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담당자들이 30일부터 31일까지 미국 워싱턴 DC에서 협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류허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무역 대표단은 이미 워싱턴에 도착했으며 대표단에는 이강 인민은행 총재, 랴오민 재정부 부부장 등 핵심 인사들이 포진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7일 중국에서 열린 미중 차관급 협상의 후속 조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관건은 지식재산권 보호와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 요구 금지 등을 중국이 얼마나 받아들이냐에 있다. 3월2일이 되면 미중 무역전쟁의 90일 휴전이 종료되는 상황에서 스티븐 므느신 재무장관, 윌버 로스 상무장관,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미국 무역 대표단은 핵심 아젠다를 두고 빠른 협상 타결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

미중 두 나라가 휴전 종료를 앞두고 막바지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나름의 접점을 찾으려는 현재, 지난 7일 차관급 회의에서 나름의 진전이 있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류허 부총리를 만난다는 소식이 알려지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 심각한 변수가 발생했다. 바로 화웨이 이슈다.

업계에서는 미중 고위급 회담이 잡힌 가운데 미 법무부가 화웨이를 기소한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G20 회의를 통해 중국과의 타협점을 모색하는 순간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했고, 이번에는 고위급 회담 직전 화웨이를 기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굵직굵직한 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화웨이를 압박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그 과정에서 화웨이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 미중 무역전쟁이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출처=갈무리

미국, 화웨이 전격 기소
미국 법무부는 28일(현지시간)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화웨이의 자회사 스카이콤과 화웨이 디바이스 USA를 전격 기소했다. 미국 경쟁사의 기밀을 유출하고 대 이란 제재를 어기는 한편 금융 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다. 뉴욕에서는 사기와 대 이란 제재로 무려 13개 혐의가, 워싱턴에서는 기밀 유출을 이유로 총 10개 혐의가 기소됐다. 미 법무부는 조만간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신병 인도를 요구할 방침이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중국은 이번 사태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중국 정부는 중국 기업들이 법규를 준수하도록 함과 동시에 각국이 중국 기업에 공정한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미국이 중국의 특정 기업을 모독하거나 타격, 합법적인 경영활동을 말살시키려 한다"면서 "그 배후에는 강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화웨이도 반발하고 있다. 화웨이는 "미 정부의 기소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면서 "멍 부회장이 체포된 이후, 화웨이는 미국 법무부, 뉴욕주 동부지방검찰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였으나 미국 측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이러한 요구를 거절했다"고 토로했다.

화웨이는 이어 "영업 기밀 관련 민사소송 건은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되었으며 시애틀 배심원단은 화웨이에 대해 손해배상할 의무가 없으며, 악의적 행위가 전혀 없었다는 판결을 내렸다"면서 "화웨이는 화웨이 및 자회사 또는 계열사에 대해 미국 정부가 기소한 법률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고위급 협상을 앞두고 화웨이를 전격 기소한 것 자체가 일종의 협상카드라는 시각도 나온다. 그러나 화웨이 사태가 미중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에, 화웨이 사태를 계기로 무역 협상 자체가 깨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멍완저우 부회장이 미국에 기소됐다. 출처=갈무리

고난의 길 걷는 화웨이
화웨이 사태와 미중 무역전쟁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며 그 대표주자인 화웨이를 견제하는 분위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은 2015년 양회를 통해 스마트 제조 2025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총 3단계로 이어진 중국 제조업 발전 계획이자 국가 혁신 계획이다. 1단계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양적인 제조강국에서 벗어나 질적인 스마트 제조 플랫폼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2단계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글로벌 스마트 제조 시장에서 최소한 중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며 3단계는 2036년부터 2045년까지 글로벌 무대를 석권하는 것이다. 스마트 팩토리부터 반도체까지 다양한 ICT 영역에서 중국의 기술굴기를 현실로 끌어내, 중산층의 부흥인 샤오캉 시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이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맞물리며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의 기술굴기가 본격화되자 미국이 움직였다. 당장 미국 정부는 대 중국 적자를 운운하며 보호 무역주의에 시동을 걸었다. 이어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며 글로벌 경제는 불확실성으로 빠져들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바로 화웨이다. 화웨이는 글로벌 통신장비시장의 최강자이자, 단말기까지 제조하는 기업이다. 2020년 5G 상용화 시대를 맞아 중국 ICT 대국굴기의 최전선에 섰다. 그와 비례해 미국의 강력한 견제도 받고 있다. 미국 하원은 2012년 10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들 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한편, 미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화웨이 미국 시장 퇴출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미국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국가 보안에 균열이 간다는 논리다.

