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기후와 환경 문제가 국제적 위험 요인의 상위 랭킹을 휩쓸었다.   출처= 블룸버그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기업과 투자자들이 기후 변화와 기상 이변으로 인한 위험에 눈을 뜨고 있다.

불안한 주식 시장, 사이버 공격, 지정학적 혼란 같은 요인들 보다, 가뭄과 산불 같은 환경적 위험들이 기업의 미래에 훨씬 더 위험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세계 정상들의 연례 회동에 앞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기후와 환경 문제가 글로벌 위험 요인의 상위 랭킹을 휩쓸었다고 CNN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EF가 재계 대표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상 이변, 기후 변화,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 완화 실패를 2019년의 가장 큰 세 가지 위험으로 꼽혔다. 기후와 관련된 이런 위험들은, 경제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 조사에서도 상위 5위에 랭크됐다.

보험 중개업체 마쉬(Marsh)의 글로벌 리스크 부문 대표인 존 드르직은 "기후 문제가 투자자들을 더욱 압박하고 기업에 대해서도 더 많은 요구를 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이미 소비자들로부터 제품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라는 압력을 받아왔지만, 투자자들에게까지 압박을 가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기후 리스크

글로벌 재보험 회사 뮤니히(Munich RE)에 따르면, 2018년에 자연 재해와 기상 이변은 1600억 달러(180조원) 상당의 피해를 가져왔다. 컨설팅사인 콘트롤 리스크(Control Risks)는 2019년에는 이 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 이 회사는 연간 리스크 보고서에서 "폭풍에서 홍수, 가뭄과 산불까지, 2019년에는 이런 자연 재해와 기상 이변으로 인해 생산, 유통, 영업, 여행 등에 미치는 피해액이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의 기후 재앙을 살펴보면 그런 기후 재앙으로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하는 분야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다.

가장 피해가 큰 분야는 공급 체인(supply chain)이다. 메릴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Maryland)와 소프트웨어 회사 레실링크(Resilinc)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해 기후로 인한 전세계 공급 체인의 붕괴로 인한 피해액은 전년에 비해 두 배로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위험은 사회기반시설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2018년에 허리케인 하비(Harvey), 어머(Irma), 마리아(Maria)가 연이어 강타해 미국을 초토화시키면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지역이 되었다.

▲ 2018 년 발생한 캠프 파이어(Camp Fire)는 사상 최악의 산불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의 유틸리티 회사 PG&E는 이 산불로 인한 타격으로 파산을 신청했다.   출처= Accuweather.com

환경 관련 리스크로 압박을 받는 기업의 가장 극적인 사례가 최근 파산 신청을 낸 퍼시픽 가스앤일렉트릭(Pacific Gas and Electric, PG&E)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이 유틸리티 회사는, 2018년에 사상 최악의 산불인 캠프 파이어(Camp Fire)로 수 십억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에 직면해 있으며, 결국 지난 14일 파산신청을 결정했다.

이 회사는 86명의 사망자와 1만 4000채의 주택을 무참히 태워버린 캠프 파이어 소송에서 손해 배상금으로 적어도 70억 달러(7조 8500억원)가 들어 갈 것으로 추정했다. 앞서 캘리포니아 수사 당국은 산불 캠프파이어의 직접적인 발화 원인으로 PG&E가 설치한 전선이 강풍에 끊어지면서 나무와 접촉해 산불을 냈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파산신청에서, “기후 변화로 인한 산불 위험이 크게 증가한 것이 파산 결정의 이유”라고 기재했다.

펜실베니아주 지구시스템과학센터(Penn State Earth System Science Center)의 마이클 만 소장은 " 기후 변화가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면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목격한 치명적인 기상 현상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대응

주요 투자자들은 기업들이 환경 대책 계획을 보다 철저하게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기업 CEO들에게 기후 변화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회사 운영에 그로 인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리히 보험 그룹(Zurich Insurance Group)의 최고위험책임자(CRO) 앨리슨 마틴은 “회사의 경영진들이 기후 변화에 대한 영향을 믿는지, 또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소비자들이 그것을 기업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일 당신이 몇 년 전에 플라스틱 빨대 제조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면, 플라스틱 빨대를 더 많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전략을 생각했겠지요. 아마도 소비자의 정서가 그렇게 빠르게 당신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지난해 10월 허리케인 마이클이 휩쓸고 간 자리.   출처= Business Insider

환경과 기후 변화에 대응을 촉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1조 달러에 달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지난해 9월, 환경 친화적 투자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계 최대 주식 보유자로서, 기업들이 좀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에도 32조 달러 상당의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자들이 모여, 기업이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유엔은 획기적인 기후 보고서를 발표하며,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신속하고 광범위한, 전례 없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엔은 세계가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12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마쉬의 존 드르직 대표는 UN이 타임라인을 제시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환경 변화가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대개 단기적 위험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지정학적 위험보다는 더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UN 보고서로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해운회사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는 최근, 2050년까지 탄소중립(carbon neutral,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발표하고 다른 해운회사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글로벌 다국적 에너지 기업 쉘(Shell)은 지난 달, 세계 최초로 임원 급여와 탄소 배출을 연계한다고 발표했다.