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최초의 경전인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문구다. 세상의 온갖 고난과 번뇌를 그저 묵묵히 돌파해 스스로 자기의 갈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며 혼란스러운 21세기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전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한 카카오 카풀 논란에도 마찬가지다.

▲ 택시업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정치적 현안으로...카카오 모빌리티도 ‘공전’

카카오 카풀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출범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25일 2차 회의를 마친 가운데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위원장은 “택시산업 발전은 물론 4차 산업기술을 활용해 국민들에게 편리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기로 했다”면서 “택시산업을 공유경제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생각해서 이 부분을 먼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의 발언은 결국 공유경제, 즉 카풀의 도입에 있어 자가용을 배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택시업계의 주장이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카풀과 같은 ICT 플랫폼 실험에서 자가용을 배제하고 택시업계에 적용한다는 주장은 곧 ‘택시합승’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수소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석유산업에 투자하겠다는 주장과 같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선언인 셈이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어떤 대응카드를 가지고 있을까. 현 상황에서는 없다. 업계 관계자는 “다음 사회적 대타협 기구 회의까지 시간이 있다지만, 아직 정확한 방향성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면서 “카카오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또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나 정주환 카카오 모빌리티 대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기들의 서비스가 택시기사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끌어낸 것에 대한 무거운 마음이 크지 않겠느냐”면서 “카카오 모빌리티의 변수는 처음부터 정부나 택시업계가 아니라 시장 그 자체였다. 그런데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과 연이은 죽음으로 내부에서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 모빌리티의 ‘당황함’에 카카오 카풀 이슈가 ‘정치현안’으로 급부상하며 화학작용을 일으킨 결과 전 위원장이 말한 “자가용의 카풀 배제”라는 황당한 주장으로 이어진다는 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 카풀이 베타 서비스에 돌입한 후 택시업계가 광화문과 국회에서 대규모 집회에 나서고 택시기사들이 분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직후 현안은 급격히 정치적인 현안으로 부상했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카풀 서비스 허용을 끌어냈던 자유한국당이 택시업계와 만나 카카오 카풀 반대에 힘을 실어주고, 지난해 지방선거 정국에서는 반 정권 투쟁의 원동력으로 택시업계를 활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택시업계 집회 현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구호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카풀 논란이 정치적 현안으로 부상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당연히 민주당도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야당의 맹공이 더해지며 카풀 논란이 정치적 현안으로 부상했고, 역시 정치적 부담에 휘말린 여당이 택시업계를 달래기 위해 내놓은 것이 2차 사회적 대타협 기구 결과”라면서 “여당은 간신히 마련된 공론의 장이 자칫 택시업계의 반발로 깨어질까 두려워 시작부터 기선제압을 '당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문제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셈”이라고 말했다.

택시업계는 변하지 않는다

2015년 우버엑스, 2017년 풀러스 사태 후 카풀 논란이 모빌리티 업계의 화두로 부상한 가운데, 그 초입인 카풀에 있어 카카오 모빌리티는 철저하게 택시업계에 끌려다니고 있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

최초 풀러스와 럭시에서 본격 시동을 걸었던 카풀 서비스는 카카오 모빌리티가 지난해 초 럭시를 인수하며 본 궤도에 올랐다. 당시 정주환 카카오 모빌리티 대표는 택시의 보완재로 카풀을 활용하며, 카카오택시의 성공을 바탕으로 상생의 흐름을 보여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택시업계는 그러나 ‘보완재’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카풀이 택시업계를 당장 파멸로 끌어갈 것으로 보고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반대의 논리로 교통질서 교란이나 국민의 안전을 내세웠으나, 잊을만 하면 터지는 택시기사의 범죄와 사고에 마지막 보루인 ‘생존권 보장’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대부분은 카풀을 원했다. 일부 택시의 승차거부와 성희롱, 난폭운전으로 대표되는 질 낮은 서비스에 실망한 나머지 카풀이 그 대안이 되어줄 것으로 생각했다. 나아가 ICT 기술의 발전으로 모빌리티의 중요성이 커지는 장면도 중요하다. 소프트뱅크는 우버의 대주주가 되었고 완성차 업체 도요타와 손을 잡았다. 중국 디디추싱은 급격히 몸집을 불리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모빌리티 맹주 그랩은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내세워 외부로 팽창하고 있다. 지금도 국내 기업들의 자금은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에 쏠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는 카풀 현안이라도 빨리 해결해 글로벌 모빌리티 충격파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카풀, 나아가 ICT 기술과 이동의 모든 것이 더해지는 모빌리티 전략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며, 지금까지 질 낮은 서비스로 일관하던 택시업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자 마지막 기회다. 그러나 택시업계는 이러한 흐름을 외면하고 오로지 ‘생존권 보장’ 하나에만 집중했다.

택시업계가 한 때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한국사립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와 비교되는 이유다. 다만 한유총은 국민적인 분노에 직면해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스스로 몸을 낮추고 자정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택시업계는 “우리는 잘못이 없고, 오로지 우리의 밥그릇을 빼앗는 카카오 모빌리티는 나쁘다”는 논리만 되풀이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다. 택시업계는 변할 생각이 없으며, 자기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민들에게는 모르쇠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택시 노동조합과 택시회사로 이어지는 견고한 카르텔을 유지하며 정치권에 진출하는 한편, 이를 빌미로 고질적인 사납금 문제 등을 해결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택시기사들의 고통은 점점 커지고 있으나, 그들의 눈은 가짜뉴스가 막아서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사납금과 살인적인 택시기사의 노동강도는 택시업계의 질 낮은 서비스를 끌어내는 원흉임에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22일 카풀 사회적 대타협 기구 1차 화의에서 박복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회장은 "카풀 문제 때문에 갑자기 다른 복지나 월급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경험상 물타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 복지와 관련된 것은 물타기가 아니라 ‘국민들이 왜 카풀을 원하는가’와 관련된 핵심 아젠다로 평가된다. 결국 택시업계는 변하지 않는 셈이다.

▲ 정주환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카카오 모빌리티, 밀고 나가야

택시업계의 반발이 선을 넘은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민주적 절차를 따라 정상적으로 추진되어야 하지만, 소수의 이익집단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핵심 아젠다가 크게 휘청이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헌법 위 ‘떼법’이라는 자조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카카오 모빌리티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이 급격한 변화의 파도를 맞이하는 현재, 카카오 모빌리티는 O2O 플랫폼의 공급 자율화를 전제로 야심찬 플랫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반론에 주춤거리며 때를 놓치면 ICT 발전의 역사는 크게 후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의지를 갖고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가용을 카풀에서 배제한다는 방안을 먼저 발표했다면 추후 냉정한 후속협상을 통해 택시업계와 ICT 플랫폼 업계가 동시에 살아날 수 있는 상생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비극적인 사고로 행보 자체가 위축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사릴 비극 자체가 벌어지지 말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카카오 모빌리티는 비극의 직접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카카오 모빌리티의 의지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