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베네통, 네이버, 이들 브랜드를 연상하게 되면 어떤 컬러가 떠오르는가? 티파니는 스카이 블루의 보석상자, 베네통은 비비드 컬러, 네이버는 초록색이 단연 눈에 들어온다.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컬러는 소비자의 시각적인 요소에 자극을 줘 구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활자보다는 이미지 즉, 감성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기업들은 컬러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기아자동차는 새로운 경차형 박스카 ‘레이(Ray) 출시했다. 경차형 ‘박스카’라는 특징 외에도 눈에 띄는 것은 고급스러우면서도 경쾌한 이미지의 아쿠아민트 컬러의 외관이다. ‘레이’는 아쿠아민트 컬러 외에도 블루, 카페모카, 밀키베이지 등 총 10가지 컬러를 출시해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혔다.

기아자동차는 ‘레이’뿐 아니라 기존 ‘소울’과 ‘모닝’에도 베이지와 카페모카 등 여성을 타깃으로 한 컬러를 채택함으로써 ‘자동차=실버, 블랙, 화이트’라는 공식을 과감히 깨버렸다. 그런가 하면 국산 골프 볼 메이커인 ‘볼빅’은 오렌지, 핑크, 옐로 등 다양한 컬러 볼을 선보이며 골프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볼빅은 컬러 볼이 겨울에 흰색 눈과 구분하기 위해 오렌지 색 위주였던 것에서 벗어나 화이트, 오렌지, 핑크, 옐로 등 ‘4피스, 4컬러’ 로 기능성은 물론 골퍼의 개성까지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듯 브랜드의 고유 컬러나 컬러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의 출시는 소비자의 시각적 감성과 반응해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로 평가받는다. 결국 ‘컬러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전 세계에서 컬러마케팅을 처음 도입한 회사는 1920년대 미국 파커사(社)에서 만든 만년필에서 시작된다. 파커사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며, 여성소비층이 늘자 기존 블랙 일색인 만년필의 틀을 깨고 붉은색 만년필을 생산했다. 여성의 립스틱을 이미지화한 붉은색 만년필은 출시하기가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우리나라에 컬러마케팅 바람이 분 것은 컬러TV의 도입이 신호탄이 됐다. 본격적인 컬러 경쟁의 불을 지핀 주인공은 바로 1980년대 정유업계라 할 수 있다. SK엔크린이 색깔싸움에 불을 댕겼다. SK엔크린은 ‘빨간 모자 아가씨’를 CF에 등장시키며 붉은색을 SK엔크린과 연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SK엔크린이 붉은색 이미지로 성공하자 경쟁업체인 S-OIL 역시 화사한 노란색을 채택하며 경쾌한 이미지를 ‘주입’시켰다. 이후 현대오일뱅크는 1999년 한화정유를 인수하면서 파란색을 내세워 컬러마케팅 대결 구도에 합류했다. 이들 세기업은 CF와 지면, 주유소 인테리어는 물론 직원 유니폼까지 기업 고유의 색을 노출시켜가며 멀리서도 색깔만으로 기업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펴나갔다.

화장품 업계에도 컬러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는 9가지 색상의 화장수 딥씨워터를 매장에 진열하며 개성 구축과 고객 유입에 성공했다.


제품 선택 및 구매에 있어 시각-청각 등 오감은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감각에 의존해 제품을 구매했을 때 시각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표1>을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시각이 전체 5각 가운데 90%에 육박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컬러마케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컬러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즘은 남성이 여성적 컬러를 선호하는 메트로섹슈얼리즘의 시대다. 색에 대한 역발상이 요구된다.

둘째, 한 눈에 사로잡아야 한다. 미국의 컬러리서치연구소에 따르면 소비자의 상품 선택은 90초 안에 결정되며, 상품에 대한 판단은 60~90%가 컬러에 좌우된다고 한다. 상품의 가치와 직결되니 컬러 플래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셋째, 오감을 자극해야 한다. 컬러는 이미지인 시각뿐 아니라 촉각, 미각, 후각, 청각 등 오감을 적절히 가미한 공감적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넷째,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는 빨간색, 스타벅스는 초록색, 코닥은 노란색 등을 사용하는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고품격 컬러마케팅이 대세다. 기업들의 다양한 컬러마케팅 사례를 들여다보면 ‘색(色) 쓰는’ 전략의 방향이 손에 잡힐듯 그려질 것이다.

