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갈등은 분열의 대명사이자 전령으로 여겨진다. 특정 개인이나 조직이 누군가와 갈등을 일으키면 시스템은 붕괴하고, 미래는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사실일까?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서울시 공공갈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 10명 중 4명인 39.8%는 갈등이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부정적인 영향으로 본 시민은 32.5%로 집계됐다. 전년과 비교하면 긍정인식은 6.6%p 늘어났으며 부정인식은 3.7%p 줄어들었다.

▲ 출처=갈무리

갈등관리의 시대

일반적으로 갈등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설문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갈등 그 자체가 조직의 긴장을 유발하고 건전한 공론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균열이 벌어지는 순간, 새로운 미래의 방향성도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갈등을 ‘불’과 비교하는 이유다. 불은 우리에게 따스함과 식습관의 변화, 나아가 문명의 발전을 담보한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인 동시에 일순간에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재앙 덩어리다. 이 민감하고 어려운,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불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갈등관리(Conflict Management)의 시대가 필요하다. 갈등 그 자체를 거부하지 말고 이를 적절하게 관리하면서 파국을 막고, 발전을 전제하는 로드맵이다.

라힘과 보나마(Rahim & Bonama)의 다섯 가지 갈등 관리 유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기에 대한 관심, 타인에 의한 관심을 X축과 Y축으로 삼아 크게 ‘회피’ ‘지배’ ‘타협’ ‘순응’ ‘통합’의 요소를 설명한다. 자기에 대한 관심이 높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높으면 통합의 가치로, 반대라면 회피의 가치가 등장한다. 결국 갈등을 관리하는 결정적인 신의 한 수는 나와 타인에 대한 관심에서 기인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론의 법칙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달렸다. 각 개인과 조직의 감성과 주장은 서로 다른 방향성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하나의 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갈등의 방향도 제각각인 데다 그 목표와 지향점도 동일한 진영에서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하나의 통합된 방법론이 현실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씨줄과 날줄의 연결처럼 서로가 서로를 향한 토론 외에는 대안이 없다. 이 토론은 갈등을 일으키는 개인과 조직은 물론, 내부에서 의견을 함께 하는 이들의 생각도 고려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어려워도, 조금씩 타협점을 찾아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 남은 대안은 갈등관리다.

갈등 그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 모두 포함됐다고 해도, 갈등을 무조건 방치하거나 ‘관리’라는 이름으로 게으른 대응을 보이면 곤란하다. 갈등관리에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위험을 감지해서 그 크기를 평가하는 것을 두고 위험감지(Risk Taking), 혹은 위험지각(Risk Perception)이라고 부른다. 이는 닥쳐올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기 위한 속도전을 전제하지만, 갈등관리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갈등을 두고 사전에 대비하고 대처하면 제일 좋지만, 두 개인이나 조직의 충돌은 위험과는 차이가 다른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기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갈등관리를 목표로 소위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갈등은 감성이나 감정 등 불확실성을 동반한 요인과 동시에 다가오기 때문에 빠른 토론과 타협, 이에 따른 감정의 봉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민족의 명절인 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지나 친구를 만나 고향의 정을 느끼고, 사회생활이나 학업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다. 아울러 이 땅에서 조화롭게 살아갔던 조상들을 기리고, 일 년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장이기도 하다.

마음 편하게 모든 것을 풀어놓고 흐뭇한 감정의 공유만 나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현실이 있고, 아직 넘어서야 할 갈등이 있다. 누군가가 무력을 기반해 막무가내 행보에만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충돌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생생한 현장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더 나은 가능성을 타진할 시간이 왔다. 아주 천천히 칡과 등나무의 줄기를 풀어보자.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