미국의 화웨이 견제는 치밀하다. <WSJ>는 지난해 11월23일 미국 정부가 우방국을 대상으로 중국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WSJ>는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동맹국가 관계자들과 통신사 경영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며 “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들에서 통신 개발 지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소위 백도어 논란은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며, 미중 무역전쟁의 중재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추가 미중 무역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화웨이는 퀄컴으로부터 5000만개의 반도체를 구입했다”면서 “(미국과 중국은) 적이 아닌, 친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사태는 몇 차례 변곡점을 돌았다. 그리고 화웨이라는 희생물을 바탕으로 불을 뿜던 미중 무역전쟁은 지난해 12월1월 극적인 타협점을 찾았다. 미국과 중국이 G20 정상회담에서 만나 90일의 휴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G20 회의가 열렸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명을 발표해 “미국과 중국은 90일 동안 지식재산권 보호와 비관세장벽, 사이버 침입, 절도 등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 지난해 9월 24일부터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고 있던 관세율 10%를 내년 1월 1일 25%로 인상하려던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평화무드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런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이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됐기 때문이다.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은 “캐나다 경찰 당국은 미국 측의 요구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 법을 전혀 위반하지 않는 중국 공민을 체포했다”면서 “심각한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캐나다와 미국을 규탄했고, 미국은 "당연한 조치"라며 멍 부회장 체포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런 회장은 다시 전면에 나섰다. 런 회장은 지난 15일과 17일 연이어 간담회를 열어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려는 행보에 나섰다. 런 회장은 화웨이 5G 기술에 자신감을 드러내며 “5G를 가장 잘하는 회사도, 최신 마이크로 웨이브 기술을 가장 잘하는 회사도 화웨이다. 이 두 가지를 다 잘하는 기업은 화웨이가 유일하며, 화웨이는 이 두 가지를 접목해 기지국을 구축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서구와의 긴밀한 협력을 논했다. 런 회장은 런 회장은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연구개발 집약도 부문 세계 상위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면서 "현재 8만7805개의 특허를 보유 중이며 미국에서만 1만1152개의 핵심 기술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화웨이는 360개 이상의 표준 단체에 적극 참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5만4000개 이상의 기술연구 관련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유착설에는 선을 그었다. 런 회장은 “화웨이는 독립적인 민간 기업체이다. 우리는 30년동안 170여 개국과 30억명의 인구에게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했고, 그동안 사이버 보안 문제가 일어난 일은 없었다"면서 "사이버보안 및 개인 정보와 관련해 애플의 사례를 본받고 있다. 고객들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회사 문을 닫는게 낫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화웨이는 사이버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연구개발에 2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런 회장까지 전면에 나서 "화웨이를 믿어달라"고 말했으나, 미국은 고위급 무역 협상을 코앞에 두고 멍 부회장과 화웨이 자회사를 기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중국은 물론 화웨이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 런정페이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ZTE, 푸젠진화...다음은 화웨이?
미중 무역전쟁이 휴전 종료를 앞두고 두 수퍼파워가 막바지 타결 가능성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미 법무부가 화웨이를 기소하자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이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도 없는데다, 화웨이 사태가 사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인력 감축까지 시사하며 힘든 길을 헤쳐나가고 있다. 런 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우리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으나, 내부는 심하게 동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런 회장은 최근 사내 이메일을 통해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런 회장은 "화웨이의 상황이 생각만큼 밝지 않다"면서 "승리하기 위해 조직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뢰가 도처에 깔려있다"면서 "큰 폭발이 일어나도 직원을 먹여 살려야 하지만, 바위 같은 길이 앞에 놓여 있다"고 토로했다.

화웨이가 ZTE와 푸젠진화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현재 화웨이가 받는 혐의 중 가장 위험한 것은 대 이란 제재다. 그리고 ZTE는 대 이란 제재에 걸려 폐업 직전까지 가는 고통을 겪은 바 있다.

ZTE는 지난 2017년 3월 이란과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은 4월 16일 ZTE를 대상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하며 압박했고, 그 여파로 ZTE는 크게 휘청였다. 지난해 5월9일 홍콩증권거래소에 ‘회사의 영업활동이 중단됐다’는 자료를 보낼 정도로 존립을 위협받았다. 미중 무역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제재 조치가 일부 해제됐으나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가 ZTE에 대한 행정명령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등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푸젠진화는 미국의 집중공격을 받아 사실상 회사로써의 기능을 상실하는 중이다.

시작은 지난해 10월 미 상무부의 견제다. 당시 미 상무부는 푸젠진화를 두고 미국 기업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017년 말 마이크론이 미 캘리포니아 법원에 푸젠진화와 UMC가 자사 기술을 탈취했다고 소송을 건 후 지난해 7월 푸젠성 푸저우시 중급인민법원이 미국 마이크론 메모리 반도체 제품 26종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판결하며 반격에 나서자 미국이 재차 반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푸젠진화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중국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중국과 미국은 장기간 경제무역, 투자, 협력의 역사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으나 중국은 자국 기업이 외국에서 투자나 경영을 할 때 현지 법률과 법규에 따라 협력하도록 했다"면서 "미국이 중미 상호 신회 증진과 협력에 유리한 일을 해야 한다. 반대로 나오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나왔으나 푸젠진화의 어려움은 커지기만 했다. 결국 올해 초 푸젠진화는 숙원이던 D램 양산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정부는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규정하고 정부 차원의 막강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향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이 대목에서 푸젠진화는 토종 D램 양산을 포기하는 대신 파운드리 사업자로 변신, 울며 겨자먹기로 플랜B를 모색하게 됐다.

문제는 이 마저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푸젠진화는 공장 가동 자체를 멈출 위기에 직면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주요 외신은 푸젠진화가 미국 부품을 제대로 수급받지 못하며 사실상 폐업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마지막 타협점 찾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ZTE, 푸젠진화 등 중국의 기술굴기를 상징하는 간판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미국은 지난해 G20 회의를 통해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내비치며 멍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하고, 이번에도 고위급 회담을 앞둔 가운데 화웨이를 기소했다.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협상 카드로 활용되는 선에서 논란이 마무리 된다고 해도, 화웨이가 이 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이제 기정 사실로 굳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