식품업계 “색깔이 곧 맛깔”
백화점과 마트 식품 관계자는 “수산물 매장은 청색으로, 커피와 차 매장은 갈색으로, 과일과 야채 매장은 검은 계통으로 꾸미는데, 신선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컬러마케팅”이라고 설명한다. ‘색깔이 곧 맛깔’이라는 공식이 적용되어서 일까? 식품업계의 컬러마케팅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7월 (주)롯데칠성음료는 컬러마케팅 전략으로 ‘게토레이 레드버스트’를 출시했다. 기존 그린톤의 게토레이에서 벗어난 게토레이 레드버스트는 스포츠 인구 증가에 따라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블루베리와 흑당근 야채즙으로 컬러와 맛을 업그레이드했다. 특히 에너지와 열정의 상징인 레드 컬러를 표방함으로써 스포츠음료의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다.

웰빙 죽 전문점으로 잘 알려진 ‘본죽’은 지난 5월 신 메뉴로 ‘자색고구마타락죽’을 선보였다. 자색고구마 색을 살린 보라색 죽은 고구마 본연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식감을 자극할 뿐 아니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로리 부담도 적어 여성과 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식품 외 포장에서도 컬러마케팅을 적용한 사례도 눈에 띈다.

식품업계나 IT 업계 모두 컬러마케팅으로 동종업계와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컬러로 배추의 원산지를 구분한 한성식품의 김치포장과 색상의 다양화로 주목받고 있는 스카이 ‘베가 레이서’.


편의점 꼬마김치로 유명한 한성식품은 블루, 그린, 오렌지 등 색깔에 따라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의 원산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강원도 배추로 만든 김치는 그린 포장지에, 전라도 해남 배추로 만든 김치는 블루 포장지에, 충청도 배추로 만든 김치는 오렌지 포장지에 담아 포장재 색만 보고도 배추의 원산지를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계절에 따라 특별히 맛있는 배추의 특징을 살린 것인데 예를 들면 날씨가 선선한 봄, 가을에는 충청도 배추가, 더운 8~9월에는 강원도 고랭지 배추가,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전라도 해남배추가 맛있기 때문이다.

남성화장품은 블랙이 대세
화장품업계의 컬러마케팅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제품 색상을 다채롭게 내놓는 정도에 국한됐던 컬러마케팅이 이제 매장 인테리어에서 직원 유니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적용되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는 9가지 색상을 갖춘 스프레이식 화장수 ’딥 씨워터‘를 진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컬러마케팅 효과를 보고 있다. 팁 씨워터는 화장수 성분에 따라 빨강, 주황, 노랑, 파랑 등 9가지 종류의 원색 병에 제품을 담았다.

슈에무라 측은 “제품 매출도 매출이지만 9가지 컬러를 매장 전면에 배치해 개성 있는 브랜드 이미지도 구축할 수 있고 고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생기는 등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브랜드 자체를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하는 경우도 많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이 자주 찾는 에뛰드하우스도 매장 인테리어에서 직원 유니폼까지 모두 화사한 핑크색으로 꾸며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장품분야에서 컬러마케팅으로 눈에 띄는 것은 남성을 타깃으로 한 ‘블랙’마케팅이다. 블랙 컬러는 분야를 막론하고 제품의 출시 이전 색상 선호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언제나 1순위을 차지한다. 이유는 블랙 컬러가 구매력이 높은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색상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화장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출시된 남성전용 화장품을 보면 패키지에 블랙을 입혀 세련된 이미지와 강렬함을 어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헤라 옴므 블랙 퍼펙트 롤온 에센스’나 한방 화장품 설화수의 남성화장품 ’정양’라인‘, LG 생활건강의 ’오휘포맨‘과 ’보닌 더 스타일‘ 역시 블랙케이스로 남성타깃 제품에 블랙을 선호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IT업계, 화이트·핑크 새바람
지난해, 블랙 일색이던 IT기기가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으면서 남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화이트컬러가 주목받았다. 대표적으로 올림푸스는 하이브리드 카메라 중 가장 인기가 높은 PEN E-P2의 ‘화이트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해 니콘과 캐논으로 대표되던 카메라 시장에 올림푸스의 존재를 부각시켰고 실제로도 PEN 구입자 중 50%가 넘는 고객이 화이트 컬러를 구매했다. IT 업체의 대명사 애플도 맥 컴퓨터나 맥북, 아이폰 및 아이팟 등 다양한 제품에 적극적으로 화이트 컬러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아이폰 4의 경우 아이폰 블랙을 출시한 후 얼마 후에 화이트를 출시하며 신비감을 부추겼고 이는 매출로 바로 이어졌다. 화이트 열풍이 지나자 최근에는 ‘핑크’ 등 좀 더 다양한 컬러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후면 모두 핑크를 적용한 ‘갤럭시S2’를 지난 11월 출시했다. 스카이 역시 베가 레이서(Vega Racer) 핑크, 브라운, 네이비 컬러를 지난 8월 출시하며 컬러 스마트폰의 대명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조사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카이가 베가 레이서로 다섯 가지 컬러의 모델을 선보이며 글로벌 경쟁사들도 못하는 컬러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최원영 기자 uni3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