너스 90.57%(투표율 100%)의 찬성표를 얻어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쟁의권을 가지게 됐다.

▲ 네이버 노조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뭔가 어설펐던 네이버 노조

네이버는 5년 전 노조 설립 운동이 일었던 적이 있으나 구성원들의 호응이 낮아 무산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 IT 대기업 중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 이후 카카오와 넥슨 등 다른 IT 회사의 노조 설립에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이버 노조는 지난해 설립당시 “회사가 성장하며 초기의 수평적 조직화는 관료적으로 변했고, 회사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복지는 뒷걸음질”이라면서 “공정성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이어 “사회의 신뢰를 받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네이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투명한 의사결정과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열정페이라는 이름하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IT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적극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노조가 가지는 상징성은 상당하지만, 11일 있었던 첫 기자회견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네이버는 물론 IT기업의 노조 활동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경험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네이버 노조는 기자회견 시간인 오전 11시를 30분 앞둔 10시30분까지 장소를 확정하지 못했다. 기자회견을 취재하기 위해 100여명이 넘는 기자들이 1층 로비와 사옥 앞을 가득 메운 가운데 네이버 노조는 기자회견 시간이 임박해서야 사옥 앞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사옥 안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으나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측의 문제제기로 기자회견 장소로 사옥 앞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어색함은 기자회견 직전까지 이어졌다. 화섬식품노조가 공수한 대형 엠프에서 노동가 등이 잠깐 흘러나오자 화들짝 놀란 노조원들이 “이 노래는 뭐야”라고 웃으며 황급히 스위치를 내리는 장면도 연출됐다.

기자회견 과정에서 경과보고를 하던 박상희 네이버 노조 사무장은 추운 날씨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마른침을 삼켰고, 외부 기자회견이 종료된 후 내부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하기 위해 노조 집행부와 기자 전원이 네이버 노조 사무실로 이동했으나 장소가 지나치게 협소해 부랴부랴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변경된 장소는 공식 사무실이 아니라 네이버 커넥트홀 입구의 복도였다. 질의응답 초기에는 마이크도 준비되지 않았고, 집행부가 질문을 하는 복수의 기자들을 서로 지명하는 바람에 가벼운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네이버 노조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사측 덕분에 단체행동권을 배우고 있다”

네이버 노조 기자회견에서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은 사측을 향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신 위원장은 “처음 노조가 설립됐을 당시 교섭이 잘 풀릴 줄 알았다”면서 “그러나 사측이 공동교섭을 피해 노조가 개별교섭을 받아들였음에도 사측은 노동3권을 부정하는 행위만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신 위원장은 사측의 행보를 ‘후안무치’라고 비판하는 한편 첨예한 대척점인 협정근로자 문제까지 언급하며 “사측은 노조를 위해 전임자와 사무실을 제공한 것을 시혜라고 보는 것 같다. 이것이 네이버가 노동활동을 보는 시각”이라면서 “사측은 혁신을 외치면서 경영에 있어서는 줄 세우기와 조직 획일화만 시도하고 있다. 정당한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혜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협상 과정에서 사측이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노동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사고는 여전히 20년 전과 동일하다”고 지적하며 “노동인권을 개선하고 수평적인 소통문화를 위해 100만 민주노총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희 네이버 노조 사무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오세윤 네이버 노조 위원장은 “현재 우리는 인센티브 지급 기준도 모르고, 조직이 개편되면 영문도 모르고 그에 따라야 한다”면서 “노조를 설립한 후 직원 처우개선 등의 문제는 사측이 내려주는 시혜가 아니라, 우리의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이어 “사측이 여전히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덕분에 단체행동권의 개념을 공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가 왜 파업을 하는지 알아달라. 지금의 상황은 총수 및 소수 경영진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말하는 총수는 이해진 창업주를 지칭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5월 이해진 창업주를 네이버 총수로 지정한 바 있다.

