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국판 CES, 동대문 CES로 불리는 한국 전자IT산업 융합 전시회가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가운데 이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혹자는 전시행정의 극치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사라진 롤러블, 움직이지 않는 로봇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던 추억의 드라마 [제5공화국]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12.12 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일본 우익의 거두를 만나 통치와 관련된 노하우를 전수받는데, 일본의 우익 거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일본은 오사카 만국박람회을 크게 열었던 적이 있다"면서 "국민들에게 보고 즐길 것들을 정신없이 내어주면,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후 대통령이 되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그 노하우를 충실히 이행합니다. 소위 '3S 정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보고 즐길 것들을 제공해주고 국풍81이라는 대규모 이벤트를 열기도 하거든요.

처음 동대문 CES 소식을 듣고 당시 드라마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설마...혹시?' 올해 1월 미국에서 열렸던 CES 2019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열광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정부가 그러한 관심을 동대문으로 가져와 위험한 불장난을 하는 것일까? 그러나 막상 현장을 찾으니 그런 생각은 100% 사라졌습니다. 동대문 CES로 국민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면 고작 이 정도의 규모로, 인프라로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동대문 CES 첫 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보여줬던 한국 기술의 혁신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은 그런 문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상당히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준비 기간이 짧아 제대로 된 혁신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LG전자의 롤러블 OLED TV가 하루만에 사라진 장면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모든 행정과 과정이 졸속 그 자체입니다. 다른 부스의 로봇은 일용할 전기도 없이 구석에서 낮잠을 자고 있더군요.

▲ LG전자의 롤러블 OLED TV.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참가 기업들의 숫자도 너무 작은데다 규모도 넉넉히 30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수준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네이버 등이 그나마 의미있는 부스를 차려 눈길을 끌지만 그 외에는 볼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오사카 만국박람회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열렸던 창조경제박람회와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규모나 행정 부분에서는 창조경제박람회가 동대문 CES와 비교해 한 수 위지만, 아무 의미없이 보여주기로 일관하는 분위기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전시회에 대한 이해입니다.

▲ SKT의 홀로그램 스피커가 보인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국내는 물론 외국의 다양한 박람회나 전시회를 취재하면서 선명하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 박람회나 전시회가 열리면 그 주인공인 제품이나 서비스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이렇게 멋있어" "우리가 이런 제품을 만들었어"라는 '자랑파티'가 열려요. 이런 점은 해외 박람회도 동일합니다. 다만 해외 박람회는 자랑파티보다는 비즈니스에 더 중심을 둡니다. 각 부스와 개별 공간에서는 정말 끊임없이 바이어들이 찾아와 비즈니스의 장이 열립니다.

CES만 봐도 이를 계기로 미국이나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의 가열찬 비즈니스 행보가 불꽃을 튀깁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크게 2개입니다. 얼마나 글로벌한 행사냐, 얼마나 지리적인 이점이 있느냐. 후자의 경우 아무래도 한국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유수한 전시회나 박람회는 소위 교통의 요지나 주요 거점에서 열리는데 동북아시아의 한국은 시장도 작고 교통의 요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자는 치밀하고 확실한 계획을 세우면 어느정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동대문 CES는 고작 2주의 시간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는 결국 동대문 CES가 '아무 생각없이 보여주는 행사'라는 점에 무게를 더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보여주는 행사'가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사실 정부가 동대문 CES를 준비하며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대목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시회나 박람회를 열 때 비즈니스에 대한 최소한의 생각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알맹이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럴거면 왜 전자전을 여는 것일까'라는 아쉬움과 더불어 안타까움까지 느껴집니다.

사실 이 문제는 모든 이벤트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합니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고, 지난해 서울에서 처음 열린 서울 보아오 포럼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습니다. '모이면 뭐하나, 알맹이가 있어야지'라는 말. 여기에 비즈니스를 강하게 삽입하면 어떨까요.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큰 우려가 있습니다. 바로 관치입니다. 서울시의 제로페이도 그렇고, 현 정부는 민간의 영역에 뛰어들어 관치 주도로 성과를 내는 것에 재미를 들린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만, 약간의 속도조절을 해야 합니다. 관치로 추진되는 전략과 로드맵은 나름의 성과를 낼 수 있지만 다양성의 가치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기업의 팔을 비트는 행위, 그리고 관치. 동대문 CES를 관통하는 우울한 키워드입니다. 이제 정부가 말하는 '한국형 OOO'은 그만 보고 싶습니다.

▲ 삼성전자의 더월이 보인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의미는 있다"
동대문 CES는 약점이 많습니다. 현 정부가 ICT 혁명을 이상하게 이해하고 있고,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나 박람회의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점만 있다고 보기에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자가 있으면? 빛도 있으니까요!

우선 무료입니다. 덕분에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는 분위기입니다. 현장을 찾아가니 인근 직장인들도 보이고, 무엇보다 노년층이 많이 보였습니다. 무료 행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ICT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OLED TV를 살펴보는 장면은 약간 감동적이기도 했습니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 열리는 행사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IT 취약계층에 의외의 순기능을 자랑하는 순간입니다.

CES 정도의 규모는 당연히 아니지만 핵심 아이템들이 '일부' 한국에서 공개된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정부가 가장 원했던 순기능인데 현장에서 보니 정말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CES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니 당연히 영어로 참관객을 응대하잖아요? 동대문 CES의 공용어는 한국어입니다. 편하게 최신 기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