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넷플릭스의 글로벌 진출에 따른 국내 시장 진출은 콘텐츠 시장부터 통신 네트워크 시장, 나아가 국내 ICT 플랫폼 업체 전반에 상당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역 거점을 확보해 파트너를 영입하며 계약 과정에서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고, 이를 중심으로 글로벌 플랫폼 경쟁력을 자랑하는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현재 국내 ICT 업계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 킹덤 이미지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웃는 사람들

넷플릭스는 특정 지역 거점을 확보하며 콘텐츠 발굴에 매진한다.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을 중심으로 지역의 능력 있는 콘텐츠 제작자에 아낌없는 지원을 단행, 그들에게 글로벌 플랫폼으로 진출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이어 최근 서비스되기 시작한 조선판 좀비물 <킹덤>이 대표적이다. 국내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막대한 투자에, 제작에 관여하지 않으며 소위 갑질도 별로 없는 넷플릭스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콘텐츠의 글로벌 전략이 빨라지는 대목이 매력적이다. <킹덤>의 경우 한국인 감독과 작가, 배우들이 활약한 가운데 넷플릭스의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190개 나라 1억3900만명의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넷플릭스가 한류 콘텐츠에 주목한 이상 국내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강력한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LG유플러스도 미소를 머금고 있다. 통신 영역에서 소위 백도어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화웨이와 손을 잡는 과감한 개방 정책을 보여준 상태에서, 콘텐츠 부분에서는 2018년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LG유플러스는 2018년 11월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공식 발표했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제공하며, IPTV 부문 단독 파트너십 계약에 따라 국내 IPTV 중에서는 LG유플러스에서만 넷플릭스 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U+tv 이용 고객들은 국내 자체 제작 넷플릭스 콘텐츠는 물론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 오리지널 시리즈와 해외 콘텐츠인 미드, 영드 일드, 영화, 다큐멘터리까지 IPTV 대형 화면에서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LG유플러스 홈미디어부문장 송구영 전무는 “넷플릭스와의 제휴는 U+tv 이용고객들의 콘텐츠 선택권이 한층 확대된 데 의의가 크다”며 “아이들나라 서비스와 함께 U+tv의 젊은 브랜드 이미지 강화 및 IPTV 사업성장의 견인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셋톱 자동 업그레이드 방식으로 IPTV에 서비스를 탑재해 원스톱 솔루션을 구축한다는 설명이다. LG유플러스는 UHD2 셋톱 이용고객 107만명을 대상으로 넷플릭스를 우선 제공하고 추후 범위를 확대했다.

넷플릭스 아시아 태평양 사업 개발 부문 토니 자메츠코프스키(Tony Zameczkowki) 부사장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독창성을 보유한 한국 창작자들의 작품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의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의 넷플릭스가 국내 가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콘텐츠 수급이라는 전략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분위기다.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가 불공정한 계약 관계를 맺었다는 말이 나오지만, 현 상황으로 보면 LG유플러스의 승부수는 적절했다는 말이 나온다. 당장 <킹덤>이 서비스되자 LG유플러스 IPTV 신규 가입자가 무려 3배 늘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동통신시장에서는 화웨이와, 미디어 시장에서는 넷플릭스와 협력해 만년 3위의 자리를 벗어난다는 각오다. 8일 CJ헬로 인수 가능성까지 높아지며 LG유플러스의 공격적인 행보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 넷플릭스와 LG유플러가 손을 잡았다. 출처=LG유플러스

#우는 사람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심기가 불편한 이들도 많다. 당장 국내 미디어 시장의 강자인 지상파가 우려하고 있다. 한국방송협회는 지난해 11월 성명서를 통해 “두 회사의 협력은 우리나라 미디어산업 전반을 파괴하는 뇌관이 될 것이 자명하므로, 현실적인 국내사업자 보호정책방안을 마련할 것을 정부 당국에 촉구한다”면서 “LG유플러스도 근시안적인 경영방식으로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고 관련 사업을 전면 철회하길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각 국에 진출하며 소위 ‘약한 고리’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협회는 “(이런 방식으로 넷플릭스는) 불과 진출 몇 년 만에 EU VOD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며 사실상 독점 사업자로 등극했고, 그 결과 유럽의 콘텐츠 시장은 초토화되고 있다”면서 국내 사정도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넷플릭스의 진출을 구글 유튜브에 빗대어 표현했다. 유튜브가 불공정 경쟁으로 국내 동영상 시장을 장악한 사례를 들며 넷플릭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점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협회는 “유튜브는 국내 동영상 시장 점유율 85.6%(2018년 상반기)를 차지하는 무서운 괴물”이라면서 “(이러한 성과는) 국내 사업자와는 달리 인터넷 실명제 등의 규제도 회피하고, 정당한 대가 없이 불법 저작물들을 마구 유통하고, 심지어 제휴 통신사로부터 캐시서버까지 헐값으로 제공받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기회와 과정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IPTV 시장에서 LG유플러스와 경쟁하는 나머지 통신사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이들은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장면에서 “사실이라면 성급한 것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충분한 대비는 하고 있다. KT는 유료방송 합산규제 일몰 후 막강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케이블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SK텔레콤은 5G 전략을 중심으로 SK브로드밴드와 지상파의 OTT인 푹의 만남을 끌어냈다.

넷플릭스의 미디어 영향력을 두고는 나머지 통신사들도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으나, 통신 네트워크에서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망 이용료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을 당시 인터넷 망과 서버 확충에 따른 비용 부담을 일정 정도 확정했다. 그러나 KT와 SK브로드밴드는 아직 협상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젤 벱티스트 넷플릭스 디렉터는 최근 간담회에서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전혀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상생’을 노력하고 있다는 말 외에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 넷플릭스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와 협력을 했지만 이는 콘텐츠와 플랫폼의 만남일 뿐,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다른 통신사 고객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망 부담은 커지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통신사들의 속앓이도 커지는 분위기다. 결국 KT와 SK텔레콤은 해외 국제 망 증설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는 이미 해외 망 증설에 나섰으며 KT는 2월 중 해외 망 증설에 나서기로 했다. 넷플릭스 망 문제를 해결하려면 캐시서버를 설치하면 되지만, 그 비용에 따른 교통정리가 난망한 상태에서 결국 자체 해결로 선회했다는 평가다. SK브로드밴드와 KT가 꼭 넷플릭스만 염두에 두고 해외 망 증설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큰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

국내 ICT 업계도 넷플릭스의 등장에 우려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자체 동영상 플랫폼을 가진 기업들의 직접적인 미디어 라이벌은 구글 유튜브지만, 망 사용료 이슈로 보면 일종의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는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경쟁사들은 모두 글로벌 기업인데 그들은 한국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면서 “인터넷망 사용료나 세금을 내는 문제에 있어서 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국내 기업과 해외기업들에 적용되는 법안들이 동등하게 적용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넷플릭스 후폭풍이 매섭다. 출처=넷플릭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미디어, 통신 네트워크, ICT 플랫폼 전반에 후폭풍이 거세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망 이용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 ICT 기업들은 구글이나 유튜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사실상 망 이용료를 내지 않으며 무임승차하고 있으나, 자기들은 막대한 망 이용료를 내고 있다고 주장하며 역차별 이슈를 논한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핵심은 왜 통신사들이 글로벌 기업들의 무임승차를 허용하고 있느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상호접속 고시개정 후 무임승차에 대한 토론, 여기에 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에 대한 통신사들의 대응을 국내와 다르다는 점으로 이중잣대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