오 위원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사측의 불통도 정면으로 문제삼았다. 오 위원장은 “사측의 노동 3권 인식은 글로벌 수준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다”면서 “사측이 통합교섭을 거부하고 개별교섭을 고집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네이버 본사의 경영진에 결정권한이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사측이 주장해 관철된 개별교섭도 결국 네이버 본사에 결정권이 있고, 그 결과 개별교섭에 나설 당위성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오 위원장은 “20일 본사 1층 로비에서 첫 공식 쟁의에 돌입하고 3월 말 연대 대규모 쟁의에 돌입할 것”이라면서 “사측은 진실된 자세로 교섭에 임하라”고 말했다.

박경식 네이버 노조 컴파트너스 부지회장도 나섰다. 박 부지회장은 “네이버의 손자회사인 컴파트너스는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검색광고와 쇼핑의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대부분이 대내외 고객을 대하는 감정 노동자인 상태에서, 현재의 상황은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박 부지회장은 “컴파트너스는 상담직군 근무자들의 계약서상 근무시간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초과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이른바 임금꺾기가 수년간 자행된 곳”이라면서 “기본적인 휴식권도 보장되지 않는 상태다. 화장실조차 마음 편하게 갈 수 없는 곳, 물 마시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개별교섭이 진행되었으나 컴파트너스는 네이버 본사의 눈치만 살폈다는 점도 지적됐다. 박 부지회장은 사측에게 “허수아비 대표를 앞세운 상태에서 단체교섭도 피하고, 책임회피에 급급한 것이 대기업 반열에 든 네이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인가”라면서 “휴식권조차 비용을 이유로 거부하는 것이 네이버가 그토록 강조하는 사람이 전부인 네이버 참모습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컴파트너스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책임은 네이버 본사에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 네이버 노조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네이버 노조의 방향성은 더욱 선명해졌다. 20일 첫 쟁의를 준법투쟁으로 꾸리되 이후 교섭이 진척되지 않을 경우 파업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파업이 현실이 될 경우 그 책임은 노조가 아닌, 사측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흔들리는 네이버의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수평적이고 투명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노조와 사측의 이견이 엇갈리고 있는 협정근로자 문제도 거론됐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교섭결렬 원인으로 '협정근로자'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으나, 현재 사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된 진실게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단체행동, 즉 쟁위활동에 따른 네이버 서비스 차질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지점을 두고 네이버 노조는 “사측에 달렸다”고 일축하는 한편 쟁위행위 찬반투표 결과 공개 후 사측의 대화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 네이버 노조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네이버 노조와 사측...타협안 찾을까?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네이버는 국내를 대표하는 IT 기업으로 성장했으나, 최근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실제로 네이버는 지난해 매출 5조8629억원, 영업이익 9425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4분기 매출은 1조5165억원, 영업이익은 2133억원이다. 성장세가 다소 주춤하는 가운데 포털 본연의 인프라는 강하지만 최근 유튜브로 통칭되는 새로운 플랫폼의 도전을 거세게 받는 상황이다. 여기에 소위 드루킹 사태는 지금도 정치권의 뇌관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해진 창업주는 네이버 지분 일부를 처분하며 글로벌 전략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대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를 지속적으로 꺼내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벤처기업인과의 간담회를 연 가운데 이해진 창업주가 망 사용료까지 언급하며 “위기”라는 말을 쓴 이유다.

네이버의 대내외적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네이버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도 정반대다. 네이버 노조는 직원의 처우개선을 내세우며 수평적이고 투명한 조직문화를 내걸었으며, 이러한 행보가 노사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반대로 조직의 잡음을 키울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 ‘귀족노조’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의 주장에만 지나치게 매몰될 필요도 없다는 말도 나온다. 사측이 일부 전향적인 자세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나, 노조가 지나치게 큰 건만 주장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편 네이버 노조는 20일 쟁의활동을 준법투쟁 방식으로 끌어가고 3월 연대 투쟁으로 대규모 화력시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다만 파업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있기 때문에, 남은 기간 노사의 협상이 얼마나 진척이 있느냐에 따라 상황은 유동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 노조는 기자회견문과 피켓에 이해진 창업주와 총수라는 단어를 명기했으나 현장에서 이 창업주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최악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는 뜻이다. 최근 네이버는 전 직원들 대상으로 해마다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