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2017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환경운동연합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가습기 살균제에 첨가된 화학물질인 CMIT와 MIT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명백하게’ 입증된 근거는 없다. 그러나 피해자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어 눈여겨봐야 할 참사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CMIT/MIT 유해성 명백하지 않지만, 여론과 보고서 반응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단체인 가습기 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가 지난해 11월 최창원‧김철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와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이사 등 관련 임원 1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재수사를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당장 정부의 조사가 시작된 후 8년이 지나도 공식 집계된 피해자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올해 1월 11일을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접수‧판정 중인 건수는 총 6272건이다. 2011년부터 확인된 희생자 수만 1379명이다. 2016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4차 피해조사에서 확인된 희생자 수만 1139명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크다.

▲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진행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국민여론 조사 결과. 출처=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지난해 12월 17일부터 19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RDD 휴대전화 표본프레임을 활용한 ARS 자동응답조사방식으로 진행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국민여론조사 결과,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응답자는 95.2%로 나타났다. 진행상황에 대해 69.7%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잘 보여줬다.

참사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기업’과 ‘정부’를 선택한 응답자는 각각 57.8%, 40.5%다.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6%로 낮았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제임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함에도 논란이 지속하는 이유는 일부 기업이 가습기 살균제에 활용한 CMIT/MIT 성분의 유해성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표적인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와 애경제품이다. 두 제품은 성분이 다르다. 옥시 제품의 (인체 유해성과 관련한 물질, PHMG) 인과관계는 환경부에서 발표했다”면서 “그러나 애경과 SK케미칼이 판매한 CMIT/MIT 성분에 대해선 인과관계가 아직 나오지 않아 애경과 SK케미칼은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부는 ‘조사하고 있다. 곧 발표할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아직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이 기자회견에서 메시지를 들고 있다. 출처=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CMIT/MIT는 살균제 성분으로 사용된 물질로 미생물을 치사시키는 작용을 갖고 있으며, 대개 미생물에 나타나는 치사작용이 포유류 세포에서 나타날 시 독성작용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살균기전은 인체에 미치는 독성기전과 상관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진통제 ‘타이레놀’서 독극물이? J&J 경영자가 직접 대응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독극물 타이레놀 사건이 반면교사가 되어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독극물 타이레놀 사건은 1982년 시카고에서 갑자기 주민 7명이 희생되면서 부각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캡슐 타이레놀을 복용한 것이다. 당시 직접적으로 발생한 사고뿐만 아니라 약 250건 이상의 추가 사망사례가 타이레놀이 원인으로 의심받으면서 의약품 판매량이 급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수사를 통해 누군가가 소매 단계에서 고의로 타이레놀을 청산가리로 오염시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명백한’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J&J는 자사 제조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고, 유통 과정에서 독극물이 주입된 것으로 조사됐음에도 현상금을 제시하고, 피해자들에게 위로 편지를 보냈다.

J&J는 또 이미 판매된 타이레놀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고, 약 1300억원을 들여 미국 전역의 타이레놀 3000만병을 회수했다. 당시 J&J 경영자인 짐 버크는 “타이레놀의 복용을 즉시 중단하고, 이전에 제조된 제품은 전량 폐기하십시오”라면서 TV광고를 찍었다. 이는 건강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윤리 경영 사례 중 하나다.

다만 업계에 따르면 J&J는 소비자 피해에 대한 선례를 남기고도 한국J&J메디칼을 통해 국내에 들어와 시술된 인공고관절 909개 리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태도는 아쉬운 것으로 보인다.

J&J 독극물 타이레놀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진 것과 아닌 것으로 나뉘지만, J&J의 당시 대응에는 경영 철학상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명백함과 명백하지 않음 한 끗 차이가 밝혀지기 전에 관련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애경산업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공식 입장은 밝히기 어렵다”면서 “결과에 따라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양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