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수출 역군 반도체 호황에 제동이 걸렸다. 당장 수출 지표부터 심상치않다.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1월20일까지 국내 총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6%나 줄어든 가운데 반도체 수출은 무려 28.8%나 줄어들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총 88억6000만달러에 머물며 지난해 같은달 대비 8.3%나 떨어졌다.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2016년 9월 이후 2년3개월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반전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반도체 코리아의 맏형인 삼성전자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치킨게임을 벌이거나, 하반기 반등 시점을 기다리는 시나리오가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 전쟁의 향배에 따라 유동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라인 조감도가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관세청의 수출 지표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올해 반도체 업황악화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557억8000만달러를 기록해 올해보다 약 7.8%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퍼 사이클 종료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수요와 공급을 원만하게 조정한다는 전제로 크게 세 가지다.

치킨게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 초반까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무차별 치킨게임을 벌인 바 있다. 가격을 급격히 하락시킨 제품을 대량으로 출하해 시장의 균형을 파괴하는 한편, 초기술 격차로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것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가 지금 치킨게임을 벌인다면 D램보다 가격 하락성이 더 높은 낸드플래시 영역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호언'에도 단서가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청와대 간담회에서 반도체 경기를 묻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금 시장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말에는 반도체 시장이 업황악화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거품이 빠지는 과도기에 접어들었으며, 삼성전자 특유의 전략으로 어려움을 정면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렸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치킨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장 체력부터 받쳐줄 수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다소 저조한 실적을 받아들 가능성이 높은데다, 올해 반도체 설비 투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편차는 있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지난해 대비 20% 하락할 것으로 본다.

올해 하반기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원만한 상승곡선을 탈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대목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인공지능과 5G 시대가 열리면 자연스럽게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가 늘어날 수 밖에 없으며, 단말기부터 소프트웨어 수직계열화를 노리는 삼성전자 전체 전략도 탄력을 받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올해 반도체 업황 호조는 이르면 2분기, 늦어도 3분기에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때를 기다리며 수요와 공급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방향성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 따라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략이 유동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최근 미중 두 수퍼파워가 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기술굴기 핵심인 스마트제조 2025는 상당부분 궤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그 중심에 중국 반도체 굴기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삼성전자에게 '길'이 보일 수 밖에 없고, 이 상황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향성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온다.

시그널은 엇갈린다. 최근 푸젠진화가 D램 양산을 사실상 포기하는 한편 중국 반도체 굴기 전체가 흔들린다는 말도 나오지만 중국 정부가 여전히 막대한 보조금을 풀어 자국 기업 양성에 나서는 장면도 연속적으로 포착된다.

이 대목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가 수요와 공급의 조정을 전제로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