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칡이라는 식물은 덩굴을 오를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가고, 등나무는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덩굴을 올라간다. 이 둘이 하나의 덩굴에서 동시에 위쪽으로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복잡하게 얽혀 빽빽한 모습이 된다.

만약 복잡하게 덩굴을 올라간 칡과 등나무를 떼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칡과 등나무는 면이 거칠고 질겨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심지어 뿌리까지 깊기 때문에 원상태로 회복하기에 어렵다.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 우리는 이를 갈등(葛藤)이라 부른다.

인류가 문명을 눈치 챘던 순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갈등의 역사를 반복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달라 싸우고, 서로 원하는 것이 같아서 피를 흘렸다. 이 과정에서 칡과 등나무처럼 감정의 소용돌이가 단단히 박혀 도무지 해결의 방향을 발견하지 못하던 때도 많았다. 그렇게 싸우고 반목하며 갈등하며 인류는 지금에 이르렀다. 문명과 철의 역사는 곧, 갈등의 역사다.

갈등은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초전이 되기도 했다. 구시대의 패권을 쥔 이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문을 꽁꽁 닫았을 때. 갈등은 닫혀있는 문을 활짝 열 수 있었던 인류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거대한 파도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세상을 다시 재창조하는 파도가 되기도 했다.

기해년 새해. 설날이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며 고향의 정취에 취하거나,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터나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설날은 특별한 날로 기억되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는 아직도 갈등이 남아있거나, 현재 진행형이거나, 혹은 갈등의 불꽃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그 치열한 현장을 직시하며 갈등의 방향을 고민하자. 그것이 퇴보를 의미할 수도 있고, 혹은 극적인 진화를 의미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가 우버의 최대주주로 활동하고, 일본 토요타와 손을 잡았다. 동남아시아의 그랩은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으며 리프트도 미국에서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비전을 가진 기업들은 대부분 뛰어들고 있는 대단위 플랫폼 생태계, 바로 모빌리티다.

최근 국내에서도 모빌리티와 관련된 논란이 뜨거웠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각 기업들은 ‘모빌리티의 전략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손을 잡고 펼치는가’에 집중했으나 국내에서는 ‘모빌리티의 첫 관문인 카풀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충돌과 대립이 반복됐다.

▲ 카카오 카풀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2014년 우버부터 2019년 카카오까지

지난 2014년 말 우버는 국내에서 우버택시 사업을 타진했다. 그러나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고 결국 2015년 우버택시 서비스는 종료되고 말았다. 지난했던 모빌리티 내전의 시발점이다.

모빌리티의 초입인 카풀에서 최초의 논란이 불거진 것은 2017년 풀러스 사태다. 2016년 경기도 판교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시작하던 풀러스는 2017년 유연근무제 도입에 따른 영업시간 확장을 선언했고, 결국 택시업계의 역린을 건들고 말았다. 이후 택시업계는 카풀에 반대해 들불처럼 일어났고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국회와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중재 노력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초다.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한 풀러스가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카카오 모빌리티는 풀러스의 경쟁사 럭시를 인수, 택시의 보완재로 카풀 서비스 상용화를 노렸다. 유료호출 서비스 로드맵까지 막힌 상태에서 ‘이동의 모든 것’을 확보하려는 카카오 모빌리티의 큰 그림이 등장한 셈이다.

충돌은 더욱 격렬해졌다. 택시업계는 정치적 포석을 가진 정치집단과 함께 카카오 모빌리티와 모든 모빌리티 기업들을 비판했고, 결국 택시 4단체는 8월부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입해 잔뜩 날을 세웠다. 이재웅 대표의 쏘카가 자회사 VCNC를 설립해 타다 서비스를 론칭하는 한편 한국형 우버를 표방하는 차차 크리에이션의 도전도 이어졌다. 혼란은 더욱 가중되기만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택시업계의 반발은 극에 이르렀다. 카카오 사옥 앞 집회에 이은 서울 광화문 대규모 집회, 택시파업이 줄을 이었고 카카오 카풀에 반대하는 택시기사가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고도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벌어진 택시업계 대규모 집회에서는 상복을 입은 택시기사들의 호소가 이어지기도 했다.

택시업계는 분신해 숨진 택시기사를 열사로 추모하고 그의 영정사진을 연단에 걸며 “거대기업 카카오를 규탄하라”는 구호와 함께 택시업계의 호소를 이어갔다. 이들은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카카오 카풀에 따른 택시업계 생존권 사수를 외치는 한편,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팻말도 나왔다.

당시 집회는 정치인들의 대거 등장으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현장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더불어민주당 택시카풀 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현희 의원이 등장하자 택시기사들은 물병을 던지는 등 강력히 항의했으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택시업계가 공세의 수위를 올리는 사이 위플과 같은 카풀 2.0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VCNC의 타다도 본 궤도에 올랐고 반등의 기회를 본 풀러스도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국회와 정부 주도로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출범했고 택시업계가 조금씩 ICT 업계에 관심을 가지는 일도 발생했다. 그러나 1월 초 또 한 명의 택시기사가 카카오 카풀에 반대하며 분신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고, 카카오 모빌리티는 끝까지 유지하던 카풀 베타 서비스 잠정 종료를 선언하며 뒤로 물러났다. 직후 택시업계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 참여를 선언했으나 아직도 상황은 오리무중이다.

▲ 카카오 카풀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갈등의 근원은 어디인가

카카오 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 전격 중단을 선언하며 택시업계를 사회적 대타협 기구라는 공론의 장으로 끌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 상용화 중단을 선언했으나 완전한 포기를 택한 것은 아니고, 택시업계는 ‘무조건 중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카카오 모빌리티에 집중되던 택시업계의 화력이 VCNC나 타다 등 다른 플레이어에게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전선이 확장되면 모빌리티를 둘러싼 현안은 더욱 복잡해진다.

갈등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ICT 업계에서는 모빌리티 기술력이 승차거부 등 택시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불리는 택시업계의 전반적인 질적인 상승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며, 승객에게는 이동의 플랫폼 전반을 책임지는 로드맵이 되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카카오 카풀 서비스를 지지하는 일반 대중들도 비슷하다.

택시업계의 주장은 아이러니하게도 ICT 업계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방법의 차이다. 택시업계도 ICT 기술의 발전을 택시산업에 접목할 경우 상당한 수준의 발전을 예상하고 있으나, 그 주체는 택시업계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갈등의 방향성을 백지에 펼치고 그 뿌리를 살펴보면 선명한 교집합이 보인다. 결국 방식의 문제이지 택시업계의 질 낮은 서비스라는 근원과 택시업계의 퀀텀점프를 원하는 목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문제가 많은 사납금 제도, 살인적인 기사 노동강도가 꼽히며 후자는 ICT 기술의 연결로 해결할 수 있다. 갈등의 주체가 서로 협상을 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협상 과정에서 모빌리티 전략이 기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콜버스의 경우 최초 알고리즘에 입각해 심야시간 승객들을 대량으로 수송하는 전략을 택했으나 이는 택시업계의 반발에 밀려 기형적인 모델로 변했고, 결국 폐기된 바 있다. 만약 모빌리티의 첫 관문인 카풀을 빠르게 출시하기 위해 무리한 협상을 시도한다면 ‘이도 저도 아닌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운용의 묘가 필요한 이유다.

각 조직의 문제 있는 운영 프로세스도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노동조합과 회사로 이어지는 택시 카르텔과, ICT 혁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ICT 만능주의가 대표적이다. 각 진영이 자기들의 정체성이자 무기, 혹은 신념을 일정 정도 놓고 열린 가슴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