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채무자에게 특정한 돈을 지급하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채권’은 굳이 법원의 판결을 받지 않더라도 당연히 인정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 빌려준 채권자는 약속된 날짜에 돈을 빌려간 채무자에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청구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불법적인 행위로 경제적 손해를 본 채권자는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채무자에 대하여 그 즉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가집니다. 그러나 만약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채권자는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승소 판결을 받아 이를 기초로 그 채무자의 재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행을 해야 하는 채권자 입장에서는 채무자 명의의 부동산을 집행할 수도 있지만, 채무자 명의의 부동산이 없거나 부동산의 가치가 채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 못한 경우라면, 채무자 명의의 채권을 집행하게 됩니다. 한 푼이라도 더 회수하고 싶은 채권자로서는 채무자 명의의 부동산이 없다면 채무자 명의의 채권이라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찾아내어 집행해 버리고 싶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채무자는 채권자의 집행으로 빈털터리가 되어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는 경우도 생기겠지요. 이 때문에 민사집행법 제246조 제1항은 ‘압류금지채권’이라는 이름으로 채무자 명의의 채권 중 일정 범위의 채권에 대해서는 채권자가 이를 집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가령, 채무자가 구호사업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계속 받는 수입(제2호), 군인의 급료(제3호), 급료ㆍ연금ㆍ봉급ㆍ상여금ㆍ퇴직연금,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급여채권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최저생계비를 감안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제4호),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 같은 법 시행령의 규정에 따라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금액(제6호), 채무자의 1개월 생계유지에 필요한 예금 중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최저생계비를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한 금액(제8호)이 그것입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는지라 이들 ‘압류금지채권’ 범위 내에 속하는 채권은 채무자가 생계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주거안정을 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므로 어떤 채권자라도 이에 대한 집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판례는 이러한 ‘압류금지채권’ 중 ‘보장성보험의 보험금’은 어느 범위까지 법에 의해 보호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민사집행법 제246조 제1항은 ‘생명, 상해, 질병, 사고 등을 원인으로 채무자가 지급받는 보장성보험의 보험금(해약환급 및 만기환급금을 포함한다)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제7호)에 대해서는 채권자의 집행을 금지하고 있는데요. 이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채무자가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사전에 가입해 둔 보장성 보험, 가령 암보험, 실손보험까지 해지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최근의 보험은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 많아 ‘보장성 보험’의 성격도 가지지만, 이른바 그것이 연금보험과 같은 ‘저축성 보험’의 성격을 겸하는 경우에도 이에 대한 압류를 금지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저축성 보험’은 금융상품 분류 상으로는 보험에 속하지만, 그 목적이 목돈이나 노후생활자금 마련 등 일반적인 ‘예금 채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압류금지채권 범위를 보장성보험으로 한정한 민사집행법 제246조의 취지를 굳이 따져보지 않더라도 보호의 필요성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이렇습니다. 만약 해당 보험계약이 보장성보험계약과 저축성보험계약이라는 독립된 두 개의 보험계약이 결합되어 이를 나눌 수 있는 경우라면 저축성보험계약 부분만 분리하여 이를 해지하고 집행하는 것은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해당 보험계약이 보장성보험과 저축성보험의 성격을 모두 가질뿐더러 이를 분리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해당 보험 전체를 두고 민사집행법 제246조 제1항 제7호에 해당하는 ‘보장성보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한 판단기준도 제시하였는데요. 우선 보험 가입 당시 보험계약이 예정한 해당 보험의 만기환급금이 보험계약자의 납입보험료의 총액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일단 ‘보장성보험’으로 봅니다. 즉 만기 때 보험계약자가 받을 보험환급금이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기간 중 보험사에 납부한 보험료의 총합보다 적다면, 최소한 목돈이나 노후대비목적으로 보험에 가입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기환급금이 납입보험료 총액을 초과하는 경우에도 해당 보험을 당연히 저축성 보험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고 해당 보험이 예정하는 보험사고의 성질과 보험가입 목적, 납입보험료의 규모와 보험료의 구성, 지급받는 보험료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답니다. ‘보장성보험’인 보험 상품을 ‘저축성보험’으로 성급히 판단해 채무자의 재산이 채권자에 의해 강제집행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채무자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채권자에게 특정한 금원을 지급할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만, 그것이 채무자의 생계를 위협할 정도가 되어서 안 된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원의 배려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