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세계 경제위기는 ‘원인’이 아닌 ‘결과’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감기가 아니라, 오래된 생활패턴에서 누적된 만성적이고 치명적인 고질병이다. 경제를 위협하는 치명적 위험 요소들이 장기적이고 복합적으로 누적돼 발생한 만성적 병폐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당장 겉으로 드러난 불황의 전조만을 없애려 노력해온 결과다. 우리 경제는 더 이상 간단히 손쓸 수 없는 만성 악화 상태에 빠져 있다.

▲ 김동은 어피니티파트너스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김동은 어피니티파트너스 대표는 2011년부터 연세대학교 MBA에서 ‘세계 금융 위기론(Global Financial Crisis)’을 강의하면서 글로벌 리스크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해왔다. 그는 구체적인 통계를 근거로 리스크 관련 논리를 전개한다. 역사적 사건과 사건의 배경들을 철저히 분석해 리스크 방향을 추측한다. 특히 미국의 200년 금융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이른바 ‘뉴노멀(The New Normal)’ 시대를 ‘엔드 노멀(The End of Normal)’이라고 강조한다. 30년 넘게 세계 각지에서 금융업을 해온 김 대표와 함께 경제 기상도를 짚어봤다.

김동은 어피니티파트너스 대표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MBA를 졸업, 금융업이 떠오르기 시작한 1988년 모건스탠리의 FX트레이딩 파트로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글로벌 3대 보험회사 중 하나인 마쉬의 한국지사에서 최고경영자(CEO)와 동부화재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어피니티파트너스를 직접 운영하며 자동차 관련 보험업과 연계한 사업을 하고 있다.

김동은 대표는 “감기는 주사로 해결할 수 있지만 고질병은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금방 없어질 것 같지 않던 몸의 문제는 쉽게 고칠 수 없다. 과거에 어떤 생활 패턴에서 살아왔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런 것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관찰해야 체질을 개선하고 병을 고칠 수 있다.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 미국의 200년 10년물 국채금리 추이. 자료=GFD

그는 지금의 글로벌 금융시장이 지금 금융시장은 쉽게 말하면 투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투자의 기본 개념에서 정립된 시장 형태가 아니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마디를 하면 그것이 호재이기도 하고 악재이기도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 논란의 문제점을 역사적 배경으로 설명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연준은 높은 속도로 대차대조표를 키울 것인가, 늘리지만 속도를 낮출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축소를 감행할 것인가 등 네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김 대표는 이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연준의 과오 때문에 커다란 리스크에 직면할 것으로 판단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5년 이후 미국 금리를 보면 단순하다. 세계대전 이후 1981년 폴 워커 의장이 연준을 맡을 때까지 미국 금리는 15.8%까지 오른다. 강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당시 정치권에서 부양정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 시기부터 금리하락기에 접어든다. 그런데도 경제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양적완화를 택했다. 정부가 연준의 양적완화를 허락하면서 채권 매입이 시작된다.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4조5000억달러로 정점을 기록한 뒤 2018년 상반기 기준 4조3000억달러까지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그런데 수조원에 육박하는 대차대조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전에는 매입 자산이 거의 없다. 금융 위기 이후 연방이 돈을 찍어 시장의 채권을 매입하면서 시장 유동성을 키우는 정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매입한 채권은 그대로 들고 있는 상태다. 채권 매입 규모는 3번의 양적완화(QE3)까지 거치면서 부쩍 늘어났다. 금융위기에나 사용하는 정책 기조를 현재까지 유지한 셈이다.

▲ 연준의 양적완화 변화. 자료=메릴린치

그런데 연방기금금리의 목표 범위 내에서 금리 인상이 이루어질 때마다 수익률 곡선이 평평해지고, 연준이 상업은행에 지급하는 금리 또한 상승하면서 연준의 포트폴리오에 있는 국채 수익률에 근접하게 된다. 평평한 수익률 곡선은 경제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연준의 이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 것. 수조달러에 이르는 초과 준비금은 연방기금금리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목표하는 적정 범위 내에서 관리하는 연준의 능력이 발휘되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도 연준이 채권을 계속해서 매입하는 것은 금융산업 유동성 문제다. 상업은행들과 월가는 연준이 채권을 계속해서 매입하길 원했고 정치적 로비를 대대적으로 감행해왔다.

▲ 김동은 어피니티파트너스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정치권과 연준은 부양정책을 펼치면 낙수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김 대표는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주주이익 극대화다”라면서 “당시 사회적 풍토가 주주이익에 힘을 실어주는 추세였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중심에 서 있었다. 특히 글로벌 제조업 중심이 미국에 달려있으면서 이른바 ‘미제’가 유행했다. 그런데 미국은 1970년대에 큰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일본 제품들이 미국에 속속 들어온 것이다. 토요타, 혼다, 소니, 파나소닉 등 제조품들이다.

당시 미국 MBA와 월가, 경영컨설팅업체, 리서치회사들은 ‘미국이 너무 둔해졌다. 경제가 낙후됐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와 노조의 부패가 극에 다다른 시기였다. 특히 미쓰비시가 미국의 상징인 록펠러센터를 2200억엔에 매수하면서 쇼크가 극에 달했다.

이때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경제 영화 <월스트리트(1987)>에서 ‘탐욕은 선하다(Greed is good)’라는 멘트가 월가에서 유행처럼 돌았고, 미국 금융업 관계자들이 ‘주가는 무조건 올라야 한다. 구조조정은 필수다’라며 단합하기 시작했다.

