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9일, 시카고의 하얏트 호텔에서는 국제 알츠하이머병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었다. 닥터 시드니 길먼(Sidney Gilman)은 콘퍼런스에서 신약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호텔의 그랜드볼룸은 수많은 청중으로 가득 차 있었다. 1700개나 되는 좌석은 이미 꽉 찼고, 많은 사람들이 복도와 뒤쪽 벽에 서 있었다.
콘퍼런스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의학자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수백명에 달하는 월가의 애널리스트들도 참석하고 있었다. 무슨 발표이기에 그렇게 많은 월가 사람들이 시카고에서 열리는 의학 콘퍼런스에 참석했을까?
의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엘란(Elan)과 와이어스(Wyeth)라는 두 제약 회사가 ‘바피뉴주맵(Bapineuzmab)’(이하 ‘바피’)이라 부르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쏟아 부었다.
이 약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희망을 보여 주었다. 동물에 대한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일부 환자의 경우에도 효과가 있었다. 이후 24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18개월에 걸쳐 2단계 실험을 했고, 이날 닥터 길먼이 그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것이다.
미국에는 대략 500만명이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기억력 감퇴와 언어능력의 저하를 가져오는 알츠하이머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향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무서운 질병에 걸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의학자들이 새로운 신약인 바피에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런데 의학자들 이외에 월가 역시 신약 개발에 관심이 매우 컸다. 왜냐하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신약 개발이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대박’을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월가의 투자자들도 바피가 과연 기적의 신약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매우 높았다.
월가의 유명한 헤지펀드인 SAC 캐피털 어드바이저스(SAC Capital Advisors)가 오래 전부터 바피에 대해 엄청난 배팅을 하고 있었다. SAC는 스티븐 코언(Steven Cohen)이 1992년에 설립한 헤지펀드로서 2500만달러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2008년에는 직원 1000명, 그리고 운용 규모가 140억달러에 달하는 월가에서 가장 강력한 헤지펀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코언은 월가에서 내부자거래의 루머가 끊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SEC, FBI 그리고 뉴욕 남부지방 연방 검찰청(이하 ‘뉴욕 남부지검’)이 코언을 잡기 위해 분투했지만 그는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해 갔다.
2008년 여름, SAC는 엘란과 와이어스 주식에 무려 7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도박을 걸었다. 코언은 ‘캐탈리스트(Catalysts)’에 근거한 투자로 유명한데, 이는 특정 주가의 상승 또는 하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에 베팅하는 것을 말한다. 시카고에서 길먼의 임상시험에 대한 발표는 전형적인 캐탈리스트 투자였다. 만약 결과가 희망적이라면 주가는 하늘로 치솟을 것이고 코언은 엄청난 돈을 벌 것이었다.
콘퍼런스가 개최되기 3주 전, 엘란의 임원들은 길먼에게 발표를 부탁했다. 길먼은 프레젠테이션을 맡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한 제안은 커다란 명예이기도 했지만, 길먼은 최근 림프종을 앓고 있었고 화학 치료 때문에 대머리가 된 상태였다. 건강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엘란은 길먼이 의학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미시간 대학 의대에서 오랜 기간 신경학 분야의 책임자로 있었기 때문에 그를 적임자로 보았다. 길먼의 권위가 신약의 임상 결과 발표에 따르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길먼의 바피에 대한 임상 결과 발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크게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바피가 일부 환자에게는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환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길먼은 결과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이었고, 그는 친구에게 “희망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의 상업적 전망이 중요한 월가는 생각이 달랐다. 월가는 바피가 그 정도의 임상 결과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연방 식품의약청(FDA, Food & Drug Administration)의 승인을 받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어느 애널리스트는 임상 결과가 ‘재앙’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시카고 콘퍼런스에서의 발표는 진정한 ‘캐탈리스트’였지만 결과는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코언이 엄청난 실수를 한 것으로 보였다. 다음 날 시장이 끝났을 때 엘란의 주가는 40%, 와이어스의 주가는 12% 하락했다.
그러나 길먼이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때, SAC는 엘란이나 와이어스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콘퍼런스가 있기 전 8일 동안 코언은 두 회사에 대해 보유하고 있던 7억달러의 주식을 모두 매도했을 뿐만 아니라, 엔란 주식에 대해 2억7500만달러의 공매도까지 쳤다. 일주일 동안 코언은 거의 10억달러의 포지션을 반대로 가져간 것이다. 도대체 SAC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길먼은 코언을 만난 적이 없었다. 임상시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철저하게 비밀이 유지됐지만, SAC는 여전히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두 회사 주식을 도박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코언은 주식 투자에 대한 결정을 육감에 따라 한다고 주장한다. 코언이 주가 그래프가 어디로 움직일지를 예견할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오랜 기간 조수였던 챈들러 바크리지는 코언을 가리켜 “모든 시대를 넘어 가장 위대한 트레이더”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연방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어떻게 SAC만 이렇게 절묘한 거래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절묘한 거래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정말 신출귀몰한 거래였다. 거래 규모 또한 천문학적 단위였다. 그러한 거래는 내부정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거래였다. SAC는 2단계 실험에 대해 계속해서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콘퍼런스 발표 바로 직전이라는 완벽한 타이밍에 포지션을 바꿀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은 한참이 지나서야 확인됐다. 시카고 콘퍼런스 3년 후인 2012년 12월, 뉴욕 남부지검은 코언을 위해 일하는 젊은 펀드매니저인 매튜 마토마(Mathew Matorma)를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했다. 연방 검찰은 SAC와 마토마가 바피에 대한 비밀 정보를 이용하여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내부자거래를 했다고 비난했다.
마토마는 거의 2년 동안 임상시험 진행에 대한 비밀스러운 세부 정보를 받아왔으며, 최종적으로 2단계 실험에 대한 실망스러운 결과가 담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입수했다. 그리고 SAC는 그 정보를 이용해서 거대한 포지션 전환을 한 것이었다. 마토마에게 그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길먼이었다.
(이 글은 Sheelha Kolhatkar, BLACK EDGE (Random House, 2017); 실라 코하카, 블랙 에지, 윤태경 옮김, 김정수 감수, 캐피털북스, 2018; Patrick Radden Keefe, “The Empire of Edge,” The New Yorker, October 13, 2014 Issue; U.S. v. Martoma, 48 F.Supp.3d 555 (2014)를 참조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