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글 쓰기를 좋아하다 보니, 책이나 신문, 인터넷을 하다가도 기억하고 싶은 문구나 내용은 메모해 두곤 한다. 그간의 글 재료는 예전에 만들어 둔 독후감들이었다. 밑줄 쳐가며 읽었던 책을 덮으며 가졌던 느낌과 줄 쳐진 부분들을 메모해 둔 것이 상당한 내용으로 축적되면서 귀한 참고서 역할을 했다. 거기에 평소에 보고 듣고 겪었던 것들에 대한 짧은 생각들도 추가된다.

하지만 매번 어떤 글의 맥락을 잡기 위해서는 생각을 쥐어짜내야 한다. 그럴 때 끄적끄적 메모해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당장 쓰지 않더라도 순간순간 스쳐가는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어딘가에는 메모해 둔다. 그런데 묘하게도 좋은 생각은 메모가 곤란한 때인 경우가 많다. 벌거벗고 샤워하는 중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한참 수다를 떨면서 밥을 먹는다든지, 추운 날 새벽 꽁꽁 싸매고 길을 갈 때, 기진맥진 땀 흘리며 비탈길 오르는 등산에서도 그렇다.

가장 많은 경우는 변기에 앉아서 힘줄 때와 잠자리에 누워 잠의 문턱을 막 넘어선 비몽사몽의 순간들이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를 간직하고 싶지만 메모하거나 할 수도 없어서, 몇 번을 되뇌어 보지만, 깨어난 뒤나 화장실 문을 닫고 나선 뒤에는 그 아이디어가 새까맣게 잊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리 염두에 두고 이런 볼일들을 볼 때면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을 때에 불현듯 뒤통수를 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잠시라도 지나고 보면 그때 그 절묘했던 생각들을 온전히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좀더 지나고 나면 백지장처럼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할 경우도 많다. 분명 생각은 해 두었는데, 잊혀진 것이니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 매 한가지다.

 

희미한 메모 한 줄이 생생한 기억을 이긴다

책도 버리지 못하지만, 그 밖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많다. 참고가 될만한 자료나 전년도에 썼던 다이어리, 탁상용 달력, 명함집, 심지어 평소 메모지로 활용했던 이면지 묶음조차도 버리지 못하고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둔다. 손에 익은 필기구에 대한 애착도 커서 두루마리 필통에 만년필부터 연필까지 늘 세트로 가지고 다닌다.

각종 자료는 딱히 분류하진 않되 순서대로 파일에 넣어두는데, 보통 5년치까지 책상 옆에 두고 그 이상 기간이 지난 파일은 폐기한다. 평소 다이어리와 이면지 메모장 두 가지를 활용하는데, 다이어리는 몰라도 이면지 메모를 모아 둔 것을 의아하게 보는 사람이 많다. 이면지는 쓰고 찢어버리는 것이지만 내겐 그 조차도 귀한 자료가 될 때가 많았다.

‘희미한 메모 한 줄이 생생한 기억을 이긴다.’ 사회 초년생이던 내게 선배가 들려주던 말이었다. 적어야 산다는 ‘적자생존’으로 기록을 강조한 농담도 많았다. 이런 습관은 정부 부처와의 소송전 대외 여론전 등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국회의원서부터 보좌관 공무원 NGO 기자 투자자 등등을 한꺼번에 상대하면서 ‘뭔가는 항상 어딘가에 기록’ 해둬야만 살 수 있었던 상황에서 비롯됐다. 때문에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이면지에 낙서 하며, 낙서장일뿐인 이면지도 버릴 수 없는 자료가 된 것이다.

웬만한 샐러리맨이 연간 접하는 문서량은 A4지 기준으로 많게는 수 만장에서 적어도 몇 천장은 된다. 인쇄는 않지만 주고 받은 메일이나 공문서 그 밖에 기획서 보고서 등등 생산해서 보관하는 파일만해도 2-3만장은 족히 넘는다. 때문에 온-오프라인 각종 자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능력 있는 직장인이면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신년사 같은 인사말이나 보도자료는 작성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상황 경영진의 의향이 반영되기에 팀장에서 임원, 회장단까지 단계를 밟으면서 수없이 수정된다. 분량이라고 해봐야 A4지 한두 장이지만, 초안에서 완성본에 이르기까지 남게 되는 자료는 수십 장에 이른다. 모조리 삭제하고 최종본만 남겨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각 단계의 자료들을 죄다 별도로 저장해둔다.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최종본이 초안과 별 차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각 버전들이 다 귀중한 자료다.