금리도 낮게 책정되면서 투기여건이 조성됐고 정부가 마침 금융규제를 완화하면서 자본주의의 주주이익 극대화가 시작했다. 김 대표는 “장기적인 투자보다 단기간 투자가 미국에 성행하게 된 계기”라면서 “한국 역시 채권 아닌 주식시장이 활성화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금융업 자체가 이때까지 시시한 업종이었다. 금융이라는 것은 실물 경제에 심부름하는 역할을 했다”라면서 “그런데 금리가 내려지고 규제가 없어지니까 금융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투자은행이 글로벌 모델이 되고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한 이유기도 하다. 이들이 돈을 싸게 빌려서 채권을 매입하면서 가만히 있어도 금리가 내려가니 돈을 벌게 됐다. 그리고 단기 이익을 내는 것을 칭송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 김동은 어피니티파트너스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주주이익 극대화 기조와 금융권의 로비가 성행하면서 연준은 코너에 몰리게 됐다. 연방과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금융자산 거품이 더욱 커져서 완전히 폭발할 수 있어 더 큰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한편으론 내리지 않는 대신 정상으로 다시 돌려서 올려야겠다고 판단하지만 조금만 올려도 금융권의 로비가 들어온다. 금융권이 정치권에 난리를 친다. 유동성 문제도 걱정이다. 시장도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역사적으로 보면 본질적인 성장 모멘텀 없이 후대에 부담을 가중하는 임시 처방 경제 정책 기조가 지난 금융위기 이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직면해 있는 것이 파월 의장의 현재 상태”라고 강조했다.

▲ 국가별 GDP 대비 부채 비율. 자료=시티리서치

리스크는 경제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다양한 각도에서 경제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김 대표는 “미국의 200년 금융 역사를 보면 현재는 뉴 노멀 시대가 아니다”라면서 “이렇게 많은 부채를 써서 성장을 앞당겨온 사례는 과거에 거의 없다. 미래를 먹어버린 현재 경제에게 남은 것은 부채 부담이다. 가계, 기업, 나라 등이다. 공기업까지 부채를 포함하면 부채가 상당하다. 중국은 지방정부는 부채가 너무 과다해 정크본드 수준까지 하락할 만한 상태에 놓여있다”라고 설명했다.

▲ 노동인구 평균연령 변화. 자료=월드뱅크

그는 미국의 예산을 놓고 고령화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예산을 보면 1조달러 이상이 매년 적자를 본다. 사회 보안, 메디컬 케어, 비고용자 지원 등을 포함해 58% 이상 예산을 쓴다. 국방에 예산 20%를 사용한다. 이 80%의 예산은 건드리기 어렵다. 복지 부분은 투표권 파워를 좌지우지하는 부분이다. 국방예산은 무기제조업체의 정치로비가 대단해서 건드리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교육과 인프라 등 근본투자에서 매년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고령화 사회가 들어가면 복지예산은 늘어나면서 고정예산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된다. 갈수록 예산 규모는 줄어드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 근본적으로 나라 재정은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고령화 사회 세금 수입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에 미래 부담이 가중하고 있다. 미국이 4%대 GDP경제를 추측하지만, 이는 ‘장밋빛 예측’이라는 게 김 대표를 포함한 글로벌 채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 글로벌 자연재해 추이. 자료=뮤니크

소득의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지진과 홍수, 태풍, 가뭄 등 자연재해들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고 이상 고온과 저온, 폭설 환경오염 등에 의한 기후 변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독일의 글로벌 보험회사 뮤니크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재해는 매년 지속해서 늘고 있다. 김 대표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동인이 감소하는 것만큼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악순환을 가속하는 문제가 없다”면서 “대규모 인명·자산 피해와 사회적 활동 저해 등 사회적 비용 증가는 미래 예측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요소다. 우리가 시대적으로 이런 것을 통해서 누적된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경제 금융시장은 정치, 사회, 환경, 에너지, 테크 등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 중 ‘3E’를 가장 강조했다. 경제(Economy), 에너지(Energy), 환경(Environment)의 영어 앞 스펠링을 따와 만든 단어다.

먼저 에너지다. 김 대표는 “미국의 셰일 오일로 인해 폭락한 것인데, 미국은 기름이 굉장히 싸지면서 양이 많아 에너지 문제가 없다고 했다”면서도 “그런데 이게 엄청난 착각이다. 많은 금융사가 셰일에 투자하면서 금융회사들이 로비와 함께 리포트를 내면서 광고한 게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저비용으로 뽑아낼 수 있는 오일량은 상당히 극소량이다. 엄청난 고비용을 투자해야지만 대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름이 나온다. 지난해부터 캐나다와 미국 등지의 정유회사들이 기업회생(미국 파산법 챕터13)을 신청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환경문제도 커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투자회사가 에너지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김 대표는 위기를 정면으로 보고 역사적 해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는 지금 큰 터닝 포인트에 있다”면서 “지금까지 익숙히 내려온 금융 산업 트렌드를 ‘노멀’, 살짝 꺾이면서 시작된 것이라는 게 ‘뉴노멀’이라고 하지만 현재 시점은 노멀의 종말에 가깝다. 그야말로 경제는 티핑 포인트에 있다.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를 공부해야지만 불확실한 미래에서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