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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산 서평] "'다이어트 실패' 진짜 이유, 따로 있었다"
   
 

<진화의 배신> 리 골드먼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 호모사피엔스의 20만년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이 4가지가 가장 큰 사망 요인이었다. 현세인류는 이런 위험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놀라운’ 대처법을 개발했다. 1만 세대를 거치는 진화과정에서 자기 몸 속의 유전형질(Genetic Character)을 바꿔온 것이다.

유전형질은 4가지 사망 요인에 대해 각각의 대처법을 마련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굶주림 대책’으로, 유전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먹어 두도록 코딩되었다. 탈수가 초래할 건강이상을 막기 위해 평소 소금을 간절히 원하게 만들었다.

불안과 우울을 마음 속에 기본 탑재하고, 두려움이 몸의 반사행동으로 연결되도록 함으로써 최대한 위험한 상황을 회피할 수 있게끔 했다. 출혈로 죽는 일이 없게 상처가 생기면 최대한 신속하게 혈액을 응고시키는 보호 체계까지 발달시켰다.

저자에 의하면, 인류의 멸종을 막아준 4가지 유전형질이 19세기 이후 불과 10세대, 200년 만에 인류의 목숨을 앗아가는 원흉이 되었다. 비만, 당뇨병, 고혈압, 불안, 우울증, 심장 질환, 뇌졸중 등 현대병(病)은 모두 유전형질 탓이다. 저자는 “유전자가 지난 2세기 동안 벌어진 급속한 환경변화를 미처 따라 잡지 못해 벌어진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설명한다.

굶주림 대책으로 형성된 유전자는 지금도 기회가 되면 필요 이상으로 먹도록 만든다. 구석기 시대가 아닌데도 주기적인 식량부족에 살아남아 종을 보존할 수 있게, 몸 속 곳곳에 에너지원 지방을 넉넉히 저장한다. 인류는 배, 허리, 둔부를 중심으로 350억개의 지방세포가 집중 배치되어 평균 13만 칼로리의 열량을 비축할 수 있게 진화됐다. 비만이 되면 지방세포는 1400억 개, 열량비축 능력은 100만 칼로리까지 확장된다.

만약 다이어트로 체중이 감소할 경우 유전자는 입맛을 돋우는 7종류 이상의 호르몬과 분자의 분비 수준을 한껏 높여 놓는다. 높아진 분비 수준은 수년간 지속된다. 이런 과식본능으로 현대인은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인 비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인류는 사냥감을 잡거나 맹수를 피하기 위해 아프리카 초원을 뛰어다녀야 했다. 엄청난 활동량으로 열량소비가 커지면 신체가 과열된다. 이를 지켜본 유전자는 땀 분비라는 냉각기능을 개발했다. 동시에 땀 분비로 체내 염도가 떨어져 면역기능이 저하되거나 체액의 농도가 불균형해지는 부작용이 없도록 땀의 원료인 소금과 물을 다른 포유류보다 많이 섭취하도록 세팅했다. 과거 유용했던 신체 내 강력한 탈수방어용 메커니즘은 요즘 고혈압과 그로 인한 심장마비, 뇌졸중, 신부전을 초래하고 있다.

신속한 혈액응고 장치는 오랜 세월 출혈로 인한 사망을 막아줬다. 하지만 지금은 혈전을 형성해 혈관을 막거나 터뜨려 뇌졸중과 심장질환을 부른다. 심장 마비, 혈전성 뇌졸중, 폐색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외상, 살인, 자살, 출혈성 뇌졸중, 궤양 등 출혈로 인한 사망자보다 4배 이상 많다.

원시 지구를 누비던 인류는 싸우거나 도망칠 수 없을 때는 순종적인 태도를 취했다. 남 앞에 굴복하며 느끼게 되는 슬픔과 우울은 불가피했다. 끊임없이 위협받는 환경에서는 과잉 경계심이나 공황조차 생존에 도움이 됐다. 과거 유전자의 자기 방어법이 이제 현대인의 정신질환인 불안과 우울증으로 남았다.

저자는 과잉 보호 형질을 확산시키는 유전자를 제거할 방법이 있는지 살핀다. 결론은 대략 ▲현재 나와 있거나 미래에 개발될 치료법을 신중하게 활용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도모하자 ▲인류가 가진 뛰어난 뇌를 십분 활용해 타고난 체질과 시대의 요구를 일치시켜 나가자 등이다. 다소 막연하지만 그게 현실인 모양이다. 아무튼 흥미로운 책이다.

주태산 주필  |  joots@econovill.com  |  승인 2019.01.27  09: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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