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한다. 인생의 1/3을 잠, 그 나머지의 대부분을 일을 하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보다 조금 더 많이 일을 하면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투자되는 시간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52시간 관련 규제가 발효되기 이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장시간 동안 일을 하는 나라로 소문이 나 있다. 물론 이 불명예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 과거 주 5일제가 보편화됨에 있어 단계적 적용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대기업 중심으로 우선 시행하고, 보완사항을 검토한 이후에 점차 중견, 중소 기업으로 확대 적용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는 일 중독인 사람들로 가득 찬 곳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일에 중독된 것이 아닌, 못 살던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가 되었기에, 지독하게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발버둥을 칠 뿐이다. 그리고 성장하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과거의 몇 번의 위기를 통해 경험했기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런데 이를 발목 잡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에 의해 측정된 ‘노동 효율’이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지독하게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일을 한다. “00시까지 이것 좀 해줘.” “빨리 좀 해주세요.”, “왜 아직까지 완성이 안 됐죠?” 등 하루 또는 일주일 안에도 시간에 구애를 받는 부탁을 서로 주고 받는다.

문제는 철저하게 ‘시간에 의한 근로의 완성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선 순위가 결과물의 완성도보다는 얼마나 시간을 잘 지켜서 제출했는가로 판단된다. 쉽게 말해 해당 시간을 지켜서 적절한 성과물을 만들어내면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

즉 효율성보다 효과성을 앞세워 평가하고 보상하며, 이를 통해 내부 경쟁을 부추긴다. 문제는 이게 필요한 비즈니스와 그렇지 않은 비즈니스를 구분해야 하는데, 무분별하게 도입해 대부분의 직장인을 말려 죽이려 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4차 산업, 5G를 통해 초연결 사회를 꿈꾸는 지금에도 유효하다. 여전히 정성적 지표를 뒷전으로 하고, 정량적 평가를 위한 세부 지표를 만드는 노력 중이다. 물론 데이터 시대에 더욱 수준 높은 접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보편적 적용 원칙 없이 그냥 적용해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은 이런 부분의 부정적인 면을 경험하고, 다시금 정량보다는 정성적인 부분을 앞세워 정해진 답을 빠르게 내는 것이 아닌, 정답에 가까운 해답을 찾고 이를 관리하는 것으로 태세를 전환하는 중이다.

기업 시스템의 유연함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그 시스템상의 참여자들이 해당 시스템의 ‘연결체’ 이상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데 있어, 계량화된 몇몇의 목표로 인해, 목적을 잃어버려 결국 시스템 흐름 자체를 망쳐버릴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산업화 시대의 잔여물이라는 해석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시간에 맞춰 무언가를 생산하고 유통 및 물류를 통해 전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당연히 최대 생산을 통해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일종의 공리주의적 사상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산업화 시대의 성공을 이끌었던 이들이 여전히 리더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토건 및 제조 등의 ‘제조업자 또는 하드웨어 마인드’로 똘똘 뭉친 이들이다. 그들이 만들어낼 미래에 안타깝게도 말랑말랑한 소프트웨어는 없는 듯 보인다.

여전히 물리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만들기만 하면 사람이 모이고, 그 사람에 의해 더 많은 가치가 만들어지며, 만들어진 가치는 그곳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생각해보자. 최근에 만들어진 거대한 쇼핑몰의 행보를 말이다. 적절한 시기에 맞춰서 리뉴얼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하다. 새롭게 바꿔서 핫플레이스가 되면 유행처럼 그곳을 방문해 여러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고 소비를 한다. 하지만 그 소비는 지속성을 띠지 못한다. 어디든 있는 것을 그저 옮겨놓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관리자 또는 리더의 통제성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가공되었다. 잘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대부분 직원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근무시간이다. 아니 정확히 해당 시간에는 몇몇의 예외를 빼고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각자의 자리 말이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장인이면 9시 또는 10시까지 출근해, 12시 또는 1시부터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가량 점심을 먹고 6시 또는 7시까지 나머지 업무를 한다. 8시간은 자신의 책상을 벗어나기 어렵다. 심지어 00분 이상 벗어나면 팀장에게 알림이 가도록 설정된 회사도 있다.

이것도 모자라 Daily Report를 쓰는 곳도 있다. 마치 일기처럼 자신이 무슨 일을 했고, 그 일을 어디까지 했으며, 그 일로 인해 내일 어떤 일이 있는지 등의 간략한 내용을 정리해 상사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그 상사는 마치 일기를 검사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잘했어요’ 도장과 함께 몇 줄의 코멘트 또는 이를 규합해 상사에게 주기적으로 보고한다.

이게 ‘지식근로자’에게 할 짓인가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관리한다. 심지어 그러한 관리 방법을 통해 목표 달성의 여부를 체크하고, 일을 열심히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상과 벌을 내린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남짓에 어떤 일을 하는 것 아닐까?!

넷째, 일을 오랜 시간 동안 하면 경력이 곧 실력이 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전문가 혹은 전문가에 준하는 실력을 평가할 때 ‘업력’이라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둔다.

심지어 이들이 일을 우습게 보기도 하는데, 그 결과로 큰 코 다치는 이가 부지기수로 나타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의해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시니어가 주니어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을 당하고, 그 자리가 뒤바뀌는 것을 필드에서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오래 한다고 더 좋은 성과’가 난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수십 수백 가지의 관리하지 못하는 변수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데 과연 누가 현재 성공가도를 달리는 기업의 성공 원인을 몇 가지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 ‘시간에 묶여 일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시간이 최소한의 관리 수단이 될 수는 있어도, 마치 그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물론 사무실에서 일하는 업무의 특성상 시간은 일을 준 사람과 하는 사람의 약속, 그 약속에 이어진 또 다른 벨류 체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모두가 ‘약속’이란 것을 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에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이 시간이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살아왔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미 효율성 자체가 의미 없는 시대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정답 또는 보통이 보통이 아닌 것으로 바뀌어 가는 세상에서, 계속해서 우리의 효율성에 집착한 나머지 효과성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는다면, 만약 그런 조직이 여전히 건재하다면 이제 내리막길을 걸을 일만 남은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야 한다. 만약 지금 바꾸지 못하면, 분명 많은 고객들로부터 선택을 받기에는 이미 글렀다. 누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에게 진심 전력을 다해 만들어 팔 수 있으며, 만약 판다고 해도 그 진심이 담겨 있지 않는 것으로 어느 누가 다시 해당 기업을 찾아오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진정성(Integrity)’의 시대다. 자신의 일하는 진정성을 위해, 우리 기업의 진정성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간에 묶여 일하는 것부터 바꿔보자. 효율성보다 효과성을 우선시하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