한참 전의 일인데, 모시던 팀장이 복합렌즈를 끼셨다. 근시 때문에 젊어서부터 안경을 썼는데, 노안이 오니 렌즈의 아랫부분은 볼록렌즈라 모니터를 볼 때는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다. 당시 대부분의 직원들 모니터는 14인치였고, 높으신 분들은 큰 모니터를 사용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차이다.

그 팀장은 웬만한 자료는 폴더가 아니라 바탕화면에 깔아두고 바로 열어 볼 수 있게 했다. 그런데 갈수록 자료가 많아지니 모니터 해상도를 높여서, 가장 작은 크기로 바탕화면에 빽빽하게 배치했다. 자주 열지 않는 파일은 폴더에 저장해뒀지만, 그 폴더들의 ‘바로가기’를 또 바탕화면에 뒀다. 모든 자료들이 바탕화면에 올라가 있어야 했다.

빽빽한 바탕화면 속에서 예전에 작업했던 자료를 찾으려면 한참이나 헤매야 했다. 이 파일 저 파일 다 열어보고 나서야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간단한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답을 구하기가 한나절씩은 걸렸다. 몇 번 그런 뒤로는 될 수 있으면 팀장에게 자료를 부탁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팀장이 가지고 있을만한 자료는 모두 복사해 두는 것이 속 편했다.

 

자료 찾는 경영진은 기다릴 줄을 모른다

최고경영진에서 예전에 보고했던 자료를 다시 찾는 경우가 있는데, 지체하게 되면 불호령은 예사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이중 삼중으로 보고했음에도, 자기 컴퓨터에서 찾기가 번거로우니 가져 오라 시키게 된다. 머리와 손을 써서 찾는 것 보다는 입만 움직이는 것이 더 편하다. 급한 상황이 대부분이다. 손님과 대화 중에 자료를 보여줘야 하거나 외출 준비를 하면서 찾는다. 미리 찾는 법은 없다. 어떤 경우는 이미 출발해서 가면서 미팅 장소로 자료를 가져오라 하기도 한다. 이런 오더에 몇 분을 넘긴 적이 별로 없다. 자료를 찾는 경영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자료 정리에 노하우와 요령이 필요한 이유다. 사소하지만 속도가 생명이다.

전 직장에서는 늘 보안 철저를 당부했다. 개인에 지급한 노트북도 업무 중엔 금속 체인을 연결해야 했고, 퇴근할 때에는 서랍이나 금고에 넣고 잠그도록 했다. 승인권자의 인증이 없으면 이메일 하나를 외부로 보낼 수가 없었다. 첨부 파일이 모두 깨졌다. 때문에 팀장이 외근을 나가면 팀원들은 메일 하나 보내지 못하고 멍 때리는 경우도 많았다.

언젠가 한 장짜리 간단한 문서를 보고하고 다음날 지방으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그 보고서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제 부사장님께 직접 보고를 드렸습니다.”

“보고 한 지는 알아. 아침에 비서가 청소하면서 파쇄한 모양이야.”

출장지에서 업무를 보는 중에도 연이어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이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급하면 직접 타이핑하는 게 빠를 텐데도, 계속 그 자료 찾는 전화가 이어졌다. 여분으로 출력해 둔 것이 있었지만, 잠긴 서랍 안에 있었다.

다음날 출근하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도리 같은 걸로 서랍을 억지로 뜯어내서 서랍이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서랍 잠금 걸쇠가 부러져서 더 이상 잠글 수도 없었다. 다행이 여분으로 출력해 둔 자료를 가져가 일은 처리된 모양이었지만, 보안 철저라는 규정을 더는 지킬 수 없게 됐다. 망가진 서랍을 바꿔주지는 않았다.

가끔 후배들에게 업무 스킬을 전수할 요량으로 예전 자료를 찾게 한다. 바로 찾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어느 폴더에 넣어 뒀는지 헤매거나 파일탐색기에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파일이 많으면 그렇게 검색하는 데에도 한참 걸린다. ‘자료를 못 찾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같다.’

찾기 쉽도록 업무 카테고리를 나누고, 다시 개별 이슈별로 폴더를 만든다. 이슈 폴더는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들어질 수 있다. 그 안에 자료들을 넣는데, 폴더나 파일명 앞에는 연월일로 숫자를 항상 달아둔다. 자동으로 시간 순으로 배열되고, 맨 아래가 항상 마지막 버전이 된다. 나는 업무 인수인계에서 장황한 설명보다 컴퓨터 화면만 보여주면 끝난다.  업무 카테고리폴더 내엔 연도별 폴더가 있고 그 안에 날짜 순으로 작업한 모든 것들이 정리되어 있다. 누구나 쉽게 찾는다. 수만 장의 자료를 관리하는 A형의 노하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