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국 수출의 역군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어려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다만 반도체 업황악화는 올해 상반기까지며, 하반기부터는 다시 반등이 예상된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4분기 슬프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연간 실적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삼성전자의 잠정 연간 실적을 보면 매출 243조 5100억원, 영업이익 58조 89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의 239조5800억원 대비 1.64%, 영업이익은 전년의 53조 6500억원 대비 9.77% 증가해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문제는 지난해 4분기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65조9800억원 대비 10.58%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15조1500억원 대비 28.71%나 떨어졌다. 어닝 쇼크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실적 하락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업황악화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 가능성이 제기되며 수요가 크게 떨어진 것이 문제다. 서버용을 중심으로 일부 실적이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만 낸드플래시는 가격 하락폭이 삼각한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이미 메모리 반도체 수요공급 조절에 나섰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지금이라도 파운드리와 모바일AP 등의 플랜B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연간 실적은 준수하지만 지난해 4분기는 어닝 쇼크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해 매출 40조4451억원, 영업이익 20조8438억원을 기록했으며 순이익은 15조5400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52%, 순이익률은 38%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줬으며 2년 연속 최대 실적 기록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매출 40조원 시대를 열어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연간 실적은 고무적이지만, 문제는 역시 지난해 4분기다. 매출 9조9381억원, 영업이익 4조4301억원을 기록해 전 분기 대비 각각 13%, 32% 하락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사정이 악화됐다. 지난해 4분기 D램 출하량은 전 분기 대비 2% 감소했고, 평균판매가격도 11% 하락했다. 낸드플래시 출하량은 10% 증가했으나, 평균판매가격은 21% 떨어져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낸드플래시의 경우 출하량 측면에서 희망이 보이지만, 평균판매가격이 지나치게 떨어져 전체 실적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적을 종합하면, 두 회사 모두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로 상반기까지 고무적인 흐름을 보였으나 하반기에 이르러 급격한 체력 고갈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은 2.6%로 예상되며, 이는 지난해 13.4%와 2017년 21.6%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지난해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강점인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전체의 34.8%로 성장하는 등 몸집이 커지고 있으나, 전반적인 업황악화에 따른 후폭풍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도 시장 전망을 통해 반도체 시장이 올해 4780억달러에서 내년에 4901억달러로 2.6%의 성장률에 그칠 것으로 봤으며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올해 기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장비 지출액이 총 557억8000만달러를 기록, 지난해와 비교해 약 7.8% 줄어들 것으로 봤다.

중국발 리스크도 문제다. 중국 반독점 규제 당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하는 불공정 거래 혐의 조사를 끝낸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시장 불투명성도 커지고 있다. 폭스콘과 샤프는 최근 중국 광동성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고,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은 현재 진행형이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정부 차원의 국부펀드인 국가IC산업 투자기금은 초기 자금규모만 약 21조원이다.

다만 ‘중국 반도체 굴기가 효과적으로 진행되며 국내 반도체 업계를 위협할 것인가’를 두고는 설왕설래다. 최근 중국 푸젠진화가 D램 양산을 포기하는 등 최근 야심찬 계획이 일부 삐걱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의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YMTC는 6세대 128단 3D 낸드플래시 개발에 착수한다고 발표하며 올해 4분기 64단 3D 낸드플래시 양산까지 선언했으나, 업계에서는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 따라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 화성시 반도체 라인 조감도가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승부는 하반기...‘명운 걸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의 지난해 4분기가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긴 가운데, 업계의 관심사는 ‘반등 가능성’에 집중되고 있다. 관건은 하반기다. 각 업체들이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시장 안정화에 나서면 하반기에 ‘기회’가 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24일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국내 반도체 수출 금액은 전년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량 증가율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기록한 12.3%를 다소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하반기에 IT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며 데이터센터 투자 회복, 중저가 스마트폰 점유율 확대가 일어나면 반도체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반도체 업계가 상반기 가격 조정기에 돌입한 후, 하반기 상승세를 탈 가능성에는 소위 ‘버블론’에 대한 인식도 깔려있다. 실제로 D램 기준으로 보면 현재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일종의 '버블'이 만연하다는 평가다. 그런 이유로 올해 상반기에는 시장의 버블이 사라지고 본격적인 ‘진검승부’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그 중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재차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청와대 간담회를 마친 후 반도체 경기를 묻는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에 “시장이 어려운 것이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라면서 “진짜 실력이 나올 때”라고 대답한 행간이다. 이 부회장은 내달 출장을 통해 중국 시안을 방문, 시안 반도체 1공장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2공장도 방문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