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을 말한다. ‘주주권’은 크게 주식 가치 향상 및 배당에 관심을 두는 ‘사익권’과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공익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과거에는 연기금이 전자에만 초점을 맞추어 기업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이른바 ‘주주행동주의’에 따라 후자에 무게 중심을 두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책임경영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16일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에는 연기금 주도 하에 회사 및 임원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하거나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스튜어드십 코드가 실제 사안에 적용될 경우 재계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영국에서 최초로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현재까지 네덜란드, 캐나다, 스위스, 이탈리아 등 10여개 국가가 도입·운영 중이며, 아시아에서도 일본, 홍콩, 대만 등이 채택하는 등 점차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제도로, 정부가 선제적으로 도입한 취지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분명 환영할 일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고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족벌경영 중심의 재벌개혁을 함에 있어, 투명한 경영과 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강조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유효적절한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두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은 연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운영할 때 과연 정치적인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의 첫 번째 적용대상으로 지목한 대한항공, 한진칼의 경우만 하더라도 연기금은 당초 기금운용위원회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견해를 존중해 2월 초까지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양자의 의견이 달라지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누군가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정부의 전횡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지만, 언제까지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과거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기금 운용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해 결국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까지 받았던 사실은 이러한 위험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공정경제를 만들겠노라며 스튜어드십 코드에만 얽매일 경우 자칫 연기금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연기금은 2017년 600조원을 돌파하며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손꼽히지만, 지난해 16조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등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인 바 있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문화를 바로잡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연기금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정’을 위해 무리한 주주권 행사를 한다면, 이는 국민이 정부에 연기금 운용을 위임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일 뿐 아니라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기도 하다. 정도를 걷는 기업이 수익도 많이 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므로, 정부는 선택의 순간에 국민들의 노후자금으로 도박을 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