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여당 민주당 원내지도부와 경제 분야 상임위 간사단이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를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언급했으며 홍 원내대표는 "삼성이 일자리 창출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현장에서 반도체 사업전략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이 부회장은 "비 메모리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주춤한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의 파급력을 감안, 일종의 플랜B를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운드리에 미래가 있다
삼성전자는 31일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반도체에서 매출 18조7500억원, 영업이익 7조77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시장의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메모리 수요 감소로 전분기 대비 실적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데이터센터, 스마트폰 관련 주요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으로 메모리 수요가 크게 감소해 전분기 대비 출하량이 줄었고, 업계의 낸드 공급 확대에 따른 가격하락 영향도 눈길을 끈다. 스마트폰 등 주요 제품의 계절적 비수기에 따른 이미지센서, AP 수요 둔화로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실적도 하락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는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주목하고 있다. 협회는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기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장비 지출액이 총 557억8000만달러를 기록, 지난해와 비교해 약 7.8% 줄어들 것으로 봤다. 협회는 불과 4개월 전 올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장비 지출액이 지난해와 비교해 7.5%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의 활력을 상징하는 장비 지출액 전망이 단 4개월 만에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돌변한 셈이다.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2018년 수출입 평가 및 2019년 전망’ 보고서도 비슷한 주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초부터 10월까지 36%를 넘겼으나 올해는 이러한 수치를 장담하기 어렵다. 2017년 57.4%를 기록한 국내 반도체 수출증가율은 올해 5.0%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D램과 낸드플래시로 이어지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업황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보면, 아직 파운드리와 시스템 모두 명확한 활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악화는 당장 개선할 수 없어도 시스템, 특히 파운드리에서는 다양한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5년 파운드리 사업을 처음 시작해 2009년 로직 공정 연구소를 신설하고 2012년 미국 오스틴 S2 라인 가동으로 파운드리 생산을 크게 확대했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14나노 핀펫, 2016년에는 10나노 핀펫으로 진격했고 2017년 10나노를 거쳐 지난해 2월 7나노 공정시대를 선언했다.

파운드리에서 충분한 강점이 있고,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성장의 여백도 크다. 삼성전자 반도체 전략에서 충분히 플랜B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장 정은승 사장은 지난해 12월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소자학회(IEDM, International Electronic Devices Meeting)'에 참석해 '4차 산업혁명과 파운드리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Foundry: Challenges and Opportunities)'를 주제로 기조 연설에서 GAA(Gate-All-Around) 트랜지스터 구조를 적용한 3나노 공정 등 삼성전자의 최근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등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 바 있다.

▲ 삼성의 파운드리 로드맵이 발표되고 있다. 출처=삼성

정 사장은 '삼성 파운드리 포럼'과 삼성전자 파운드리 에코시스템(SAFE, 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 등을 통해 글로벌 고객 및 파트너와 협력하며 일종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야망을 보이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2018 인베스터즈 포럼에서도 파운드리가 강조됐다. 지난해 6월 열린 포럼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마케팅팀 이상현 상무는 "새로운 응용처의 등장으로 국내도 로직(Logic) 반도체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면서 "다양한 고객을 지원하고자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한 만큼 국내 고객사들과도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지난해 7월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8 코리아에서는 고객 숫자가 크게 늘었다는 말도 나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이상현 상무는 "지난해 파운드리 사업부 독립 후 국내 팹리스 고객과의 협력이 대폭 강화되어 국내 고객 수가 2배로 확대되는 성과가 있었다"라며, "올해는 고객이 원하는 설계 인프라를 더욱 강화해 국내 팹리스 고객의 성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올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2위를 노리고 있다. EUV의 적극적인 차용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다수의 생태계 일원들과 공동 플랫폼을 꾸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올해 파운드리 시장은 647억3700만달러에서 2021년 820억달러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매력적인 시장인 만큼 삼성전자의 전략도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는 턴키 방식의 토털 솔루션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팹리스가 제안하면 빠르게 원스톱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 2018 삼성 파운드리 포럼이 열리고 있다. 출처=삼성

경쟁자들의 약점 노출도 삼성전자에게는 호재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강자인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는 지난해 7월 일찌감치 7나노 공정을 포기했다. 당장은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의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면서 파운드리로 진격하려는 삼성전자에도 최대 호재가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GF가 7나노를 포기하면서 GF에 들어가던 물량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곳은 TSMC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TSMC는 GF의 물량을 대거 빨아들여 몸집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의 AMD는 TSMC에 7나노 제품을 맡긴다고 발표했으며 글로벌 모바일 AP 시장의 절대 강자인 퀄컴은 올해 TSMC와 협력해 7나노 공정으로 만든 스냅드래곤을 생산할 계획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도 반사이익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업계 1위 TSMC의 흔들림도 의미심장하다. 해킹에 따른 라인 공정 오작동에 이어 최근에는 감광액 이슈가 불거지며 10만장에 이르는 웨이퍼가 불량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장 물량이 이동할 가능성은 낮지만 역시 삼성전자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는 자체 능력 강화, 경쟁자의 불안함으로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지만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구석도 있다. 핵심인 EUV 공정도 불안한 요소가 많다는 점이 문제다.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셈이라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해 화성에 EUV 노광장비를 활용한 신규 라인 건설에 도입했으나,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이유다. 무엇보다 TSMC는 조만간 삼성전자가 보유한 EUV보다 더 많은 EUV를 확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투 트랙으로 간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 엑시노스로 대표되는 모바일 AP를 중심으로 시스템에 집중하는 플랜B를 보여주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황 반등을 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24일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국내 반도체 수출 금액은 전년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량 증가율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기록한 12.3%를 다소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하반기에 IT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며 데이터센터 투자 회복, 중저가 스마트폰 점유율 확대가 일어나면 반도체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시스템과 파운드리, 여기에 최근 부쩍 강조되고 있는 인공지능 생태계는 반도체 수요를 크게 늘릴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면서 올해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호황과의 시너지를 그리는 것이 삼성전자의 '큰 그림'이다.

삼성전자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당장 이 부회장은 올해 초 반도체 현장을 둘러보는 한편 내달 5일 경 중국 출장을 통해 반도체 사업 전반을 점검할 예정이다. 최근 청와대 간담회가 종료된 후 문재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반도체 업황을 물었을 당시, 이 부회장은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 그대로 올해 삼성전자의 진짜 실력이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